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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도시 볼로냐에서 大家를 만든 '혀의 욕망'을 더듬다.
음식의 도시 볼로냐에서 大家를 만든 '혀의 욕망'을 더듬다.
  •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17.05.29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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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음식-음식의 문화사_ 3.미식의 세계(1): 루이 14세·롯시니가 사랑한 음식:아스파라거스
▲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한 오베르암메르가우 풍경

이탈리아 사람: “이 세상에는 이탈리아 요리와 다른 나라의‘양식’이 있다.”
프랑스 사람: “음식이란 나와 이웃이 인생에서 가장 기념할만한 일을 같이 즐기는 전통”
루이14세가 궁중 정원사를 불러 특명을 내린다.“ 아스파라거스를 기르도록 하라.”

당시 프랑스 귀족들은 아스파라거스에 흠뻑 빠져 있었다.
100여 년 전인 1912년 4월 10일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가 대서양 항해 도중 침몰한다. 그 후 백년이 지난 2012년 이 배의 일등선실 승객들에게 서빙한 10코스 저녁 정찬 메뉴판이 영국 윌트셔 주 경매에서 4만6천파운드(약 7천만원)에 낙찰됐다. 10코스의 세 번째 요리가 모슬린 소스(Mousseline sauce. 올랑데즈 소스에 휘핑 크림을 1: 1의 비율로 섞어 만든 소스)를 곁들인 연어, 메인 디시는 구운 오리와 송아지 등심, 디저트로는 프랑스식 아이스크림이 제공됐다.

사랑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듯, 10코스 정찬을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채식주의자인 나는 10코스 고품격 럭셔리 정찬이 별 의미가 없다. 단 한 가지 요리를 제외하고. 그걸 나는 알프스 산맥 골짜기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마을 오베르암메르가우(Oberammergau)에서 맛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일에서 제일 부자도시 뮌헨에서는 팔려고 진열해 놓은 잘 생긴 흰 아스파라거스를 민망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늘 미식의 소재는 다름 아닌 아스파라거스(asparagus)다.

▲ 1701년 Hyacinthe Rigaud가 그린 루이14세 자화상(출처=https://en.wikipedia.org)

그런데 누군가는 왜 그렇게 비싼 값을 주고 타이타닉호의 메뉴판을 사들인 걸까. 단순한 호기심때문일까. 그만큼 투자 가치가 있어서 일까. 나는 음식을 인간의 욕망과 결부지어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다른 해석을 해본다. 자기도 초호화유람선 일등선실의 승객이 돼 그들과 함께 최상의 또는 호사스럽거나 진귀한 음식을 먹는 존재이고 싶은 신분상승의 욕구를 채우고자 그걸 구입한 건 아닐까. 여자들이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프라다 옷을 입는 것과 유사한 심리라고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인간은 본디 불평등하게 태어나 불평등하게 살고 있다. 아스파라거스를 원하는 만큼 먹고, 값비싼 와인을 물처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자 한 알조차 제대로 못 먹는 사람들도 있다. 이게 인간 사회의 현실이다. 따라서 사람은 꿈을 꾼다. 욕망의 꿈을 꾼다. 나에게도 부자나 상류층 인사들이
먹는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쩌다 큰 맘 먹고 비싼 음식을 먹으로 가기도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신분의 차이, 귀천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승려들에 의한 도시(By the monks)’라는 뜻의 고중세 고지 게르만어 뮈니켄(the Old/Middle High German term Munichen), 게르만어로는 뮌헨(München), 바바리아어(Bavarian)로는 밍가(Minga)라 불리는 뮤니크(Munich)를 차근차근 바라보기 위해서라면 시내 중심가의 마리엔 광장을 찾아가는 게 좋다. 그곳에 많은 이들의 시선과 마음을 빼앗는 멋진 식품이 있다. 싹(sprout) 또는 순(shoot)이라는 의미의 페르시아어에서 온 아스파라거스다. 아스파라거스는 봄철 채소다. 거대한 대륙 중국에서는 북경 표준어로 루순(蘆筍), 광동어로 로우세운(露筍)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먹어야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먹어야 행복하다. 그래서 늘 먹는다. 먹지 않으면 침울하고 불행하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 이런 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름을 대면 설마 할 그들은 누구일까.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가 대식가에 폭식가라면, 이탈리아 음악가 롯시니는 전력을 다해 맛있는 걸 즐겼다. 그의 삶은 맛기행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대왕 이도도 먹는 걸 사랑했다.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 역시 무지막지하게 먹어댔다.

