UPDATED. 2024-04-20 10:40 (토)
20조 R&D 예산 만지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자리의 무게
20조 R&D 예산 만지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자리의 무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8.09 16: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시각_ 왜 박기영 교수인가?

책과 추천사

책이 출판됐을 때, 두 개의 추천사가 덧붙여졌다. 추천사의 일부는 이렇다.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방법은 우리가 그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책의 출간이 대한민국호의 출항을 알리는 힘찬 뱃고동 소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 책을 통해 함께 미래를 만듭시다.”

“한국인의 성숙한 지혜를 믿고 싶어 이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이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이 책은 제4차 산업혁명에 관한 정책과 공약들이 놓치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줍니다. 우리가 새로운 번영과 화합의 꽃을 피우는 데 이 책이 좋은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추천사가 실린 책은 『제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경쟁력: 한국의 위기 극복과 포용적 혁신성장을 위하여』(한울, 2017.5)다. 저자는, 지금 과학계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잔뜩 받고 있는 순천대 생물학과 교수인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다. 물론 앞의 추천글은 각각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안희정 충남 도지사’가 썼다. 박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과학 기술정책 공약 설계자로 잘 알려져 있다. 와중에도 녹색소비자연대 전국협의회공동대표 등 외부 활동도 활발하게 해왔다. 자, 이쯤이면 ‘박기영의 귀환’은 예고된 것으로 봐도 좋을 듯하다.

환영받지 못한 귀환

그러나 그의 화려한 귀환은, 장하성 교수나 김상조 교수처럼 환호와 박수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친정격인 과학계의 젊은 연구자들은 ‘박기영 교수는 아니다!’라고 완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과총, 한림원, 과실련 등 과학기술단체들은 정치권 눈치를 보면서 침묵하고 있지만, 과학계에는 ‘No’ 분위기가 강력해지고 있다. 이유가 있다. 그가 과거 ‘황우석의 설계자’였다는 전력이 문제였다. 아니, 이런 전력도 문제지만, 박 교수가 공식-비공식적으로 황우석 교수와 연결돼 있었던 바로 그 ‘과학정치의 컨텍스트’와 관련해 그 어떤 자기 성찰과 반성도 공개화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그의 이런 자기성찰과 반성 결여는 박 교수가 학문공동체 깊숙한 곳에서 知의 향연에 심취한 인물이 아니라, 정치권과 긴밀한 교감을 나누며 권토중래를 다지는 ‘정치 과학자’로 비쳐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최근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가 발표한 성명서를 보자.

“박기영 교수는 황우석 사태의 최정점에서 그 비리를 책임져야 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성찰도 보여주지 않았다. 황우석 사태가 마무리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등장한 인터뷰에서, 그는 황우석을 여전히 두둔하는 모습만을 보였다. 그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떤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냈는지, 과학기술계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자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혁신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반성으로부터만 나온다.”

“우리는 황우석 사태라는 낙인을 찍어 한 과학자의 복귀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박기영 교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그에게서 어떤 혁신의 상징도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공정거래위원장과 외교부장관이 임명될 때, 과학기술인들은 희망을 걸었다. 우리도 멋지고 새로운 리더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자와 책을 함께 쓴 기업가 출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임명되었을 때, 우린 인내했고,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게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철저한 인사의 수난을 본다. 대통령이 과학기술을 모른다면, 현장에 겸손히 물었어야 했다. 우리는 탄핵된 대통령의 독단에 질렸다. 외교, 안보, 국방, 행정, 경제 관련 인사에선 했던 일을 과학기술계 인사엔 적용하지 않는 건, 과학기술계에 대한 무지 혹은 천대로밖에 볼 수 없다.”

이들 성명서에 흐르는 기저는 분명하다. 왜 박기영 교수여야 하는가? 꼭 그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박 교수여야 하는 합리적 설명도 없는, '인사 수난'으로 인식되고 있다.

보편적 윤리의식 그리고 투명성

우리는 지난 번,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그의 논문에 대해 야당 일각에서 제기하던 ‘소급된 연구 윤리’ 문제의 부당함을 지적한 바 있다. 학계가 내적 성찰을 통해 제시한 연구윤리지침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된 박 교수는 학자의 보편적 윤리의식 면에서 ‘이상증상’을 드러냈다.

조작 논문으로 밝혀진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려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박 교수가 2004년 논문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기여는 하지 않았지만, 그는 화제의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래서 '논문 무임승차'라는 비판도 거셌다. 사태로 불릴만큼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 논문 조작 사건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그가 ‘생물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그의 과학정책 아이디어나 국가 R&D사업정책에 관한 그의 그림이 부적절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는 오랜 기간 NGO활동을 하면서 과학 정책 입안에 간여했기에 그가 말하는 ‘확장형 포용 성장’도 솔깃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의 식견과 경륜보다 중요한 것은, ‘촛불혁명’ 이후 진행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전체 개혁 지도 속에서, 누가 책임 있는 자리에 나아가야 하는가, 즉 도덕적 투명성과 책무성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박기영’에게 과학계가 의심을 보내는 이유, 학계가 어이없어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처칠은 어디선가 “과학이 정치와 타협하면 몰락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겨우내 촛불을 든 시민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투명한 사회, 합리적인 세상의 도래일 것이다. 박기영 교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과학계와 소통하는 새정부의 과학 리더십은 싫든 좋든 이제 박 교수의 진퇴에 달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