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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우리 사회의 인권을 전망한다
21세기 우리 사회의 인권을 전망한다
  • 교수신문
  • 승인 2002.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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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년이 저무는 시점이다. 두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으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항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주말 광화문의 촛불 시위에는 수만 명이 참여했다고 보도됐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생명권이 유린됐는데, 어느 누구도 잘못했다고 판결 받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이 배경에는 불평등한 한미 관계의 오랜 역사나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공정도 작용하고 있겠지만, 인권이 존귀하고, 또 인권 유린의 범죄에 대해 죄값을 물어야 한다는 온 국민의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러한 국민의 분노와, 또 그 과정에서 겪는 경험은 ‘인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6월에 일어난 일이 이제 비로소 온 국민의 관심을 끌게 됐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인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얼마나 낮고, 또 느리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어린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그 사건에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고, 또 문제 해결의 노력도 빨리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소수’에 의해서 외롭게 제기돼 왔다.

그래도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 할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1980년 광주를 보라고 할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며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들이 수많은 시민들을 한낮 길거리에서 총칼로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인권 가운데 가장 고귀한 생명권이 무참히도 유린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분노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었다. 강압적인 군사 통치아래 광화문이 아니라 골목 어귀에서조차 온전하게 항의할 수 없었다.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기까지 십 수년이 걸렸다. 그러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처절하게 싸웠고, 또 목숨을 잃은 이도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인권 상황에 내재된 이중적 양상을 보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난 10여년 동안 인권 상황은 크게 개선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은 낮고, 인권 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또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하며 은폐를 시도했던 이른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올해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고문으로 죽는 일이 또 일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장애인이나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은 심각한 차별과 푸대접을 받고 있고, 저소득층 주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곤궁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으며,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억압 등 곳곳에서 드러나는 인권 침해와 유린 현상은 우리 사회의 인권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이는 또 이렇게 이야기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때처럼 은폐하려고 하지 않고 신속하게 책임을 물은 것을 보면 그만큼 발전한 것 아닌가.” 물론 과거와 비교할 때 인권은 놀라울 정도로 증진됐다. 그러나 인권은 과거보다 개선됐다거나 다른 사회와 비교해 훨씬 나은 상황이라고 해, 현재의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거나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존엄성을 누리며 평등하게 대우받는 것이 인간의 기본 권리라는 잣대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일관되게 적용돼야 할 문제이지, 상대적으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절대적인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인권 실천을 위해 그에 합당한 사회적 장치가 얼마만큼 마련돼 있는가에 있다.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사회적 장치가 마련됐을 때야말로 인권 발전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인권 실천의 대표적인 사회적 장치로 법 제정과 집행을 들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적 장치는 공정한 사회적 과정을 위해 필수적이다. 인권 관련 사항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인권 관련 법규의 정비가 크게 증진됐으며, 또 인권 상황의 개선에 기여했다. 보기를 들어, 인권을 중시한 ‘새로운’ 법 제정은 성폭력, 성희롱 같은 개념의 등장, 가정 폭력, 아동 학대 같은 문제의 공적 관심 대상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실형을 받는 상황이고, 표현이나 믿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의 정신과 배치되는 국가보안법이 그대로 집행되고 있다. 인권 상황이 크게 개선됐지만, 아직도 인권 중심의 법적 장치가 미비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인권위원회나 여성부의 출범, 사회 복지 제도의 확충 등은 인권 증진의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인권 관련 보도가 많아지고, 인권 침해의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인권과 연계하는 것도 인권 발전의 결과로 이해된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나 기구의 등장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인권은 추상적인 담론의 대상으로 머무르거나 한번 실행됐다고 굳어지는 결정체가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항상 확인돼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진주인권회의’는 하나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주지역의 활동가들과 관계자들이 모여 지역공동체의 인권 상황을 진단하고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려는 것이다. 정부기구, 비정부기구, 시민 개개인, 시민사회 전체 등이 함께 인권을 논의할 때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또 인권 실천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결국 인권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 줄 때 비로소 인권은 올바로 서게 된다. 그렇게 될 때 21세기가 인간의 존엄성과 안녕 복리(well-being)가 실천되는 ‘인권의 세기’가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김중섭 / 경상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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