이렇듯 이상하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 굶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늘 게걸스럽게 먹거나 먹는 음시의 양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된다. 교양 여부, 남녀와 노소의 차이는 식탐과 무관한 변수다. 식탐의 원인을 유아시절 구강기 애착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심리학 특히 정신분석학 쪽의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의 견해는 당연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세상에 반드시라는 건 없다. 절대로라는 건 없다. 따라서 식탐이 어린 시절 정신적 외상인 트라우마나 가족역동(family dynamics) 때문에 생겨났을 수 있으나 식탐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기질이나 시대 상황, 개인이 속한 사회의 문화적 배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문화가 사람을 만들고 나아가 시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식탐’은 결핍 혹은 과잉이 아니라‘문화’의 결과

음식 이야기를 공감하게 엮어내는 최낙언이라는 사람은 그의 책 어디선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화는 만들기 나름이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피자는 이탈리아의 오랜 전통식품이라 생각할 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50년에 불과하다. 모차렐라 치즈가 피자에 처음 사용된 건 공식적으로 1889년부터다. 일부 지역에서 유명해졌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 오베르암메르가우 마을에서 먹은 치킨과 흰 아스파라거스 요리

피자의 팔자가 바뀐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 이탈리아에 상륙한 미군 병사들은 피자에 열광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간 병사들은 미국에도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만들어 먹는 피자집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들이 먹으면서 피자가 미국 사회 전반에 알려졌다. 그리고 이탈리아를 찾은 미국인 관광객들이 피자를 찾아 피자집이 이탈리아 전역에 들어섰다. 피자 먹는 미국인을 보면서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도 피자를 알게 됐다. 특히 미국 문화를 선망하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피자를 먹기 시작해, 1960~70년대부터 이탈리아에서 피자가 본격적으로 소비됐다. 피자가 이탈리아 국민 음식이 된 것은 50년 정도에 불과하고 피자를 알아봐준 사람은 외국인이다.”

‘음식의 도시’볼료냐에 와서 자주 피자를 사먹는 내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회랑의 도시’이자‘골목길의 도시’인 이곳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고 그때마다 매번 길을 묻는다. 어쩌면 음식을 향한 인간의 욕망에 자꾸만 눈길을 돌리는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되는지도 모른다. 웹서치를 하다가 우연히 정세진이라는 작가가『식탐일기』라는 책을 펴냈음을 발견했다. 뭐지? 목차를 살피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대로 글을 써야지 하는 각오가 뒤를 따랐다. 알고 보니 정세진은 여성이고 강릉 출신이었다. 명문 강릉여고를 나와 연세대 사회학과를 다닌 재원이다. 세상일을 하다 은퇴하고 자유의 몸으로 글쓰기에 매진하는 소신 있는 여성이다.

그가 음악가이자 미식가로 작곡가 롯시니를 다뤘다. 롯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년)도 한창 나이에 은퇴를 했다. 거기까지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는 천재였나 보다. 동요나 클래식 소품도 아니고 십대 중반부터 오페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른일곱 되던 해인 1829년 마지막 오페라「기욤 텔(Guillaume Tell, 윌리엄 텔)」을 끝으로 돌연 은퇴 선언을 한다. 그렇더라도, 음식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롯시니의 음악도 없었을 것이다.

롯시니는 20여 년 동안『세비야의 이발사』를 포함 총 37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당시 그는 베토벤보다 인기가 있었다. 롯시니의 은퇴의 변은 이랬다. “미식과 요리와 트러플(Truffle, 송로버섯)을 찾는 돼지 사육에 전념하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토리노 일대의 주민들은 송로버섯을 채취할 때 돼지를 이용한다고 한다. 돼지가 버섯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이다. 마약 탐지견이 있으니, 버섯 추적돈도 있을 법하다.

