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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보상금', 고사 직전의 학술출판 회생 방안될 수 있다.
'복제보상금', 고사 직전의 학술출판 회생 방안될 수 있다.
  •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출판평론가
  • 승인 2017.05.1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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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_ 학술출판이 미래를 만든다 ④ 장애물 혹은 위협들-디지털복제(2)

빠르게 전환한 디지털환경 속에서 ‘학술출판’의 자리가 계속 위협받고 있다. 학술전문서는 시장에서 점점 위축되고 있다. 불법복제, 북스캔, 베끼기 출판, 출판사의 정당한 노력에 대한 보상 시스템의 부재, 정부의 정책적 방임 등이 손꼽히는 장애물이다. 학술 전문서와 대학교재 등 질 높은 출판 콘텐츠를 확보해야할 시기임에도 안팎의 장애와 싸우는 한국 학술출판 상황은 안타깝기만 하다. 학술출판이 살아나야 지식과 문화의 지평이 두터워질 수 있다. <교수신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학술 출판이 처한 현주소,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모색하는 ‘학술출판이 미래를 만든다’(총 10회)를 마련했다. 이번호에서는 ‘장애물 혹은 위협들-디지털복제’ 문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

 

 

 

 

 

 

 


우리 대학가에서 무단복제가 횡행하는 까닭을 들여다보면 학습윤리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일차적으로 교·강사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 적절한 교재를 선정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해당 교과목 학습에 있어 주된 수단이라면 당연히 학생들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구입한 정본교재를 지참하도록 지도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엄격하게 관리 감독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정본이 복제본으로 둔갑하기 일쑤다. 교·강사의 입장에서 보면 ‘교재를 강매한다’는 민원의 대상이 되거나 ‘너무 비싸다’는 원성을 듣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귀찮은 일들이 생기다 보니 무단복제 행위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경우에는 매 학기 첫 시간에 교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만일 정본교재를 지참하지 않는 경우 출석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만일 교수의 처사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수강정정 기간에 다른 교과목으로 바꿔 수강할 것을 권유한다. 결과는 어떨까? 20년 이상 지켜본 바에 따르면 수강생 수가 줄어든다거나 그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물론 무조건 또는 강압적으로 교재 지참을 종용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 왜 교재가 중요하며 무단복제를 하면 안 되는지, 학습윤리 차원에서 학생들을 설득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학습윤리란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규칙과 덕목’으로서 학습자들이 공부하면서 지켜야 할 올바른 자세나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학습윤리가 중요한 이유는 우선 대학에서 추구하는 것이 곧 진리이며, 정직한 학습활동만이 학습능력을 배양해 줄 뿐만 아니라, 학문 탐구를 통해 익히는 것이 다양한 지식과 더불어 올바른 학문 태도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학습자들이 곧 연구자로 성장하는 인적 자산이기에 정직하지 못하거나 변칙적인 학습 태도는 연구윤리 위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교수자들이 학습윤리 차원에서 정본교재 사용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설득함으로써 디지털복제를 포함한 무단복제의 폐해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책다운 책, 사고 싶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

요사이 유행하는 말로 솔직히 대학교재의 가장 큰 단점은 가성비 곧 ‘가격 대비 성능’이 낮다는 것이 아닐까. 허술하고 조잡한 편집 디자인, 별로 좋지 않은 재질과 장정에도 불구하고 책값이 매우 비싸다는 원성이 자자한 게 대학교재의 일반적 현실이라면 지나친 진단일까. 대개 일반 단행본을 교재로 사용하는 경우보다는 아예 교재용으로 만든 책을 사용하는 경우에 가성비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일반 단행본은 출판사의 경쟁적 노력이 작용한 결과물이지만 교재용 도서는 대개 한정된 부수를 발행할 수밖에 없고, 전문적인 학술도서와 마찬가지로 적은 부수로 수지타산을 맞추려다 보니 제작비 절감과 더불어 높은 정가 책정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이 맞물린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점이 용인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교재 및 학술도서 출판사들의 성찰이 필요하다. 급기야 이른바 ‘표지갈이’ 사태까지 터지면서 학술출판계의 도덕적 해이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은 독자들을 무단복제로 내모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1980년대 캠퍼스 풍경을 떠올려보면 청바지 차림의 남학생들은 대개 뒷주머니에 영문잡지를 꽂았거나 단행본 몇 권쯤 옆구리에 끼고 다녔으며, 여학생들은 두툼한 교재를 한 아름 안고 다니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것도 책 제목이 또렷이 보이도록 표지를 드러낸 채………. 아마도 단순한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다기보다는 시대적 사명감에 부응하려는 대학생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닐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 대학생들에게는 그런 자기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드러내놓고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전공교재 자체가 볼품없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책은 더 이상 지식인으로서의 당연한 수단은 물론이고 액세서리로도 소용없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판면권 보장 등을 통한 학술출판 지원 모색

