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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인 역작들 … 현실 점검에서 이상사회 모색까지
공들인 역작들 … 현실 점검에서 이상사회 모색까지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4.26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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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 대학출판부, 우리는 이 책을 주목한다

오늘날 출판의 위축은 단순히 책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활자와 종이, 그리고 편집에 의해 탄생하는 새로운 사유의 지평, 그리고 거기에 깊이 새겨진 문화와 지성의 위축이 우려된다. 사실, 이게 더 큰 문제다. 사유하는 힘, 사고하는 과정, 읽고 요약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고통스런 과정은 오늘날 디지털정보에 의해 내파되고 있다. 손끝 검색을 통해 쉽게 원하는 정보에 도달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정보가 곧 지식과 지혜로 소환되지는 않는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출판문화는 양대 산맥이 형성돼 있다. 일반 출판사들과 대학출판부다. 특히 대학출판부는 ‘대학’출판부라는 태생성 탓에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런 기대 속에는 우려나 비판도 물론 존재하지만, 그것은 더 큰 가능성의 지평으로 수렴되길 바라는 긍정적 바람이다. 

창간 25주년을 맞아 <교수신문>은 다시, 대학출판부에 주목한다. 최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조사한 ‘2016 출판산업 실태조사’(2015년 대상)에 의하면, 출판계 종사자들은 한국 출판사업의 시급한 개선사항으로 ‘저자 발굴과 양성’을 꼽았다. 역시 우수한 ‘저자’를 찾아내고, 이들로부터 깊은 지혜를 곰삭혀 끌어내는 ‘마중물’ 작업이 대학출판부든, 일반 출판사든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대학출판부는 지금 누구의 어떤 책에 공을 들이고 있을까. 2016~2017 대학출판부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책들을 통해 그것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특집은 이후 5월부터 <교수신문> 지면에 새롭게 선보일 ‘대학출판부, 우리는 이 책을 추천한다’의 심층서평기획으로 좀더 구체적인 그림으로 담아갈 계획이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경남대언론출판원이 추천한 책은 학습, 글쓰기, 그리고 공존과 관련된다. 덴마크 교육대학 평생학습과 교수인 크누드 일레리스의 책 『우리는 어떻게 학습하는가』(김경희 옮김, 2017.3)와 정병철 외 6인이 함께 쓴 『창의 글쓰기(2017.2), 그리고 엄태완 경남대 교수(사회복지학과)가 쓴 『디아스포라와 노마드를 넘어: 이북이주민과의 공존』(2016.12)이다. 

크누드 교수의 책은 평생학습시대의 화두와 밀접하다. 학습 이해의 문제는 누가 왜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 학습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학교교육 중심의 학습 관점에서 이 문제는 비교적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학습의 문제가 사회 모든 영역과 삶의 모든 과정으로 확대될 때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학문적 접근과 이해가 필요하다. 저자의 책은 바로 이 점을 환기한다. 다양한 배경의 심리학적 접근 뿐 아니라, 사회과학, 생물학, 특히 뇌과학 연구도 포함해 어떻게 접근할지를 검토했다. 영미권의 학습 연구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이뤄진 중요한 학습 연구를 포함했다는 점이 시사적이다.

글쓰기는 오늘날 대학 교육에서 조금 더 관심을 필요로 하는 분야다. 1977년 이후 하버드대를 졸업해 40대에 접어든 졸업생 1천6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의 현재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 무엇인가’를 물은 한 설문조사에서, 90% 이상의 졸업생이 ‘글쓰기’라고 대답했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여전히 많은 대학생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창의 글쓰기』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대학생에게 요구되는 다양한 글쓰기를 실제로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하면서, 글쓰기의 의미와 그 과정, 글쓰기를 위한 문법, 방법과 유형, 주제별 글쓰기 심화를 다뤘다. 