“먹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소화시켜라. 사실 이 네 가지 요소는 샴페인을 따면 거품이 흘러넘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마치 인생이라는 가벼운 내용의 희극적 오페라, 즉 부파(BUFFA)의 4막과 같다.”

부파(Buffa)는 이탈리아 스타일의 희가극 오페라를 말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이탈리아 스타일의 오페라 부파(Opera Buffa), 다른 하나는 독일 전래 스타일인 징슈필(Singspiel)이다. 모차르트는 37세에 일찌감치 세상을 버리기 전까지 모두 22편의 오페라를 남겼는데, 그 중에서 오페라 부파 스타일은「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등이다.

롯시니는 음식 이름으로 오페라 소품의 제목을 짓기도 하고, 직접 와인을 담그기도 하고, 지인을 집으로 초대해 직접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기도 했단다. 또 이탈리아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요리 재료를 공수하기도 했는데, 그 목록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평생 세 번 울었다고 한다.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세빌리아의 이발사」초연이 관객들의 난동으로 엉망이 됐을 때,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감동했을 때, 센강으로 뱃놀이를 가면서 송로버섯을 채운 칠면조 요리를 물에 빠뜨렸을 때, 이렇게 세 번이다.

▲ 작곡가 롯시니 복원판(출처=Etienne Carjat, harvardartmuseums.org).

전처 콜브린과 이혼한 뒤, 1846년 펠레시에와 재혼한 그가 볼로냐에 두 번째 신혼집을 마련한 이유가 볼로냐의 질 좋은 송로버섯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또 볼로냐를 떠나 피렌체를 거쳐 1855년 파리에 정착한 이유도 파리의 맛있는 음식 때문이라고 한다.

소스라쳐 눈을 뜨니 점심 먹으며 못하는 맥주를 겻들인 뒤 끝에 졸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오늘 먹은 음식은? 놀라지 마시라. 아스파라거스 요리. 그리고 독일 뮌헨 지방이 자랑하는 호프 브러우 맥주. 후식도 있다. 싱싱하고 당도 알맞은 딸기. 물론 생크림을 끼얹는다. 그리고 악마의 유혹, 죽음보다 달콤한 음료 커피. 잠에서 깬 내게서는 아직도 커피의 향이 남아 있다.

내가 아스파라거스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 2학년 봄 학기 영문강독 시간에 읽은 영국 작가 서머셋 모옴(1874~1965)의 단편소설「오찬(The Luncheon)」을 통해서다.
내용은 이렇다.

모옴이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운 신출내기 작가 시절 파리에 살고 있을 때 이른바 팬이라는 중년 여자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서 그녀는 마침 일이 있어 파리를 지나가는데 시간이 되면 잠깐 만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한다. ‘레스또랑 아 르 파예(Restaurant Le Fayet)’라는 식당에서. 나이도 어리고 훌륭하신 작가라는 찬사를 받은 터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모옴은 그러마 하고 약속을 잡는다. 그런데‘파예’라는 식당은 프랑스 상원의원들이 단골인 고급 식당이었다. 수중의 돈은 한 달 생활비 80 프랑. 당시 보통 점심값은 15 프랑이면 충분했고, 앞으로 두 주간 커피를 사마시지 않으면 한 달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다행히 그녀가 말한다. “저는 점심에 아무 것도 먹지 않아요.”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작가를 향해 중년의 여인은 다 하지 못한 말을 한다.“ 저는 한 가지만 먹어요. 연어 같은 거라면 몰라도. 혹시 캐비어가 있을지 모르겠네.”“점심이란 건 그저 대화를 위해 한 입 먹는 정도라서, 그렇지만 혹시 큼직한 아스파라거스가 있다면 먹어 볼 의향이 있어요.”이런 식으로 그녀는 크고 부드럽고 맛이 깊은 아스파라거스까지 주문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작전에 말려들어간 작가는 한 달 치 생활비로 밥값을 지불해야 했다. 상당히 화가 났을 것이다. 복수는 시간이 대신했다. 몇 년 후 길에서 만난 그녀가 완전 뚱보로 돼 있는 것으로.

