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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그 오래된 가치의 의미
민주주의, 그 오래된 가치의 의미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7.05.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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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정부 바뀌고 불과 열흘 남짓 지났건만 세상은 벌써 작은 개벽을 한다. 선거 끝나자 세상 빛이 달라졌고 열흘 지나자 어지럽던 일들이 빠르게 정돈된다.

뭣보다 국정교과서가 단박에 폐기 처분됐다. 그렇게 국민지지 못 받고도 그렇게 끈질기게 버틴 사안도 없었을 것이다. 누가 어떻게 쓰는지, 비밀 작전 벌이듯 명단도 공개 못하는 교과서로 어떻게 학생들 공부 시킬 생각이었는지? 국사학계에서 지원자 다 채울 수도 없어 전공도 경력도 미흡한 사람들로 채워 넣은 국사책 저술 ‘농단’이 하루아침에 막을 내렸다. 한국사 하는 분들 99%가 반대해도 ‘교육부’는 갈 길 가겠다는 식, 정말 대략난감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광주항쟁 기념식 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고 애국가도 4절까지 함께 불렀다 한다. 이 또한 시원스럽다면 시원스러운 해결이다. 필자는 대학 84학번, 그러니까 1984년에 대학에 들어간, 한 때 유행하던 말로 하면 386세대다. 필자가 학생으로 소속돼 있던 인문대학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단과대학 노래가 바로 이 곡이었다. 이 노래에 무슨 북한의 그 6.25 전범을 기리는 뜻이 담겨 있나? 그래도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광주의 희생자들, 유족들, 시민들을 지싯지싯 짓눌러 온 것이 바로 이 노래 ‘껀’이었다.

필자가 함께 문학 활동을 하는 동인들 사이에서 이번에는 ‘윤석열’이라는 이름이 오르내렸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법을 알 리 없고 정치도 세세한 사정 알 리 없다. 이 이름자를 각별히 기억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라면 일이다. 이 이름 가진 이가 지난 정부 아래서 선거 부정과 관련된 문제를 조사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곳저곳 ‘좌천성’으로 떠돌아다닌 것을 많은 이들이 안다. 이런 분이 신념에 맞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배려된 사실에서 글 쓰는 사람조차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부디, 언제까지든, 사람보고 충성하지는 않기를 바라며.

정치적인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논란과 시비는 아예 없을 수 없다. 드러나지 않는 찬반도 있겠지만 비교적 나쁘지 않은 변화라 생각된다. 그런 중 필자의 관심을 은근히 끈 뉴스 하나가 있다. 이번 정부는 ‘무슨 정부’라는 수식을 달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문민정부라든가 국민의 정부라든가 참여정부라든가 실용정부라든가 하는 수식을 붙여 자신을 정의해 왔다. 지난 정부는 무슨 정부라고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어떻든 이번에는 ‘수식 없이’ 그냥 아무개정부,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무슨 슬로건을 붙이면 그대로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생기고, 그러면서도 그대로 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온갖 오해와 억측과 비난이 일고, 스스로 정한 목표에서 벗어나는 숱한 정책 혼선을 범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국민 지지를 잃어버리는 현상들을, 우리는 지난 정부들 동안 숱하게 목격했던 바다. 이러한 수식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는, 지혜라면 지혜를 발휘하고자 한 것을, 무심코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수식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바라마지 않는다. 떠들썩한 슬로건보다 말없는 실행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지금은, 보수다 진보다 하는 편 가름, 이념 가름에서 벗어나, 상식과 미래의 관점에서, 모든 비정상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시급한 때다. 또 그렇다면 지금은 다른 특별한, 멋진 가치를 내세우기에 앞서, ‘민주주의’라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안정성 있고, 함께 동의할 수 있는 가치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고 이를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벌써 옛일이 돼버린 노무현 정부 시대에, 필자는, 이 ‘민주주의’라는 것도 한계 많은 인간이 만든 제도의 하나일 뿐이므로, 민주주의 만능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후 두 개의 정부를 지나치며 보니, 이제 그렇게 한계 많아 보이던 그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떻게나 귀하게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어느 정도 합의할 수 있는 그 민주주의라는 것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을 것이다. 다 함께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을 가꿔가야 할 때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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