한국사회에서 ‘공존’은 중요한 화두다. 『디아스포라와 노마드를 넘어』는 우리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과의 공존을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2003년 이후 이북주민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오면서 이들의 일상을 연구하며 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책에서는 남북주민 간의 상생을 위한 사회정의와 인권 개념을 제시하면서, 지금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북이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짚고 있다.

경북대출판부가 꼽은 책은 일본 내 중국경제사 연구 전모를 훑어낸 『중국경제사』(오카모토 다카시 엮음, 강진아 옮김, 2016.10), 1950년대 김수영 시인의 시에 등장했던 ‘비숍 여사’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황금 반도』(이사벨라 L. 버드 비숍 지음, 유병선 옮김, 2017.2), 그리고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 바탕으로 이상사회를 모색한 『이상사회를 찾아서』(김윤상 지음, 2017.2)다. 

오카모토 다카시 일본 교코부립대학 교수가 엮은 『중국경제사』는 일본 중국학계가 저후 70여 년 만에 처음 선보인 중국경제통사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중국의 본질을 알려주는 일본 10대 역사서 중 한 권’으로 선정될 만큼 학계에 큰 방향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들은 각 시대 경제의 전반적인 개관을 전면 배치하고, 각 장의 끝에 핵심 주제를 테마로 설정해 집중적으로 해설하는 방식을 취했다. 단순한 사실 나열을 지양하고 ‘중원’과 ‘강남’으로 이원화된 중국의 지정학적 특징을 큰 축으로 삼아 국가권력과 민간사회, 군사와 재정, 중국과 그를 둘러싼 글로벌 세계와의 역동적 줄다리기로 중국경제사를 구조적으로 일관성 있게 기술했다는 게 큰 특징이다. 기원전 3천년경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5천년의 중국경제사를 논술한 대작이다. 

빅토리아시대 여행가 비숍의 ‘황금 반도’는 1878년 12월 말부터 이듬해 2월 25일까지 홍콩, 광저우, 사이공, 싱가포르를 거쳐 당시만 해도 유럽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말레이 반도 서안의 말레이 왕국을 탐사하고, 생동하는 필치와 뛰어난 통찰력을 유감없이 드러낸 여행서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말레이 밀림 속 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가 압권이며, 그 때문에 ‘열대의 초대장’이란 평도 받고 있다.

부제 ‘좌도우기의 길’을 단 『이상사회를 찾아서』는 좀더 흥미로운 책이다. 좌파의 이상을 우파의 방법으로 달성한다는 ‘좌도우기론’에 기반해 좌우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이상사회를 탐색하고 설계하는 데 목표를 뒀기 때문. 저자는 이상사회를 모색하는 방식으로 비전 제시 방식, 연역 방식, 주민 합의 방식을 들었는데, 이 책에서는 세 번째 방식을 이용해 좋은 사회제도를 설계할 수 있을지 점검했다. 40년 넘게 좋은 사회제도를 고민하고 연구해온 저자의 깊은 통찰력을 만날 수 있다. 대선 정국이라, 좀더 폭넓게 읽히면 좋을 책이다. 

『상처받은 신라』(이종욱 지음, 2016.10)를 앞세운 서강대출판부의 책은 『퍼포먼스로서의 연극』(김용수 지음, 2017.3),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손호철 지음, 2017.3) 등 ‘서강학술총서’에 집중됐다. 이들은 분명 ‘논쟁적’인 책이다. 

이종욱 서강대 교수(사학과)의 『상처받은 신라』는 제국 일본의 역사가들이 말살했던 신라 내물왕까지 또는 그 이전 역사를 말살한 이유를 밝히고 나아가 그러한 역사를 살려 내야할 필연적인 이유를 밝히는 작업을 하고, 한국인 정체성의 원점을 찾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신라역사에서만이라도 한국사회에 남아 있는 한국폐멸사학(이른바 식민사학)의 찌꺼기들을 청산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대한민국 국민에게 날조되지 않은 역사를 제공하여 정상적인 역사지식과 역사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연구방법론과 연구분야’를 강조한 『퍼포먼스로서의 연극』의 저자는 미국 조지아대에서 연극학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있다. 그런 저자가 주목한 것은 ‘새로운 학술적 패러다임의 시대’로 가는 연극학 내의 퍼포먼스 연구였다. 이것이 2000년대 이후 연극은 물론 거의 모든 예술과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 퍼포먼스 연구는 언어에 인식론적 특권을 부여했던 서구문화의 전통을 극복하고, 신체적 행위와 체험의 중요성을 학술적으로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확인해보는 것도 즐거운 작업이다. 

