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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 김용현 동국대
  • 승인 2002.12.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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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국 근대사는 어둠의 연속이었다. 친미정권에서 군부정권에 이르기까지 뒤돌아보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싶을 만큼 폭력적이고,비인간적인 역사의 흔적이 산재했다. 1974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간된 ‘전환시대의 논리’는 당시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중국과 베트남의 정치, 미군 감축과 한일·한미 안보 관계, 언론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사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모두가 침묵하던 시절, 그것은 차라리 ‘선언’이었다. 학계에 자리잡고 있던 지식인들이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을 리 교수는 수십 년에 걸쳐 세밀한 자료와 함께 출판했다. 리 교수의 글들은 오늘날에는 그리 많이 읽히지 않는다. 냉전 시대의 종결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나은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금 리 교수를 기억하게 되는 것은 현실에 굴하지 않는 치열한 문제제기와 굽히지 않는 신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채 풀리지 않은 지식인 사회에 던지는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김용현/ 동국대·북한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악의 축, 북한핵 개발 의혹, SOFA 개정, 대이라크전 등 갈등과 전쟁의 담론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사라졌어야 할 부정의 담론들이 끈질진 생명력을 보이고 있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는 아직도 냉전의 유산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때 1960년대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동안 군사독재와 냉전논리에 맞섬으로써 깨어 있는 이성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는 리영희 선생의 촌철살인의 글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현재의 상황과도 무관치 않은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문제의식과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1970년대와 80년대 대학을 다닌 인문사회과학도에게는 필독서였다. 어두운 터널과 같았던 유신과 군사독재 시절, “인간해방과 사상의 자유의 역사는 어차피 독선에 대해 회의가, 권위에 대해 이성이 승리를 거두는 긴 투쟁의 되풀이임에 틀림없다”는 그의 설파가 한 줄기 빛이었기 때문이다.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우화처럼 허구와 허위가 판치던 시절, 사실과 실체에 대한 그의 진지한 탐구는 청년들이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세계관 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의 공이 빛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과 실체에 대한 진지한 탐구

이 땅의 지식인 대부분이 어둠에 의탁하거나 체념에 빠졌을 때, 그는 당당히 맞서 싸운 신념의 지식인이었다. 1974년 5월 유신의 한복판에서 ‘전환시대의 논리’는 출간됐다. 행간 곳곳에서 그는 광기어린 국가권력과 미국 중심의 허위적인 세계질서를 허물고 있다. 그는 머리말에서 ‘전환시대의 논리’가 “이 사회를 ‘정치적 신학’의 도그마가 지배하는 날까지는 가설인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하고 있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오늘, 그의 가설은 실체적 검증을 통해 말끔히 해결된 것일까.

‘전환시대의 논리’는 그가 10여 년에 걸쳐 쓴 논문의 일부를 모은 선집이다. 주제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전환시대의 논리’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해방, 사상의 자유, 권위에 대한 저항, 이성의 승리 등은 그가 갖고 있는 신념이자, ‘전환시대의 논리’를 관통하는 핵심어이다. 그는 중국의 부상, 베트남 전쟁, 한미·한일관계 등 당시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이같은 핵심어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전쟁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오히려 “냉전시대의 기이한 신화·우상·권위의 실태를 묻는 회의가 필요한 때이다”라고 전쟁과 국가의 자기기만성을 공격한다. 반공 이외에 다른 가치나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언론 때문에 “한국국민은 닉슨의 중공 방문에 대해 하늘이 무너질 듯 놀랐다”고 자탄하고 있다. 놀랍게도 그는 냉전용어의 반지성성을 지적하면서 “제 1차적으로 할 지식인의 과업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냉전용어를 정리·청소하는 문제이겠다”고 못박고 있다.

지성을 마비시키고 중독시키는 요소로 냉전용어의 해악을 강조하는 그는 ‘피로 맺은 관계’니 ‘혈맹’ 또는 ‘영원한 맹방’이라는 표현으로 받아온 대미관계 교육의 문제가 “얼마나 우리 국민의 진실확인의 능력을 제약하고 얼마나 고정관념의 반응조건을 형성해왔는지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에서야 우리는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실을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미국 바로보기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환시대의 논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지식도 음미해 볼 대목이다. 그는 중국문제에 관한 ‘해설자’ 이상을 자처해본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종합 보고서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의 ‘영원한 적’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확신하던 1970년대, 이미 중국의 외교, 역사, 정치 등 모든 부분을 거의 정확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냉전체제와 미국에 의해 덧칠된 ‘대륙중국에 대한 시각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주관의 형성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지만 우선 事象·관계의 관찰만은 되도록 선입관을 배제하려는 노력이 앞서야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30년이 지나서도 유효한 중국종합보고서

