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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역할 묻는 성찰적 사건 … ‘비정규직 처우 개선’ 기폭제 돼야
대학의 역할 묻는 성찰적 사건 … ‘비정규직 처우 개선’ 기폭제 돼야
  • 김홍근 기자
  • 승인 2017.07.21 0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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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_ 이화여대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협상, 왜 눈길끄나?
이화여대 비정규 노동자들이 시급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지 9일 째인 지난 20일 대학이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사태가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최대 830원이 인상된 7천780원까지 최저시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학에서 근로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관한 논란은 오래 전부터 여러 대학에서 있어왔던 문제다. 이들은 낮은 임금, 빈약한 휴식 공간 등 열악한 복지 사각지대에서 지내왔다. 오죽하면 당사자인 노동자들 말고도 학생들까지 문제제기를 할 정도였을까.
 
하지만 이번 이화여대 비정규직 임금협상에서 대학 본부가 보여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응은 이례적인 일로, 다른 대학의 비정규직 임금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화여대는 지난 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불씨를 되살렸던 촛불혁명의 시발지였다는 데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학생들의 힘으로 국정농단에 얽힌 관계자들을 끌어내렸고, 이후 총장 직선제를 통해 ‘촛불 총장’이라 불리는 김혜숙 총장을 새롭게 선출하기도 했다. 이번 이화여대 사건을 두고 대학본부가 원만한 합의를 결정한 것에 대해서 “역시 김혜숙 총장”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2016년 10월) 지난해 이화여대 학생들이 벌인 대규모 시위는 국정농단 사태를 밝혀낸 촛불혁명의 단초가 됐다. 사진= 김홍근 기자
물론 ‘개혁파’인 김 총장의 영향이 컸음에는 당연하다. 하지만 더 눈여겨 볼 점은 ‘대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단시간에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 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오래도록 손톱 밑 가시였지만 이번처럼 파격적인 결정을 단행한 대학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지성의 상아탑’, ‘지성의 요람’ 등의 말들이 설명하고 있듯이 ‘대학’은 ‘지성’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 어떠한 공간, 조직보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이 있어야하는 곳이며,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서 더 나은 가치를 앞장서 추구하고, 이를 ‘말로만이’ 아닌, 실천으로 먼저 실행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조금 시간이 경과되긴 했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사학 H대, Y대에서 빚어졌던 경비·청소 노동자의 절규는 대학이, 겉으로는 지성의 전당이지만, 그 이면에는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보다 못한 ‘지성 결핍’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그 어느 곳보다 합리성과 이성, 투명성을 강조하는 대학에서 벌어진 비합리적 사태들은, 과연 우리 시대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 성찰적 사건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화여대의 협상 타결 소식은 오랜 가뭄 속 단비처럼 보인다. 이해관계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제 잇속 차리기 바빴던 대학가에, ‘대학’이라면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지를 일깨워줄 수 있는 불씨와 같은 것이어서 그렇다. 이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서 대화를 시작하고, 거기서 합리적 소통의 가능성을 함께 열었다.
 
바야흐로 ‘개혁’의 시대다. 2017년은 ‘개혁의 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사회 곳곳에서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학도 이러한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편승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제껏 대한민국 사회의 변화를 주도했던 주체가 누구였던가. ‘지성 집단’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누구보다 먼저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촛불을 밝혔던 이화여대가 새로운 총장 체제에서 ‘비정규직 임금협상’에서 큰 실천을 이뤄낸 것은, 그래도 대학이 우리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떤 희망을 보여주는 징검다리라는 사실을 확인해준, 의미 있는 성과임에 틀림없다. 이화여대 비정규직 임금협상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홍근 기자 m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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