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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에 대한 학계평가
‘전환시대의 논리’에 대한 학계평가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12.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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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교수에 대한 학계의 의견은 지식인, 지성인으로서의 모델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뒤집어 말하면 학자로서 그 사상적 학문적 엄밀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문의 범위를 이론과 사상에 국한시키지 않고, 현실의 문제를 제기하는 실존적 고민의 영역까지 확장한다면, 학자로서의 평가도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전제였다. 또 이런 확장이 당위성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공론이기도 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라고 회고하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지성사적 의미를 높이 평가한다. 지식사회에서 금기시되고 성역화돼 있던 것에 서슴없는 문제제기를 한 점이 의미 깊다는 것이다. “다만 리 교수가 연구한 분야를 후학들이 엄밀하게 연구해 오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초반의 문제의식을 학술적인 이론으로 이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보였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리 교수가 아니었다면 레드콤플렉스를 벗어나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중국과 베트남 등 우리와 다른 체제를 이해하기조차 꺼리던 시절, 세계관을 바꿀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생각이다. 강 교수는 “정치, 경제, 노동 분야에서 변화를 끌어낸 원동력”이라고 평가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국제대학원)는 리 교수의 행보를 “한국적인 사회과학”이라고 규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제도권에 있는 학자들이 미처 해내지 못했던 예민한 문제를 건드리고, 삶의 영역과 한국적 고민을 담지한 사회이론이라는 평가. 즉 정통학자들 만큼의 이론화 작업은 없었지만, 그 보다 큰 고민인 휴머니즘, 공동체에 대한 신뢰 등을 담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진상 경상대 교수(사회학)는 80년대 이후 리 교수의 행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를 보여줬다. 70년대에는 그의 책이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독보적인 존재였지만, 80년대 후반부터 그 영향력이 적어졌다는 데 초점이 있다. 즉 오히려 “90년대 들어와서 학계의 분위기가 완화됐는데, 그때 보다 강한 주장을 했더라면 역사적인 위상이 더 굳어지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또 일관되게 유지했지만, 정작 중요한 때에 중립적인 입장으로 흐른 것은 아니었나”라며 유보적인 평가를 내렸다. “리 교수가 제기한 중요한 문제들 역시 현재에 와서 표면적인 변화를 끌어내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라는 생각도 덧붙였다.

그러나 리 교수가 가진 현실적인 고민과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높은 점수를 매겼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리 교수는 칼럼 하나를 쓰기 위해서도 1차 자료를 뒤지고, 단어 하나하나 힘들여 가며 썼다”라며 요즘처럼 쉽게 비판하고 글을 남발하는 풍토에서는 아쉬운 태도라고 말했다. “이상향을 지향하면서도 도그마에 빠지지 않았고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식견도 대단하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만흠 가톨릭대 교수(정치외교학) 역시 “학자들이 마치 상품을 내는 듯이 책을 쓰고 이론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현실에 대한 자기 고민을 꾸준히 제기하며 흔들림 없는 태도를 가졌다”라며 학문적 치열함을 높이 샀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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