그 과정에서 그는 중국의 경제·군사적 잠재력과 대국으로서 국제정치적 역할을 이미 내다보고 있었다. 30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도 그의 중국 종합보고서는 사실관계의 그 타당성뿐만 아니라 전망에서도 전반적으로 일치하는 분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중국과 관련된 화교, 무역, 군사대국화, 동북아시아 국제정치 등의 문제에서도 그의 분석은 최근 중국의 상황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1970년대 국제정치와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의 격변기에 “일본을 다시 알고 지켜봐야 할 순간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재등장의 현실을 직시하고, 정치대국화, 군사대국화 경향 등의 본질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있다. 미국의 대리자로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일본이 과거 역사를 되풀이할 수도 있는 의도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는 자위대라는 ‘군대’의 역할이 방위력에서 공격력으로 변질되고, 일본 산업의 군사화와 평화헌법의 ‘개헌’ 가능성 속에서 아시아를 덮는 일본군대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오늘날 현재 진행형인 상황이 30여 년 전에 이미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그의 입장은 “프랑스 제국주의·식민주의를 반대해 싸운 베트남 인민의 80년의 투쟁과 반민중적 권력에 대한 민중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고려돼야 할 전쟁”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는 2차대전 이후 1972년까지 베트남 전쟁의 배경과 전개과정, 성격 등을 낱낱이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의 성격을 “남베트남의 민주주의·민족자결의 수호라는 전쟁목표가 실제 근본적으로는 미국 자신의 반공전략에 근거한 것”으로 못박고 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체면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애초 베트남 전쟁의 확대는 “미국이 내세우는 ‘개입의 권리와 근거’라는 것으로 자기전개적”이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목적은 “그 동맹국가들의 생각은 어떻든 이미 전쟁 초기부터 딴 곳에 있었다. 베트남전쟁은 이런 목적으로 시작돼 이런 기만으로 끝난 이런 성격의 전쟁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권력의 광기가 제3세계 국가와 그 국민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작동했음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남은 하나도 속지 않았는데 거꾸로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는” 미국 국가권력이라는 실체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 논리는 30년이 지난 오늘, 크게 보아 아프카니스탄전쟁과 개전이 임박한 대이라크전 논리와 별반 차별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하나의 이론을 도출한 저작이라기보다는 당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올바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허위와 우상이 지배하던 시절,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어둠의 터널을 뚫으려는 자세와 실천적 지성의 모습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하나의 역저 ‘우상과 이성’에서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촉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해 그것에서 끝난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바로 이것이 초지일관 그의 삶이자,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인 것이다.

우상에 도전하는 실천하는 이성으로서의 그의 모습은 펜 하나로 반공 독재정권과의 쉼 없는 싸움 속에서 단련된 것이었다. 30대 이후 그의 삶은 필화의 연속이었다. 1964년 신문기자 시절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안 검토중’이라는 기사를 써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잡혀간 이래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신문사에서 두 번 퇴직당하고, 아홉 번 연행되고, 다섯 번 구치소에 수감되고, 세 번 재판을 받고 복역했다. 파란의 40여 년 동안 그가 써 낸 열 몇 권의 저서는 시대의 아침을 여는 햇살이었고, 그 자신에게는 수난의 오랏줄이었다.

“내 발자국이 오는이의 길잡이 될지니”

이 긴 여정에서 그는 총검으로 도열한 한국현대사의 주요 시기를 굽히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통과해 왔다. 그야말로 분단과 냉전 이데올로기시대에 현실의 위험한 사태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예리하고 정직하게 감지해 드러내고 발언하는 예언자적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예언자적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모습은 과거형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1999년 6월 서해교전사태가 났을 때 그는 북방한계선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진 주목할만한 논문을 발표해 수구반공세력의 냉전이데올로기 부추기기에 쐐기를 박은 바 있다. 오늘의 언론 행태에 대해서도 그는 “강한 자에게는 졸개처럼 비굴해지고 약하다 싶으면 마구 물어뜯는 기회주의적 작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일침을 놓고 있다.

실제 그의 1970년대 관심 사안과 전환시대에 대한 분석은 오늘의 현실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사안들이다. 베트남 전쟁, 중국의 부상, 동북아시아 국제정치, 미국의 참모습 등 그가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던진 화두는 여전히 유효한 주제들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진행형인 동일한 사안들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던져지고 있다. 우리사회 냉전의 잔재, 수구보수 언론, 신자유주의, 미국의 실체 등 우상을 깨는 작업이 바로 그가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는 과제이다.

그의 서재에는 서산대사의 시를 백범 김구가 쓴 휘호가 걸려 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라고 한다. 그의 삶 전체가 이 시의 의미와 같은 것이다. 길은 사람이 다녀서 넓어진 발자국의 비석이라고 했다. 전환시대의 허위와 우상을 깨는 그 첫 발자국을 리영희 선생이 뗬다. 이제 이성의 시대 탄탄한 대로를 활짝 여는 몫은 바로 우리시대 지식인의 노력과 열정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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