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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영리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질병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영리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 예병일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7.04.03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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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의학사 노트』 예병일 지음, 한울, 391쪽, 30,000원

 

유전정보는 오로지 정보일 뿐이며, 이것만으로 심오한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전정보를 알고 있으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극단적으로 활용하면 사회적 갈등만 부추길 수도 있으므로 유전정보 활용에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004년 사람의 유전체가 완전히 해독됐다는 발표가 공식적으로 있었다. 이체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것은 단백질이므로 아무리 DNA가 중요하다고 떠들어봐야 그것은 중요한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일 뿐, DNA 그 자체가 인체 내에서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유전체 해독을 완성했다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전체가 단백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알았다는 것일 뿐이며, 특정 유전자로부터 얻어지는 단백질이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떻게 조절되는지에 대해서는 차후 연구가 필요하다. 인간 유전체를 완전히 해독한 것은 연구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는 이유다.

인간의 유전체가 절반 정도 해독됐을 무렵부터 각각의 유전자에서 생성되는 특정 단백질이 어떤 구조와 기능을 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단백체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에 대한 연구 결과, 예를 들면 비만, 노화, 치매, 암의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그것은 단지 특정 유전자가 특정 질병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일 뿐 그 유전자 하나가 질병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위암의 발생과 깊이 관련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그 아이는 이 유전자가 활성화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위험 인자를 피함으로써 위암 발생을 억제할 수 있을 테니, 인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유전정보가 질병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보험회사에서 이와 같은 정보를 손에 넣는다면 그 사람의 보험 가입을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혈질의 성격이 발현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굳건한 마음가짐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직원 채용 시 융화를 중요시하는 관리자라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그런 사람의 채용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생명현상은 여러 가지 기능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것이고, 유전자로부터 하나의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도 수많은 다른 유전자와 단백질의 기능이 필요하다. 따라서 유전정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둥글고 납작한 모양의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변하는 질병이 있다. 모세혈관의 지름은 적혈구보다 그다지 크지 않으므로 큰 동맥으로부터 작은 동백으로 점점 흘러간 적혈구가 말초에서 모세혈관을 통해 정맥으로 돌아 나오려면 적혈구는 정상적인 모양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열대지방에 가면 적혈구가 둥근 모양 대신 낫 모양으로 바뀌는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을 가진 이들이 많다. 이러한 적혈구는 말초에서 돌아 나올 때 혈관 벽에 부딪혀 깨지기 쉬우므로 적혈구의 수명이 짧아진다. 생산 속도는 일정한데 수명이 짧아지면 결과적으로 그 수가 부족해져 이러한 적혈구를 가진 사람들은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지며 그리하여 빈혈 현상이 나타난다. 빈혈이 심한 경우에는 산소 부족으로 사망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빈혈 증상을 가진 채 살아간다. 이런 환자들이 열대지방에만 존재하는 이유는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열대지방에 만연한 말라리아에 감염돼 생명을 잃는 것보다는 빈혈 증상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생존에 더 이득이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모기가 피를 빨 때 모기의 침을 통해 인체로 침입하는 말라리아 유충은 적혈구에 기생해 자라나야 생활사가 유지된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 죽음을 면하려면 비록 빈혈 증상이 유발되더라도 유충이 침입한 적혈구를 깨버려 말라리아 유충의 성장을 막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낫 모양 적혈구가 발생하는 원인은 적혈구 내에서 산소와 결합해 운반 기능을 하는 헤모글로빈의 β-사슬을 이루는 6번째 아미노산 글루탐산이 변이에 의해 발린으로 치환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이가 비정상이라고 하여 정상으로 바꿔준다면 그 환자는 빈혈에서는 해방되겠지만, 말라리아 감염을 통해 죽음에 직면할 수도 는 일이다.

유전정보를 이용한 산업화 과정은 이미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유전자 또는 DNA 분석을 통한 친생자 감별도 유전정보 활용의 한 예이며, 다국적 보험회사에서 건강 검진을 위해 무료로 피검사를 해주겠다는 것은, 유전정보를 알아내 회사에 손해를 끼칠 만한 사람은 적당한 핑계를 대어 가입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유전정보는 오로지 정보일 뿐이며, 이것만으로 심오한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전정보를 알고 있으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극단적으로 활용하면 사회적 갈등만 부추길 수도 있으므로 유전정보 활용에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저자인 예병일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교수는, 의학에 담긴 인문학적 측면을 연구하고, 이를 이용해 의학을 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전쟁의 판도를 바꾼 전염병』, 『현대 의학, 그 위대한 도전의 역사』, 『의삭사의 숨은 이야기』 등의 책을 썼고, 『멘델레예프의 꿈』, 『의학의 과학적 한계』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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