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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표절 공방에 ‘시점’ 이 중요한 이유
논문표절 공방에 ‘시점’ 이 중요한 이유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7.06.19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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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20년 이상 이전에 써놓은 논문이기 때문에 그 당시엔 각주가 달리지 않은 논문이 여러 개 있을 것이라 본다. 내가 논문을 쓴 것은 실증적 분석에 기초한 것이었다. 연구방법이 같아도 주제가 다르면 논문이 되는 것이다. 필요한 부분은 뒤에 참고문헌으로 돌리고, 이전에 있었던 연구에 대해서는 인용을 해서 썼던 부분이 많이 있다. 그것을 잘했다는 게 아니라 미흡한 부분은 있지만 그것이 논문의 본질과는 크게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에, 20년이 지난 논문을 현대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헤럴드경제> ‘이낙연 맹공격’ 정우택 대행… 2012년 논문 표절 의혹 2017년 5월 28일자 재인용)

▲ 최성욱 기자

5년 전, 박사학위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정우택 자유한국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의 당시 해명이다. 정 원내대표는 2012년 4·11총선에 출마(충북 청주 상당)하자마자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논문표절 의혹에 대한 공격을 매우 구체적으로 받았다. 이때 민주통합당은 “논문 중 검증대상인 (박사학위 논문의) 1천496개 문장(줄) 가운데 무단 도용 553줄(37%), 출처 미언급과 인용 미비 372줄(24.9%) 등 검증 분량의 61%(925줄)가 부적격 문장으로 드러났다”며 ‘이는 표절을 넘어 거의 복사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민주통합당의 논문검증에 대해 정원내대표는 앞서 언급한 해명을 내놓으면서 민주통합당의 논문표절 검증에 대해 ‘정치적 공세’라고 맞받아쳤다. 당시 <프레시안> 보도(「새누리 정우택, ‘성상납’에 이어 논문 표절 의혹」 2012년 3월 30일자)에 따르면, 정 후보 측 관계자는 정 원내대표보다 더 나갔다. 이 관계자는 “이미 논문심사 과정에서 다 나왔던 얘기며, 20년 전 하와이대학에서 5명의 심사관이 엄정히 심사한 끝에 독창성을 인정해 학위를 준 것이다. (해당논문에서 대만과 한국의 경제상황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이론’ 부분을 인용해야 논문이 되는 게 아니냐. (인용·도용 비율이) 60%가 아니라 80%면 어떠냐”라고까지 말했다.

정 원내대표 논문표절 공방 5년 후, 양당은 공수(攻守)가 정확히 반대로 바뀌었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측 인사들의 청와대 각료 등용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측은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의 과거 논문표절 의혹을 맨 앞에 내세웠다. 검증방식은 5년 전 민주통합당이 동원했던 그대로다. 논문 유사도, 문장기술방식, 단어와 문장 선택 등을 논문표절검색기로 낱낱이 꼬집고 있다. 예컨대 김상곤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석사논문(1982)은 100여 개 이상의 문장이 자신 혹은 타인의 기존 저작물과 일치하고, 박사학위 논문(1992)은 국내외 10여 개 문헌에서 출처 표시 없이 인용한 흔적이 총 40군데가 넘는다는 것이다.

고위공직으로 가는 길에 ‘학위논문 표절논란’은 석사급 이상의 학위소지자에겐 피해갈 수 없는 연례행사가 됐다. 이건 시간이 가도 여야의 공수만 바뀔 뿐, 상대의 논리로 공격하고 또 상대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방어하는 진풍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측도, 반박하는 측도,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도 실은 이 ‘진풍경’의 외피만 보고 있는 듯하다. 공직 후보자의 연구윤리 부도덕성만을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공직 후보자의 논문표절 논란은 끝을 모르고 치닫는가 싶지만, 어느 샌가 여야 간 합의에 따라 ‘용서 받을 수 있는 사건의 하나’로 마무리 되곤 한다. 그러다 인사검증의 장이 다시 열리면 연구윤리에 치명적인 외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로 증강돼 등장한다. 학계는 다시 ‘만신창이’가 되고, 관련 대상자의 학위는 오물이 잔뜩 묻은, 부정하고 저급한 것으로 취급되지만, 이마저도 아주 잠시만 감수하면 마치 모든 게 ‘없던 일’이 되는 구조다.

학계 자성으로 마련한 ‘표절규정’ 있지만… 정치권과 언론은 무시

왜 이렇게 공수만 뒤바뀌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논문 표절검증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판을 치는 걸까. 그리고 언론은 어째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팩트 체크’하지 못한 채 부풀리고 있는 걸까. 논문 표절에 관한한 학계의 성찰적 합의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이 대목에서 2008년 서울대 「연구윤리지침」과 2014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이공계 분야 연구윤리 매뉴얼」은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2005년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의 줄기세포연구 논문조작 사건에서 촉발된 서울대 「연구윤리지침」은 연구윤리를 바로세우자는 학계의 자성이 동반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지침에는 “통상적으로 타인 논문에서 연속적으로 두 문장 이상을 인용표시 없이 동일하게 발췌·사용하는 경우 연구 표절로 인정한다. 이는 사용언어가 다른 경우에도 해당된다”는 조항 등이 있는데, 논문표절의 구체적인 기준을 명문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또 논문에 등장하는 통계나 문장이 같을 경우에도 출처를 표시하지 않으면 이중게재 혹은 표절로 판명토록 했다. 2010년 동지침 개정안은 ‘인용을 통한 (독자성 없는) 재구성’까지 금지시키는 등 논문표절에 관한 규정을 보다 세분화하고 강화했다. 이런 양상은 학계 전반에서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까지 이어진 공직 후보자 논문표절 의혹 검증과 보도는 앞의 두 규정을 ‘나몰라라’하며 무시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에서 각자의 인사검증 무기로 도덕성에 흠집내기 좋은 학위논문 표절문제를 꺼내드는 행위도 문제지만, 언론까지 여기에 무비판적으로 가세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논문표절이라는 소재를 보도의 화수분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여기엔 ‘시점’ 문제가 깡그리 무시된다. 문제를 삼아야 한다면, 그리고 검증의 무대로 소환해야 하는 논문은, 학계의 전반적인 암묵적 합의 속에서 연구윤리가 마련된 시점 이후의 것들이어야 한다. 만일, 시점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더 명쾌해져야 한다면, 학계의 자성을 존중하면서 이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예컨대 정치권에서는 신사협정을 맺고, 학계에서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연구윤리를 강화하면 좋을 것이다. 그게 불합리하고 비생산적인 표절시비로 국회의 힘을 낭비하지 않는 임계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제는 표절 시비보다, 관련 후보자의 논문이 지닌 ‘전문성’과 정책적 연계성을 진단하는 방향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이 말이 연구윤리 마련 이후의 논문에 대한 표절검증까지 살살하자는 것으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연구윤리 이후에 발표한 논문들에 대한 검증은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학자들이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국민을 위해 출사표를 던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들의 도덕성을 측량하고자 한다면,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성찰과 합의 속에서 학계 자율로 마련한, ‘연구윤리’ 의식이 가동된 시점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 학문 공동체가 연구윤리를 강조한 이후에도 ‘표절’을 일삼았다면, 이는 좌시할 수 없는 반학문공동체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논문표절에 관한 ‘기준과 시점’에 대한 논의가 학계 안팎에서 심화되길 기대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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