박근혜게이트와 1천500만 시민이 참여한 역사적인 11월시민혁명은 왜 일어난 것인가? 박근혜게이트와 촛불혁명은 묻는다. 박정희신화는 맞는 것인가? 87년 민주화는 이대로 좋은가? 정권교체가 되면 헬조선은 끝나는가? 헬조선을 벗어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의 책이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돼 있다. 특히 1부가 이 책의 핵심인데, 촛불혁명이 왜 일어났는가를 체계론적 시각에서 박정희체제, 87년 민주화체제, 97년 신자유주의체제와 관련시켜 분석하고 대안인 2017년 체제가 갖추어야 할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2부에서는 이론적 전제로서 체제란 무엇이며, 헌법을 바꾸면 체제는 바뀌는가? 등의 이론적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성균관대출판부가 추천한 책은 언어철학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이병덕 성균관대 교수(철학과)의 『표상의 언어에서 추론의 언어로』(올 6월 출간 예정), 대만대학 인문사회고등연구원 원장으로 있는 황쥔지에(黃俊傑)의 『이천 년 맹자를 읽다: 중국맹자학사』(함영대 옮김, 2016.10), 그리고 저널리스트이자 건축사학자인 존 캐논의 『성스러운 공간의 모든 것』(공민희 옮김, 6월 출간 예정)이다. 

이병덕 교수의 책은 지금껏 현대 언어철학에서 주류 이론의 역할을 맡아온 ‘표상주의 의미론’의 한계들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추론주의 의미론’을 제시한다. 표상주의 의미론은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엄밀한 진리조건에 구속돼 있다. 따라서 다양한 내포적 의미를 지님으로써 외연 언어로 간단히 형식화하기 어려운 일상적인 자연언어들에는 설득력 있게 적용되지 못한다. 반면,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한 의미사용이론에 뿌리를 둔 추론주의 의미론은 언어표현의 의미를 그것이 표상하는 바가 아니라 그것의 추론적 사용을 통해 해명하려 한다. 이 의미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은 ‘참인 표상’이 아니라 ‘옳은 추론’이다. 추론주의 의미론의 관점에서 집필된 체계적인 언어철학 책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관련 연구를 촉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천 년 맹자를 읽다』는 제목처럼 그간 중국 지식인들이 ‘仁政’의 사상가 맹자와 어떤 대화를 나눴으며, 시대 변화의 국면에서 맹자의 사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분석한다. 중국 역사의 변천을 따라, 순자·주자·왕양명·황종희·대진·강유위 등의 大儒들과 당군위·서복·모종삼 등 현대의 학자들이 어떻게 『맹자』를 주석하고 해석하고 드러냈는지, 혹은 어떻게 『맹자』를 공격하고 배척했는지, 이천 년 중국 맹자학의 장대한 파노라마가 이 한권에 담겨 있다.

『성스러운 공간의 모든 것』은 종교 건축물의 숨은 비밀을 파헤치고,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구조가 어떻게 생겨났고, 또 어떤 용도로 사용됐으며 구조와 장식에 특정 종교가 어떻게 각인돼 있는지 매혹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가장 크게 사로잡는 구조적인 기능을 이해하고, 이런 방식의 설계나 꾸밈이 종교에서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래서 인류 역사의 가장 오랜 이념을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게 해준다.