‘아스파라거스’의 백미는 씹힐 때 사각거리는 촉감

▲ 작곡가 롯시니를 사로잡았던 음식은 송로버섯을 채운 칠면조 요리로 알려졌다. 사진속의 버섯이 바로 송로버섯(truffle)이다(왼쪽). 루이14세가 즐겨먹었던 음식 재료인 아스파라거스(오른쪽).

독일에서는‘스파르겔(spargel)’이라 부르는 아스파라거스는 칼로리가 낮고 비타민과 미네랄 함유량이 많다. 요리로 만드는 법은 간단해서 잘 다듬은 아스파라거스에 올랑데즈 소스(Hollandaise sauce. 올랑데즈 소스는 허브를 우려낸 화이트 와인과 달걀노른자, 버터, 레몬즙으로 만드는데 중탕으로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며 거품기를 이용해 재료를 잘 섞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분리되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이 만들어 둘 수가 없다)나 올랑데즈 소스를 휘핑 크림과 일대일로 섞어 만든 무슬린 소스를 곁들여 발라 먹기만 해도 실속 있는 특식이 된다.

미식가(gourmet)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흔히 버터를 녹여 살짝 구운 아스파라거스의 매력은 입안에 들어가 씹힐 때의 사각거리는 촉감이다. 이것이 아스파라거스의 백미이자 별미다.

아스파라거스는 가능하면 필요한 때 해당 지역산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게 좋다. 아스파라거스, 특히 하얀 아스파라거스는 한 번 자르면 수분이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마른 아스파라거스를 먹으면 마치 마른 나뭇가지를 씹는 것 같다.

아스파라거스 요리를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싱싱한 흰 아스파라거스를 구하는 것. 무엇보다 끝부분 잘린 데가 말랐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끝부분을 부드럽게 눌러 짜면 품질 좋은 아스파라거스의 경우 수액이 스미어 나온다.

양질의 아스파라거스는 새눈이 똑바로 나고 색깔은 뽀얀 흰색이다. 보라색을 띠거나 구부러져 있으면 맛은 같아도 껍질 벗기기가 어렵고 자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독일 사람들은 보라색을 흠결이 있는 색이라고 꺼리는 경향이 있다. 또 아스파라거스는 두툼하고 단단해야 좋다. 아스파라거스 새싹이 굵직할수록 껍질을 벗기기가 쉽고 껍질을 벗기고 나도 식용 부분이 많이 남는다. 미관과 촉감 측면에서도 굵고 단단한 놈이 좋다.

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멋진 맛을 선사하는 식물이니만치 저장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아스파라거스는 구입 후 하루나 이틀 이상 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기 있는 키친타월 같은 데 싸서 냉장고 야채 칸에 보관하는 게 좋다. 다루는 것도 조심해서 손상을 최소화해야 한다. 초록 아스파라거스에 비해 흰 아스파라거스는 유연하지 못해 쉽게 부러진다. 특히 머리 뒷부분이 그렇다. 여전히 향긋한 냄새가 날 때 스톡(stock, 육수)과 수프용으로 아스파라거스를 보관해두는 게 역시 좋다.

▲ 뮌헨 마리엔 광장에서 정력에 좋다는 틈실한 흰 아스파라거스를 팔고 있는 광경. 뮌헨의 명소 마리엔 광장에서 목격한 진귀한 食物, 흰 아스파라거스는 정력제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깎아놓은 모습이 보기에 매우 민망하다. 1kg에 7.99 유로라면 우리나라 돈으로 1만 원 정도. 재배농가가 늘어나 값이 많이 떨어졌다.

흰 아스파라거스는 겉에 섬유질, 어떤 때는 목질 섬유소가 많기 때문에 껍질을 벗겨야 한다. 껍질을 벗긴 흰 아스파라거스는 알맞게 잘라서 조리를 한다. 조리법은 찜(steaming)과 탕(boiling)이 가장 흔한 방식이고, 초록 아스파라거스는 굽기(roasting)가 적격이다.
로스팅을 할 때는 헤이즐넛(Hazelnuts)을 곁들인다.

그런데 인간의 미식 욕구를 충족시킬 아스파라거스 요리는 어떻게 하는가? 그건 다음 글에서 얘기하도록 한다.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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