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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역할 인정 필요 … 판면권·계약기간 고민해야
‘출판계’ 역할 인정 필요 … 판면권·계약기간 고민해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6.2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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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_ 학술출판이 미래를 만든다 ⑥ 장애물 혹은 위협들―저작권

빠르게 전환한 디지털환경 속에서 ‘학술출판’의 자리가 계속 위협받고 있다. 학술전문서는 시장에서 점점 위축되고 있다. 불법복제, 북스캔, 베끼기 출판, 출판사의 정당한 노력에 대한 보상 시스템의 부재, 정부의 정책적 방임 등이 손꼽히는 장애물이다. 학술 전문서와 대학교재 등 질 높은 출판 콘텐츠를 확보해야할 시기임에도 안팎의 장애와 싸우는 한국 학술출판 상황은 안타깝기만 하다. 학술출판이 살아나야 지식과 문화의 지평이 두터워질 수 있다. <교수신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학술 출판이 처한 현주소,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모색하는 ‘학술출판이 미래를 만든다’(총 10회)를 마련했다. 이번호에서는 ‘장애물 혹은 위협들-저작권’ 문제를 짚고 대안을 모색한다.

글 싣는 차례
1. 학술출판이 놓인 현주소
2. 학술서, 그 명작의 조건
3. 장애물 혹은 위협들-디지털복제(1)
4. 장애물 혹은 위협들-디지털복제(2)
5. 장애물 혹은 위협들-출판산업 파괴하는 북스캔
6. 장애물 혹은 위협들-저작권
7. 장애물 혹은 위협들-반출판정책들
8. 전자책유통 표준플랫폼이 필요하다
9. 도서관과 서점도 달라져야 한다
10. 우리는 어떤 학술출판을 지향할까?

시간을 조금 되돌려보자. 2016년 10월 25일, 한국저작권위윈회의 ‘연구발표회’가 있던 날이다. 「미래 환경에 적합한 저작권법 개정」(과제 연구책임자 정진근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을 위한 연구발표회 자리였다. 

연구책임자였던 정진근 교수는 연구발표회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EU,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2000년대부터 기술적, 시대적 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저작권제도로의 변혁을 꾀함으로써, 문화자산을 국가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전개돼 오고 있다. 이른바 ‘저작권 개혁(Copyright Reform)’에 관한 논의가 지속됐고, 그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학자들도 한 자리에 모여 많은 연구발표와 토론을 거치면서 미래 저작권법의 모습을 고민했다는 것, 그럼에도 아직 미래를 논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 특히 현실에 기초한 이익의 분배문제, 기득권, 그리고 문화발전을 위해 어떨 수 없는 현실적 장애와 같은 많은 문제들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이런 어려움 속에서 학계 28명의 연구자들이 모여 개정안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취재를 위해 현장에 있었던 기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진 전체 발표와 토론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날 연구발표회는 △저작자 창작의 지속적 보호 △새로운 기술환경의 반영 △컴퓨터프로그램저작권 △공정한 이용의 도모 △공정한 권리규제 △저작권 계약법 제도 등 여섯 가지 주제를 겨냥했다. ‘연구발표회’ 자리였지만, 성격은 공청회 비슷한 것으로 출판관계자들은 받아들였고,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항의와 불만, 이견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저작권 개정안’에 이용자나 저자의 권익은 상당 부분 반영했지만, 출판사들의 권익에는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었다. 정 교수의 연구발표회 취지에 담겼던 ‘기득권, 문화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장애’가 글자 그대로 ‘출판계’를 가리키거나, 이들의 ‘어쩔 수 없는’ 희생을 말하는 것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한국의 저작권법은 1957년에 처음 제정된 이후 1986년과 2006년의 전부 개정을 비롯해 몇 차례 크고 작은 개정이 이어졌다. 저작권을 둘러싼 환경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던 터라, 그 사이에 저작권자뿐만 아니라 저작인접권자(실연자, 음반제작자, 방송사업자) 및 DB 제작자에게는 계속해 권리를 추가,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졌다. 