영남대출판부가 주목한 책은 이정희 영남대 교수(역사학과)외 7인이 함께 쓴 『기업과 유토피아:

기업가는 무엇을 꿈꾸는가』(2016.8), 베이징대 석좌교수인 로저 에임즈의 『중국 고대 정치철학』(정병석·김대수 옮김, 2017.3), 그리고 곧 출간될 주희의 『주희시 역주(전5권)』(정세후 역주, 6월 출간 예정)다. 

‘기업가는 무엇을 꿈꾸는가’라는 부제를 단 『기업과 유토피아』는 접근이 신선하다. 기업과 기업가의 사회적 영향력과 역할, 기업가와 사회의 복합적인 관계를 역사학의 관점에서 고찰한 결과물인 이 책은 기업사 중에서도 기업가들이 구상한 ‘사회적 유토피아’의 비전을 중심으로 접근했다. 저자들은 기업가들을 단순히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로 보는 통념에 도전하면서 그들의 기업 활동에 깔려 있는 다양한 ‘비경제적’ 동기들, 특히 ‘사회적’ 비전에 주목했다. 저자들은 사상가들만이 유토피아를 독점한 것은 아니며 기업가들도 중요한 유토피아의 생산자들이었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 고대 정치철학』은 중국 고대 정치철학적 개념들을 서양의 동양철학자인 저자 에임즈 자신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연구물이다. 정치와 관련된 개념들을 역사적 근원과 발전과정을 통해 밝힌, 한마디로 정치 개념의 계보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개념의 연원을 단순히 추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가, 도가, 법가의 복잡한 사상들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하면서 당시 정치 체제와 실정에 비추어 실행 가능한 정치적 안案에 대한 타당성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저작물이다. 저자가 주 자료로 택한 『회남자』 「주술」편은 선진 제자백가의 사상과 정치 이념들의 물줄기가 하나로 모여든 河口와 같은 저작이다. 저자는 이 문헌 속의 無爲, 勢, 法과 같은 정치 개념들이 어떻게 절충되고 조화되는지 각 정치 시스템의 내적 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우리에게는 ‘朱子’로 더 익숙한 주희의 시문학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 『주희시 역주』다. 『주문공집』내집 10권, 별집과 외집 등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그의 시 1천500여 수를 모두 담고 있다. 

이화여대출판문화원은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노동법의 회생: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한국 노동법』(2016.10), 홍석표 이화여대 교수(중어중문학)의 『루쉰과 근대 한국: 동아시아 공존을 위한 상상』(2017.2), 그리고 한혜원 이화여대 교수(융합콘텐츠학과)의 『앨리스 리턴즈: 뉴 미디어 콘텐츠에 나타난 여성 캐릭터 연구』(2016.12)를 추천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노동법 학계에서는 판례 법리의 변화 추세에 주목하고 관련 판결의 의미와 영향 등을 분석하는 작업이 이뤄졌지만, 이러한 연구들은 개별 판결이 다룬 개별 쟁점에 주목해 고립된 채 진행됐다. 이로 인해 노동 판례 변화의 전체적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노동법의 회생』은 한국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고착화된 2000년대 이후 노동법의 각 영역에서 판례가 변화하는 모습을 통합적으로 살펴보았고, 그 작업의 결과는 근로빈곤층, 사회적 양극화, 비공식 고용의 확대 등의 사회 현실에 대해서 법원이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했는지를 파악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동아시아 공존을 위한 상상’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루쉰과 근대 한국』은 단순한 루쉰 연구를 넘어서려 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저자는, 루쉰이 「狂人日記」를 발표해 중국문단에 등장한 1918년부터 사회주의 중국이 성립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해 한·중의 교류가 사실상 단절되는 1950년까지를 시간적 범주로 삼아 이 시기의 루쉰 관련 연구 자료 및 성과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오상순, 류수인, 양백화, 정래동, 김태준, 신언준, 이육사, 김광주, 이명선 등 당시 한국과 중국에서 활동하던 문인과 지식인들이 어떻게 루쉰과 그의 문학을 접하게 됐는지, 그로부터 어떤 사상적 영향을 받았는지 등을 자세하게 분석한다.

