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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역사청산은 책임계승세력의 사과와 배상으로 이뤄져야"
"치유와 역사청산은 책임계승세력의 사과와 배상으로 이뤄져야"
  • 고성빈 제주대·정치외교학과
  • 승인 2017.06.22 2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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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열린 제주 4.3 학술세미나와 유족회 증언회

제주 4·3희생자유족회 등은 지난달 23일 미국에서 학술세미나와 유족회 증언회를 진행했다. 제주 4·3의 진실을 알리고 국가폭력의 가해자인 미국에 사과를 요청하기 위한 渡美 행사였다. 이들은 24일엔 의회를 찾아 진실규명을 위한 청원의견을 전달하는 한편, 백악관 앞에서 진실규명을 위한 집회도 열었다. 이 과정에 학술세미나 토론자로 함께 참여했던 고성빈 제주대 교수(정치외교학과)가 관련 글을 보내왔다. 고 교수의 글은 ‘국가폭력’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과 반성, 치유를 요청하고 있다. 

살다보면 과거의 역사로부터 무언가 빚진 것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때가 있다. 내가 토론자로 참가하게 된 것은 바로 제주인으로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기 위한 것이었다. 보람도 있었으나 실망과 분노도 안고 귀국하게 됐다. 도내 몇몇 NGO와 유족회가 공동으로 주관해 고령의 유족을 모시고 진행된 미국에서의 증언회는 일부 언론의 형식적 보도 이면에 차마 알리지 못한 서사가 있었다.  

우선 분명히 지적하고 각성을 촉구할 게 있다. 아쉽게도 비판적 시민-지식인의 진보운동에서 조차 서울중심의 문화와 엘리트주의는 주변부인 지방의 문제를 소홀히 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제주가 표방하는 각종 이슈들은 서울중심문화(육지중심문화)에 의해 많이 홀대받고 있으며 심지어 망각으로 유도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게 4·3학살의 트라우마와 왜곡된 역사청산문제다. 

한국의 작은 섬에서 인구의 10분지 1인 3만 명 이상이 희생된 학살은 1948년부터 몇 년에 걸쳐 일어났다. 그러나 왜 우리는 2017년 미국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미군정은 해방된 한국에서 발생한 백색테러의 안 보이는 조정자였으며 제주에서도 그랬다는 많은 학술적 증거들이 있다. 적지 않은 연구와 증언기록은 당시 미군정과 남한의 우익에 의한 제주도 정세에 대한 ‘의도적인 오해와 조작’이 그러한 비극을 이끌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어설픈 경제정책과 친일반역자들을 신정부에 지속적으로 임용한 것은 제주를 포함한 해방공간에서 심각한 대중의 분노를 일으켰으며, 1947년 제주 관덕정에서의 3·1절 시위와 강경진압으로 인한 불만이 결국에는 1948년 4·3의 비극적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커튼 뒤에서의 주동적 가해자인 미국은 지금까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일부 진보적 미국지식인들을 제외하고 어떠한 정부관계자도 공식적으로 4·3학살을 성찰하거나 사과를 한 적이 없다. 미국의 동아시아폭력의 역사에 대한 접근은 인도주의적이기보다는 전략적이다. 오바마가 원폭의 희생도시 히로시마를 방문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일본과의 공동견제 전략에서 나온 결과라고 해석이 된다. 그러나 전쟁책임이 없는 미국의 이러한 자기기만적 히로시마방문은 일본의 침략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아시아인들에게는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오리엔탈리즘과 신식민지배가 동아시아와 한국에서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러한 미국의 기만적 동아시아패권주의에 편승해 한국의 친미우익은 비극적 국가폭력의 역사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소극적이다.  

이렇듯 제주 4·3은 까오슝과 오키나와 문제와 더불어 전후 동아시아근대화 과정에서의 국가폭력의 역사청산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희생자이론’을 유추하면, 전후 한국 내부의 주변부 제주인은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패권구축과 한반도의 반공국가 구축을 위한 이념적 명분을 쌓기 위한 희생자로 이용됐다. 명백한 것은, 한국의 급격한 현대화와 사회변화의 역사에서는 지배계급보다 서민들이 더 많이 희생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사실을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4?·3 국가폭력에 대한 공식적 사과는 치유로 이어지는 역사청산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해 성사된 동류의식의 표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가해자를 계승하는 어떠한 정치세력도 이 사과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피해자의 치유에 영향을 줄 수 없으며, 더구나 역사청산도 이뤄진 게 아니다. 내년 70주년에 문재인정부가 같은 조치를 취해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보정권의 선의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마치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동정적인 일본의 일부 비판적 지성들이 사과한다고 해서, 그것을 일본의 총체적이고 진심어린 반성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의미와 같다. 즉, 침략의 역사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일왕과 보수세력의 계승자’가 여전히 죄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일부 진보적 지성들의 산발적인 반성의 언어는 폄하될 수는 없지만, 국가적인 진정한 사과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일뿐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과거의 학살이나 침략에 책임을 계승한 세력들이 사과를 하고 배상을 실행해야만 피해자의 후손들과 사회가 품고 있는 집단적인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와 역사청산이 이뤄질 것이다.

