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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사상사 연구에 던지는 도발적 질문 …“제3의 관점 구상한다면 추가 설명해야”
한국근대사상사 연구에 던지는 도발적 질문 …“제3의 관점 구상한다면 추가 설명해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4.03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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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차 아산서평모임이 읽은 책_ 『기억의 역전: 전환기 조선 사상사의 새로운 이해』(노관범 지음, 소명출판, 2016)

지금과 같이 조선후기 사상사와 서양 근대, 대한제국기와 서양 근대, 일제식민지시기와
서양 근대, 이런 식으로 서양 근대라는 허브에 의존해 한국사상사를 설명하는‘근대학’의
제국주의, 또는 중국학의 일부로서 조선후기사상사에 접근하고 일본학의 일부로서
근대사상사에 접근하는 ‘동아시아학’의 지역주의, 이런 풍조 속에서 한국사상사의
파편화, 斷代化가 심화되고‘, 근대학’‘, 중국학’‘, 일본학’에의 종속화가 심화된다면,
우리는 과연 보편학으로서의 한국학을 말할 수 있을까?(노관범)

지난 3월 22일 진행된 제13차 아산서평모임이 주목한 책은 <교수신문> 856호(2016년 11월 21일자) ‘책을 말하다’에 소개된 노관범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의 책『기억의 역전: 전환기 조선 사상사의 새로운 이해』(소명출판)이다. 당시 노관범은 <교수신문>에 이렇게 썼다.

“필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근대주의가 견고하게 설치한 기억과 망각의 요새를 허물고 전통에 속하는 것과 근대에 속하는 것이 공유했을 역사적 동시성을 탐사하는 일이다.”여기서 주목해 볼 대목은‘근대주의가 견고하게 설치한 기억과 망각의 요새를 허무는 일’, 그리고‘전통에 속하는 것과 근대에 속하는 것이 공유했을 역사적 동시성을 탐사하는 일’이다. 그의 책은 이것을 동시에 사유하면서 밀고 나가고자 했다. 그런 탓인지, 그는 22일 다시 이렇게 고쳐 말했다.

“지은이는 전환기 조선사상사의 역사적 조건이 서양의 이식에 의한 급진적이고 단절적인 측면보다는 전통의 참여에 의한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측면에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전근대의 근대적 확산과 변용에 좀 더 유념하자는 지은이의‘온건한’(?) 관점은 조선후기도 포함해 근대 이행기라 불리는 시기를 바라보는 통설적인 정통 역사 내러티브와 불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환기 사상사의 주요 의제로서 마땅히 탈중국의 맥락에서 근대 서양을 묻고 탈유교의 맥락에서 조선 실학을 물어야 할 터인데, 지은이는 그 반대로 서양 대신 중국을 묻고 실학 대신 유교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전환기 한국 지식인들이 근대 중국을 통해 한국의 현실에 대해 사유했던 전형적인 사례로서 <황성신문>으로, “자강의 모델로 중국의 제반 국가 개혁을 투시하는 한편 한국 독립을 위한 연대의 대상으로 중국을 명시”한 대목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하나는 근대 중국과 더불어 전환기 조선사상사를 새롭게 독해하는 키워드로서 도시 유교다. 전환기 도시 지역의 유교적 지역 주체의 형성을 이해하려는 시도인데,“ 개성 유학의 상징으로서 숭양서원의 변화는 전환기 도시 유교의 상징으로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조선후기 개성 유학의 상징 숭양서원이 개성 신교육운동의 사회적 성소이자 개성 한문학운동의 문화적 거점으로 이어진 것은 조선후기 유학의 확산에서 출발해 근대 초기 유교적 지역 주체의 형성에 도달하는 방향에서 전환기 조선사상사의 새로운 이해에 긴요한 시사점을 던”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의미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하나의‘충고’를 던지는 걸 잊지 않았다. 조선후기 사상사 연구와 한국근대사상사 연구에 가하는 일종의 지적 도발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후기 사상사 언설의 근대적 전망의 한국적 맥락, 그리고 한국근대사상사 언설의 전근대적기원의 한국적 맥락이 규명돼야 한다. 지금과 같이 조선후기 사상사와 서양 근대, 대한제국기와 서양 근대, 일제식민지시기와 서양 근대, 이런 식으로 서양 근대라는 허브에 의존해 한국사상사를 설명하는‘근대학’의 제국주의, 또는 중국학의 일부로서 조선후기사상사에 접근하고 일본학의 일부로서 근대사상사에 접근하는‘동아시아학’의 지역주의, 이런 풍조 속에서 한국사상사의 파편화, 斷代化가 심화되고,‘ 근대학’,‘ 중국학’,‘ 일본학’에의 종속화가 심화된다면, 우리는 과연 보편학으로서의 한국학을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토론자로 나선 이행훈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와 유불란 서울대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어떻게 응답했을까. 이행훈이 준비한 서평문의 제목은「한국 근대에 관한 일독법, 새로운 이해의 어려움」이다. 두 가지가 읽힌다. 근대에 대한 독법으로서 새로운 이해는 어떤 어려움을 동반한다는 것. 그의 토론은 이에 기반해 촘촘하게 전개된다. 유불란은 이행훈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접근했지만,“ 근대주의적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되살려 낸 당대의 전환기적 양상, 그 시대적 변화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며 본질적인 독법을 내놨다. 조선후기 사상사 연구의 새로운 독법을 위해 이행훈와 유불란의 토론문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사진제공=아산정책연구원