『앨리스 리턴즈』의 저자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년)에 등장한 이래 다양한 장르와 매체로 재해석, 멀티유즈되고 있는 ‘앨리스’를 차용해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회귀하는 앨리스와 같이 뉴미디어 콘텐츠의 여성 캐릭터 또한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끝없이 재현되고 해석되며, 소비된다고 지적한다. 콘텐츠 속 여성 캐릭터들이 남성 캐릭터의 영웅적 행위를 위한 동기 내지 보상이라는 한정적 역할만을 수행하는 한계를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전북대출판문화원이 엄선한 책은 고규진 전북대 교수(독어독문학과)의 『정전의 해부』(고규진 지음, 2016.12), 『신 형법총론』(서거석·송문호 지음, 2017.2), 『새겨보는 숲』(박종민 지음, 2017.2)이다. 

노드롭 프라이의 명저 『비평의 해부』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정전의 해부』는 정전에 대한 저자의 오랜 연구가 결정체를 형성한 책이다. 1980년대 이후 서구의 문화학으로서 문학연구의 시의적 주제인 정전은 주로 영미문학계의 포스트모던 논쟁의 영향 하에서 학계에 수용됐다. 그러나 정전연구가 서구에서 새로운 학문분야로 떠오른 문화학의 세부주제 가운데 하나인 기억, 특히 ‘문화적 기억’의 산물이라는 관점을 기본 출발점으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학, 음악학, 영화학에도 적용될 수 있는 정전연구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충분하게 투영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정전연구가 문화연구의 분야로 자리 잡게 된 학문사적 배경 연구에서부터 정전형성방식을 이론적으로 모델화하는 연구에 이르기까지 독일 학계의 포괄적인 정전 논의를 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수용했다. 

서거석 전 전북대 총장이 함께 쓴 『신 형법총론』은 학습과 괴리돼 결국 대법원판례를 암기하는 보조수단으로 전락한 형법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데 의미가 있다. 독일과 일본의 영향을 받은 한국 형법학과 판례는 아직 번역법학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학습자가 빠른 시간에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법률용어와 이론으로 이뤄져 있다. 700~1천 쪽에 달하는 기존의 형법총론서적은 일반 초학자가 어려운 내용을 일일이 숙지하기에는 너무 딱딱하고 지엽적인 경우가 많다. 저자들은 불필요한 이론들은 간단히 설명하거나 군살을 빼고,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형법학의 기본사상과 이론체계를 판례의 스토리를 살려 핵심내용을 짧은 분량에 담아냈다. 또한 가독성과 형법학에 대한 흥미를 높여 형법의 대중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20여 년 동안 ‘숲과 인류문화’라는 강의를 해왔고, 1999년 산림청에서 숲해설가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한 첫해부터 숲 해설을 했으며, (사)전북생명의숲 등에서 운용하는 숲 해설가 양성교육을 해온 숲 전문가인 저자가 쓴 『새겨보는 숲』은, 숲과 관련된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숲의 이면을 좀 더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고, 숲해설가 등에게는 스토리텔링의 참고자료가 될 수 있도록 기획됐다. 

한국방송통신대출판원이 꼽은 책은 『갈등과 소통: 한국사회 갈등, 커뮤니케이션 시각에서 보다』(김영임 외 지음, 지식의 날개, 2016.10), 『청소년에게 게임을 허하라』(에피스테메, 2017.2), 그리고 『행정 이론: 맥락과 해석』(강성남 지음, 에피스테메, 2016.12)이다. 

