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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의 날, 우리 사회의 인권을 재점검한다
세계인권의 날, 우리 사회의 인권을 재점검한다
  • 교수신문
  • 승인 2002.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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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세계인권선언일이 54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풀지 못한 의문사 사건들과 국가보안법, 노동권 탄압 등 54주년을 맞는 어깨는 무겁고, 기대 속에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좁은 운신의 폭으로 스스로의 위상을 갉아먹고 있다는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21세기를 ‘인권의 세기’로 만들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본다.


1990년대 인권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대두됐지만 인권운동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는 기대감과 달리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보안법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권의 안보, 수구세력과 국가보안법 자체의 안보만을 위한 도구라는 비판이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지만 달라진 사실은 아무 것도 없다. 대통령 그 자신이 국가보안법의 가장 큰 피해자였지만 국보법의 철폐에 아무런 힘도 싣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과)는 “냉전체제하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정치세력이 여전히 곳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구속자 수가 1997년 6백41명에서 이듬해는 4백65명, 2백86명, 1백28명 등으로 차차 줄고는 있지만 ‘인권 대통령’도 수구세력의 저항을 뚫을 힘이나 의지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인권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소위 사회권이라 불리는 분야에서 심각한 퇴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발생한 경제위기가 김대중 정부에서 ‘정리해고’로 처리된 방식이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 등 적용가능한 여러 방법들이 있었음에도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된 것은 유감”이라며 “노동단체권이 법률적으로 보장돼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입법 개선도 거의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정근식 전남대 교수(사회학과) 또한 “1990년대에 인권 담론이 보편화 됐고, 부분적으로 매우 큰 진전을 이뤘지만 새로운 빈곤적 상황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평했다.

김영삼 정권은 어떤가. 문민정부 들어서도 악법으로 불린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유지됐고 노사관계 개혁작업은 국회 날치기통과로 국민적 저항을 야기했다. 집권 초기 시대정신으로 부각시킨 ‘개혁’을 후기에는 진전시키지 못하고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 것은 과거 군사정권을 떠받치던 기득권층을 기반으로 한 개혁의 ‘딜레마’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1990년대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각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은 각종 위원회들이 생겨나 다수 사회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올 11월 25일로 출범 1주년을 맞은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보건소장 임용에서 차별을 받았던 이희원씨 사건을 1호로 1년간 총 2천9백71건의 진정을 접수받았다. 지난해 11월 26일 첫업무 개시일에는 하루동안 1백22건의 진정이 폭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권위원회의 1년간 성적표는 그에 못 미치게 초라하다. 진정된 사건들 중 1천1백31건이 각하됐고 권고와 수사의뢰는 각각 26건, 1건에 그쳤기 때문이다. 사건 처리가 늦고 내용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첫 진정을 냈던 이희원씨 사건은 5개월이 지난 뒤 ‘시정권고’로 끝났다. 민주적이고 열린 기관이어야 할 인권위가 비공개 회의를 고집하는 폐쇄적 기구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분명 일정한 성과는 있었다. 성희롱 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 장애인 및 구금시설에 대한 문제 등을 공론화시켰고, 지난 2월 국가정보원이 입법하려했던 테러방지법안에 대해 국회에 제정 철회를 권고해 이를 무산시켰던 것은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피진정인이나 기관에 ‘권고조치’를 내렸을 때 이를 거부하거나 이행하지 않아도 추가 대응이 어려운 미약한 권한은 시급히 강화돼야 할 부분이다. 현재 재판·수사 중인 사건, 법원의 확정판결이 내려진 사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사건 등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한 인권위법도 인권위의 운신의 폭을 지나치게 좁히고 있다.

이에 대해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과)는 “이미 사법기관에 의해 정립된 기성 인권개념에만 한정된 문제, 그것도 사법기관에서 다루기 전에 미리 조사권을 발동한 문제에 대해서만 다루라는 모순적인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라며 “정상적 국가장치로서도 구제되지 못하는 인권침해 혹은 차별행위들을 구제해 인권보장의 새 지평을 열고자 하는 위원회 성격과 정면 배치된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모순’은 가령 어떤 반인권적인 사안이 대두되더라도, 그에 대한 이의신청을 법원이 먼저 제기해버리면 위원회는 더 이상 그 문제를 다룰 수 없으며, 법원이 이를 기각해 버리면 더 이상의 구제절차는 없게 되고 마는 한계 상황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다시금 1990년대 인권 문제가 일견 ‘진보’한 것 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자리잡은 ‘이중의 보안장치’에 대한 은폐가 아니냐는 지적은 음미할 만 하다. 인권을 위해 지켜가야 할 전선이 오히려 복합적인 양상으로 분화되는 상황에서 “과거에 비해 나아졌으나 고쳐야 할 점은 더 많아진” 현실에 직면한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것이다.

설유정 기자 sy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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