이행훈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 근대 즉 문명개화와 민족의 서사는 별개가 아니었고, 매체의 특성상 두 신문을 근대와 민족으로 확연하게 구분 짓는 것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황성신문>의 중국 인식은 ‘중국의 타자화’가 아니었나하는 의문이 든다. <황성신문>이 주체의 계몽을 역사적 책무로 자임할 때, 천하 관념이 해체된 근대 세계체제에서 주체 인식은 타자 인식을 전제로 하며 이때 타자 인식은 주체를 구축하는 일부가 된다. 이렇게 보면 <황성신문>의 중국 인식은 주요 필진들의 사상적 성향에 기인해 배타성을 띠지 않았다하더라도 전통적인 중화주의로부터 상당 부분 이탈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저자가 지적한 교육과 식산, 입헌정치의 모델로서 중국 또한 근대민족국가의 담론 자장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성신문>은 민족과 근대 서사로부터 자유로웠는지, 나아가 근대와 민족을 떠나 전환기를 이해할 제3의 관점을 필자가 구상하고 있다면 무엇인지 추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저자가 주목한 도시 유교로서 개성과 관련, 아마도 조선 후기 개성지역의 상업 발달과 부의 축적이 세도나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게 했고, 각종 원우 설립과 시사 모임, 문집 출판에 밑거름이 됐으며, 1900년대 개성지역의 신교육 운동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됐을 터다. 개성이 유학 전통을 복원·계승했음은 충분히 드러났다. 그런데 그러한 지향의 근본적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술이 없어 아쉽다. 중심(京, 性理學)을 지향하는 주변부의 특성으로 설명한다면 다시 경향 이원성으로 수렴되고 말텐데 조유선, 김헌기, 김택영으로 이어지는 학문이 실학도 양명학도 아닌 정통 성리학에 집중한 일종의 복고 현상을 어찌 해석해야 좋을지, 지역 지성사의 관점에 선 저자에게 다시 묻고 싶다.

한 가지 사족을 덧붙이자면, 신채호의 조선사「총론」(1924)의 그 유명한 ‘아와 비아의 투쟁’에서 ‘아’와 ‘비아’의 관념 형성에 일본이나 양계초의 영향은 없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만약 신채호의 ‘아’관념 형성 배경에 양계초나 일본에 수용된 독일 철학의 영향이 있었다면 저자가 주목한 중국과 함께 일본을 포함하는 동아시아로 시야를 확대해야 전환기 조선사상사의 이해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기실 대한제국기 양계초 수용은 무술변법 실패 후 일본 망명시절,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서양사조에 대한 학습이 주조이므로 서구-일본-중국(양계초)-조선이라는 중첩된 번역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한국 개념사 연구자에게 공통적으로 지워진 숙명이다.


유불란 서울대 사회과학원 연구원 : 이미 ‘기억의 역전’이라는 조어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듯, 저자는“서양-근대/非서양-전통의 이항 대립, 또는 비서양의 전통 내부에서 ‘근대적인 변화’와 ‘전통적인 체제’의 이항 대립을 설정하고 근대 또는 근대적인 것을 검출하는 데 여념이 없었던 근대주의”(노관범: 4)에 의해 편향된 ‘기억의 전도’를 대전제로 삼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토론자 본인 또한 이 같은 그간의 도식적인 틀이 갖는 문제점 및 그 폐해에 대한 지적에 십분 동의한다. 더불어서 ‘전통 지식인’과 ‘근대 지식인’들의 문제의식과 사유에서 ‘중첩’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견해에도 또한 의견을 같이 한다.

그렇지만 이상을 전제로 한 가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은, 그리하여 근대주의적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되살려 낸 당대의 전환기적 양상, 그 시대적 변화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이다. 아마도 이야말로‘우리의’근대라 할 수 있겠지만, 저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이 (우리의) ‘근대’가 어떤 것인지, 또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 좀더 명확히 밝혀주기를 요청한다. 나름의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는 데는 기존의 틀, 기존의 전형성을 부정하는 것 이상의 명시적인 밝힘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저자는 전환기의 실학은 근대의 제도 변동과 연결돼 외연의 확장 및 내포의 변화를 겪으면서 ‘개념의 지역성’이 중층적으로 형성됐음을 지적했다. 나아가 여기에서의 실학은 마침내 조선시대 실학 및 근대의 ‘실학’개념과도 구별되는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을 획득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이러한 ‘차이’에 대해, 이런 각각의 실학들을 묶어줄 수 있는 여지는 없는 것일까? 특히 저자가 근본적인 문제의식으로 전제한 우리의 근대에 비춰서는 어떻게 꿰어‘연결’지을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개성 및 대구, 평양 등의 다른 도시 지역과의 비교사적 접근을 통해 ‘지성사적 지역성’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그렇다면 이런 개성이라는 지역적인 사례는 전환기 조선의 근대라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어찌 위치 지어야 할 것인가? 더불어서 또 한 가지 묻고 싶은 부분은, 나아가 이 같은 유교 전통의 부흥과 이런 가치관을 담지한 지역 주체들이 해당 지역의 전환기를 주도하게 됐을 때, 이런 그들의 특정한 ‘발신’은 지역적으로, 혹은 당대 조선에서 사상적으로 어떤 ‘반향’과 마주치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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