『갈등과 소통』은 갈등의 본질, 다양한 유형, 유형별 특성과 갈등관리 전략에 대해 사례를 중심으로 기술한 갈등커뮤니케이션 입문서다. 전체적인 구성은 갈등상황별로 구분해  장별로 특징적 사안과 문제점을 다루고 관리방안을 언급했. 먼저 대인관계 차원의 갈등으로 연인과 부부 간 갈등을 다루고, 사회차원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된 학교의 또래갈등, 도시이웃 간 갈등,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면서 나타난 다문화사회의 갈등, 직장에서의 갈등, 공공갈등에 대해서 차례로 짚었다. 끝으로 근래 등장한 디지털사회로 진입하면서 발생한 새로운 사회갈등의 특징과 젠더갈등, 디지털세대 간 갈등도 다루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게임 담론은 지나치게 규제중심적인 패러다임에 치우쳐 있었다. 2011년부터 이른바 ‘강제적 셧다운제’가 실시된 이래 청소년들로 하여금 게임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전개됐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가 과연 청소년의 요구를 반영한 현실적 방안인지에 대해서는 심층적이고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청소년에게 게임을 허하라』는 이런 현실을 성찰해 대안적 논의를 제공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게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게임을 통해 어떤 긍정적인 만족을 얻는지 등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따라 이 책은 게임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살펴보고 궁극적인 게임중독의 원인 및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강성남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과)가 쓴 『행정 이론』은 근현대를 아우르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행정이론들을 맥락에 따라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행정이론이 앞으로 어떤 방향과 방법을 갖춰 나가야 하는지를 살펴낸 책이다. 관료제이론, 비교행정이론, 신행정이론, 신공공관리이론, 공공선택이론, 신제도이론을 거쳐 거버넌스이론과 복잡계이론을 통해 맥락연계성이란 어떤 것인지, 상관성을 천착하는 작업은 어떤 방향을 견지해야 하는지 진단했다. 

한국외국어대지식출판원이 강조한 책은 『셰익스피어와 바다』(박우수 지음, 2016.12), 『우화의 힘, 문학의 힘: 라 퐁텐 우화 연구』(원종익 지음, 2017.1),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니콜라이 베르자예프 지음, 이종진 옮김, 2016.12)이다. 세 권 모두 문학과 직결돼 있다. 

셰익스피어에게 ‘바다’는 한마디로 말해서 역설과 모순의 바다다. 바다의 긍정적인 모순은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 속에서부터 발견된다. 셰익스피어의 바다는 고전세계가 보여주는 무질서와 죽음의 장소로부터 기독교 문화, 특히 신약 가운데서 강조되는 재생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의 폭이 무한하다. 『셰익스피어와 바다』는 에드워즈(Philip Edwards)의 해석이 아닌, 브레이튼(Dan Brayton)의 주장에 기댄다. 셰익스피어는 바다를 빈 공간, 황무지, 대적자, 심지어는 거대한 어류 냉동고로 간주한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 사소하지만 결정적일 수 있는 작가-세계의 관계에 주목한 안목이 흥미롭다.

라 퐁텐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뛰어난 문학 작가이며, 그의 우화는 프랑스 문학사를 빛내는 걸작 중의 하나다. 우화의 역사는 라 퐁텐에 와서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직 국내에 라 퐁텐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서가 없는 상황에서 『우화의 힘, 문학의 힘』은 라 퐁텐의 우화 세계에 대한 충실한 안내서가 된다. 라 퐁텐의 우화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지, 특히 절대왕정의 전제 군주 체제에서, 라 퐁텐의 글쓰기가 어떠한 행태를 보이는지를 추적한 대목은 눈여겨볼 만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위대한 예술가’ 그 이상의 존재다. 미하일 바흐찐이 그의 서사시에 경의를 표한 것처럼, 이 책의 저자가 책의 전편에 걸쳐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 역시 그의 창조적 독자성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렇다. 도스토옙스키는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자 형이상학자며 러시아의 모든 형이상학적 관념은 그에게서 비롯된다. 정열적인 관념의 분위기 속에서 그는 이 관념으로 주위를 감염시키고 사람을 유인한다. 도스토예스키의 관념은 일용할 정신의 양식이다. 인간은 신과 악마, 불멸, 자유, 인간과 인류 운명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불멸이 없다면 살아야 할 가치도 없다. 도스토예스키의 관념은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인 관념이고 구체적인 형이상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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