우리가 4·3유족회와 함께 미국을 방문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가해자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한국정부가 해야 할 일을 유가족과 시민들이 나서야 할 만큼 한국의 가해자의 계승세력은 아직도 무시와 망각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누군가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조직하는 일을 해야 한다. 역사는 반드시 선한자의 순수이성만이 아닌 추한자의 욕망의 흐름도 같이 병행해 흐른다. 이 글의 목적은 순수이성의 정언명령이 우리의 진보적 운동의 지표가 돼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려는 것이다.

1차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로스쿨세미나에서는 유족회가 학술세미나에 직접 참석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세계의 패권언어인 영어 앞에서 유족들은 과거 제주인이 겪었던 왜소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장소도 창고 같은 교실로 변경이 되면서 외부 참석자도 별로 없는 거의 우리끼리의 세미나가 이뤄졌다. 우리의 진지함의 무게에 비하면 지나친 홀대였다. 뉴 헤이븐의 교사들은 예정된 참석을 이유도 안 알린 채 취소했다. 소수의 외국학자들(일본, 대만, 미국)은 내용도 작년과 꼭 같은 중복발표에 ‘밥 먹고 사진 찍는’ 시간외에는 유족회와 얼굴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2차 뉴욕시립대 증언회에는 강우일 주교님과 양영수 신부님이 참가했다. 그런데 꾀죄죄한 강의실 하나 덜렁 내어준 미국 교수는 요즘 학교 일이 바쁘다는 인사말을 주저리주저리 하고는 나가버렸고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내내 우리끼리의 셀프증언과 청취가 이뤄졌다. 미국까지 가서 증인이 동행한 우리에게 증언을 하다니. 주교님은 미국사람들 없는 미국 증언회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뉴욕이 세계 최대의 도시임을 감안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우리끼리의 ‘셀프증언회’가 전개된 것은 이른바 상아탑 ‘프로젝트 사냥꾼’의 ‘염불보다 잿밥’에 눈먼 욕망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뉴욕은 각종 ‘진보적 시민-지식인’ 단체들이 모두 존재하는 세계최대의 도시인데도 우리만 모인 셀프행사라니.      

워싱턴 의사당 방문에서는 방문자명단에서 제외된 증인어르신이 “자신을 초대한 행사에 자신이 소외된 방문이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분노를 표출했다. 마지막으로, 백악관 앞에서의 피켓시위는 그나마도 잘 이뤄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미국방문의 목적이 좀 이뤄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외국 교수들은 불참했는데, 이 양반들은 의사당 방문의 인증사진을 마친 후에 선의의 참여자인 우리와 유족회와는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순수해야 될 4·3관련 행사에서 자신을 위한 ‘언론에 이름등재하기 비즈니스’로 삼으려는 인사에 의해 ‘순박한 유족들과 봉사차원의 참여자들’은 들러리로 동원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의도는 엄숙하나 겉만 화려한, 어떻게 보면 ‘자기기만적인 미국방문 유족증언회’였다. 

제주 4·3학살문제를 둘러싼 우리의 시각은 이렇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이성과 욕망의 흐름에 굴절돼 복수의 편광으로 나타난다. 희생자와 그 유족들, 그것을 바라보는 제3자의 여러 시각들이 합쳐져 원색은 사라지고 채색된 모습으로 다시 거울에 반사돼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모습으로 보여 지고 구성되는 대상이 됐다. 누군가는 순수한 의도에서, 또 누군가는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토대를 만들어줄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있다. 벌써 내년의 70주년 행사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비이성의 광기가 지배한 학살의 역사를 순수한 의도로 파헤치고 치유하려는 선한 의지가 있는가하면, 그것을 자신의 명예를 조작적으로 추구하려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추한 욕망도 역사의 흐름에서는 다 같이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여정이었다. 부디 모든 국가폭력의 역사청산의 진보적 운동에 선한 의지의 동참자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고성빈 제주대·정치외교학과
필자는 영국 런던대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대한 주제로 논문을 다수 발표했으며 동아시아의 지성사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저서로는『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이론적 탐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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