지난 2월 9일(목)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출판 판면권 도입을 위한 저작권법 개정, 필요성과 방향’ 공청회에 발표자로 나섰던 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소장은 그간의 저작권법 개정 에 대해 “대부분 우리나라가 정치적, 경제적 목적으로 저작권 관련 국제조약에 가입하거나 미국, 유럽연합 등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이행하기 위해 국내 저작권법에 수용하는 방식으로 추진된 것이다. 이에 비해 출판자에게는 1957년 저작권법 제정 이래로 특별히 추가된 권리가 없었고, 2012년에 설정출판권과 별도로 배타적발행권을 설정받을 수 있게 됐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박 소장의 지적은 이런 뜻이다. 그간의 저작권법 개정의 역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저작자와 저작인접권자의 권리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말뜻은, “저작물 이용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출판자의 권리에 대한 배려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저작인접권은 저작물을 공중에 전달하는 데 있어서 자본 투자 및 창의적인 기여를 한 자에게 부여하는 권리다. 이 측면에서 볼 때 실연자, 음반사업자, 방송사업자 등 기존 저작인접권자와 출판자 사이에 차등을 둘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2016년 10월 저작권법 개정 연구발표회 자리가 소란스러웠던 것은 저작권 개정 과정에서 ‘출판계’의 목소리가 누락됐거나,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출판계의 시각과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다보니, 지식정보화시대 지식·문화산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출판산업계로서는 쉽게 ‘피로감’과 의욕상실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피로감과 의욕상실 요인은 출판계 외부에서만 오는 것일까. 사정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출판계약 현황에 대한 전체적인 지도가 그려진다면, 이에 따라 출판사-저자-독자가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저작권’ 환경을 지향할 수 있는 동력이 강화될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출판계약의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를 조사, 연구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출판계 내부에서 기본적으로 정리해야할 시급한 자기 진단 과제이기도 하다.  

박익순 소장의 말을 들어보자. “복수의 출판업계 종사자들에 따르면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은 일부 존재하지만, 복제배포권 양도계약은 거의 없고, 대부분 출판권설정계약을 체결하며, 단순출판허락계약이나 독점출판계약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출판권 설정 계약 기간은 3년 또는 5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출판권 설정 계약 기간과 관련, 다음과 같은 중견 학술출판사 ㄱ대표의 말이 설득력을 보인다. “계약기간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려울 수 있다. 어떤 책이든 그렇지만, 특히 공을 많이 들이는 책이 있다. 편집에서부터 마케팅까지 손이 안 가는 데가 없다. 한 권의 책이 ‘성공’하는 데는 다양한 변수와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작용한다. 잘 나가는 책이라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계약설정 기간이 3년 이하면 더욱 그렇다. 저작권자가 계약 연장을 원치 않아 다른 출판사로 언제든 출판권이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 그렇게 되면 굉장히 허탈해진다.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 출판 계약이 그래서 필요하다.”

출간계약 문제와 함께 출판자들이 공을 들이고 있는 게 바로 ‘판면권’이다. 복제시장의 급격한 확장도 문제지만, 저작권법 개정안에 포함된 ‘공정이용 문제’가 출판계로 하여금 ‘판면권’을 고심하게 만들었다. 저작자는 보호해주지만, 출판사는 제외한 데 따른 ‘배수의 진’이라고 할 수 있다. 김기태 세명대 교수는 “출판사에서는 원고의 정리, 활자·그림·사진 등의 선택과 배열, 판면의 크기와 레이아웃 등을 포함한 판면의 구성에 창의력과 인력 및 비용 투입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출판물에 있어서 판면의 구성은 편집자의 창의와 노력의 성과가 분명하므로, 이것을 별도의 권리로 인정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이대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크게 △출판자의 역할 인정 필요성 △타 저작인접권자 노력과의 비교 △저작인접권과 창작성 △경제적 이익 손상 보전의 필요성이라는 네 가지 관점에서  ‘판면권’ 인정 근거를 제시한다. 저작물을 일반 공중에게 전달하는 역할, 복제기기의 도입 및 보급에 따라 출판자의 경제적 이익 손상 보전 필요성에 주목한 논리다. 

2016년 1월 11일 노웅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면, 저작권법 제2조에 제37호를 신설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37. ‘판면’이란 출판된 저작물을 구성하는 각 면의 스타일, 구성, 레이아웃이나 일반적인 외관을 말한다.” 노웅래 의원의 개정안은  제3장의2(제90조의2부터 제90조의4까지)를 신설한다고 설명하면서, ‘판면은 이 법에 따른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학술출판협회측은 판면권 반영을 위한 개정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출판계약 실태 조사도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 관련, 한 가지 꼭 짚어야할 게 있다. 출판사를 비롯한 출판자의 목소리가 출판문화정책에 정당하게 반영돼야하듯, 저작권자인 저자들의 목소리도 제대로 담겨야 한다는 거다. 주변에 책을 집필하는 교수들에게 ‘저작권’을 물어보면, 잘 모르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저작권법 개정과 같은 문제에서 개별 저자들은 여전히 담 넘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세는 몇 퍼센트로 책정해서 받고 있는지, 계약기간은 언제까지인지, 출판설정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지만 내용에 통 밝지 못하다. 지식·문화산업은 저자와 출판사, 독자의 삼각관계가 행복할 때 융성을 구가할 수 있다. 어느 일방의 희생이 아닌,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 새로운 저작권법을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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