그러므로 그것이 전공교재일지라도 책다운 책, 사고 싶은 책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 권이 팔리더라도 그것을 산 사람이 만족하고 간직하려는 책일 때 학술출판 시장도 견고해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당장의 어려운 현실은 전 사회적 공감과 지혜를 모아 해결해 나가면 된다. 그러려면 우선 책다운 책, 사고 싶은 책으로서의 학술출판이 선행돼야 한다.

어차피 현행 저작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 ‘학교교육 목적 등에의 이용’, ‘도서관 등에서의 복제 등’, ‘시험문제로서의 복제’,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등 저작재산권의 제한에 관한 조항은 출판권자를 위한 방향으로 개정하거나 폐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학술출판계는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는가.

우선 각종 복제보상금에 관한 규정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와 관련하여 복사업체들이 지불하고 있는 일종의 ‘사적복제보상금’, 학교교육 목적 등에의 이용과 관련한 ‘교과용도서의 저작물 이용 보상금’과 ‘수업목적 저작물 이용 보상금’, 도서관 등에서의 복제 등과 관련해 도서관들이 지불하고 있는 ‘도서관의 저작물 복제?전송 이용 보상금’ 등 다양한 복제보상금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수혜 대상은 저작재산권자이며, 정당한 저작물 이용권자로서의 출판권자는 도서관의 보상금 등 일부를 제외하고 복제보상금을 받을 길이 열려 있지 않다. 대개 그 복제의 대상이 저작물 그 자체가 아니라 유체물로서의 도서 판면이라는 점에서 이는 불합리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음반제작자에게 저작인접권이 주어지는 것처럼 출판권자에게도 일종의 저작인접권으로서의 ‘판면권’을 부여함으로써 복제보상금 수혜의 길을 마련해 주는 것이 고사 직전의 학술출판을 회생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는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판면권은 “저작물의 인쇄 배열이나 디자인적인 요소에 대한 권리”를 가리키며, 그 대상은 “출판된 저작물을 구성하는 각 면의 스타일, 구성, 레이아웃이나 일반적인 외관”이다. 곧 이러한 출판물의 판면을 구성하고 제작하는 출판권자의 노력을 인정해 저작인접권으로서의  판면권을 부여함으로써, 이러한 판면을 복제하는 각종 행위에 대해 권리를 행사토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적절한 절차를 통해 판면권에 따른 복제보상금을 수령할 수 있게 한다면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 학술출판계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정책당국자와 관련학계 그리고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적극 검토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물질이 육체를 지켜주는 영양분이라면 저작물은 우리 정신을 올바르게 안정시키는 마음의 양식이다. 아무리 복제기술이 발전하고 유용하다 해도 책을 무단복제하는 행위는 분명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범죄행위이며, 그런 일이 대학가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나라는 여러 모로 후진국임에 틀림없다. 교수자라면 나날이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지식재산권, 특히 저작권과 출판권의 보호야말로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모든 이들의 ‘양심’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권리임을 우리 학생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거듭 일깨워주어야 한다. 법과 제도 이전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때 모든 문제가 말끔히 치유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출판평론가

필자는 경희대에서 「뉴미디어의 기술진전과 저작권 보호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출판평론상, 한국출판학회상(저술·연구부문), 한국전자출판학회상(저술·연구부문)을 수상했으며, 『출판 저작권』, 『동양 저작권 사상의 문화사적 배경 비교연구』, 『서평의 이론과 실제』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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