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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과학문으론 학계 뚜렷 … "온갖 잡다함과 소란스러움 넘치는 곳이 인문학 창발지"
분과학문으론 학계 뚜렷 … "온갖 잡다함과 소란스러움 넘치는 곳이 인문학 창발지"
  • 문재원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현대문학
  • 승인 2017.03.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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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학술심포지엄 10년을 말하다

난 10일, ‘로컬리티의 인문학 10년: 소통과 확장’이라는 주제로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 연구단 제10회 국내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날은 탄핵이라는 거대서사가 대한민국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 파고 안에서 지방 국립대학 한 연구자의 연구일상은 10년 동안 연구해왔던 ‘로컬리티의 인문학(Locality and Humanities)’이라는 논제를 어떻게 종합할 것인가와 씨름하고 있었고, 어느 틈에서 이들이 씨실과 날실로 치열하게 얽힌 하루였다.

그러고 보니,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이 ‘전지구화의 파고에 맞서 로컬의 역동성에 주목하면서 인간의 자리를 묻고, 로컬리티 인문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장도에 오른 지 10년이 됐다.’ 길 떠난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다시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 개인적인 연구자의 로드맵을 넘어, 연구소의, 대학의 새로운 인문학 모델에 대한 전망을 걸고 달려온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는 일은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의 제10회 국내학술심포지엄(오른쪽)과 제1회 심포지엄 모습(왼쪽) [제공=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로컬리티의인문학 연구단은 그동안 로컬리티를 붙들고 인문학의 자리를 고민하면서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에 대한 전망을 해왔다. 이를 위해 ‘로컬리티의 형상’(1단계)에서 시작해 ‘갈등 의 로컬리티’(2단계)를 지나 ‘공생의 로컬리티’(3단계)라는 중주제를 설정하고 연구해 왔다. 이 과정에서 문학, 역사, 철학뿐만 아니라, 지리학, 사회학, 인류학, 공학 등 여러 분과학문 영역이 모여 뜨거운 토론과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공간, 시간, 문화, 표상, 사유가 중층적으로 만나는 장(field) 안에서 형성되는 로컬리티는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구성물이다. 그러므로 분과학문적인 연구방법으로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공동으로 인지하면서, 학제간 공동연구는 형식 이상의 연구방법론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어젠다 구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출발한 제 1회 학술심포지엄에서는 ‘로컬리티,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참고로 연구단의 첫 번째 연구총서 역시 『로컬리티,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이었다) 이라는 주제로 인문학 영역에서 낯선 ‘로컬리티’라는 화두를 던졌다. 전체적인 기획 방향을 로컬리티학(localitology) 수립을 위한 기초 작업에 두었고, 「로컬리티학을 위한 시론」, 「로컬리티 공간성의 개념화와 이론적 틀」 등 로컬리티의 이론적 탐색에 중점을 둔 논문이 발표됐다.

로컬리티(연구)와 인문학의 교섭과정을 통한 의미의 새로운 형식으로 드러난 로컬리티의 인문학은 단순히 기존의 가치와 대립하는 내용이나 적대적 전통들 사이의 분쟁을 단순히 재현할 수 없다. 담론적 변형을 요구받은 로컬리티의 인문학은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로컬, 로컬리티의 개념을 보다 정교하게 정의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하위개념을 개발해야 하며, 나아가 로컬의 다양한 양상을 설명하고 로컬의 새로운 가치를 확인하는 보편적인 논리 틀을 도출해야 한다는 과제를 숙명적으로 안고 출발했다. 그래서 1회의 각 세션 주제들은 로컬리티의 개념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의 시론을 제안하고, 이와 연관된 인접 학문과의 연결지점을 찾았다.

로컬리티의 인문학에 대한 시론, 제안, 모색의 성격이 강했던 1회 학술대회가 해를 거듭하면서 옷을 덧입는 동안 연구 주제는 다양해졌고, 아젠다는 점차 확장됐다. 로컬리티의 형상과 재현(2회), 로컬리티 연구의 전망(3회), 로컬리티: 권력의 재편과 주체의 생성(4회), 선망과 질시의 로컬리티(5회), 차이의 정치와 윤리-로컬리티 관점에서(6회), 다문화와 인정의 로컬리티(7회), 자율과 연대의 로컬리티(8회), 생태와 대안의 로컬리티(9회) 등으로 각 년차의 주제들이 진행되는 동안 ‘로컬리티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문학적 관찰은 물리적 경계로서의 로컬/로컬리티뿐만 아니라 인식적 경계에 대한 고찰로서 로컬/로컬리티를 소환하고, 특히 이 경계를 고착화한 질서, 제도를 탐문하고, 그것을 해체하려고 시도했다. 연구 초창기, 2, 3회의 학술대회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보면, ‘탈중심의 사유’, ‘탈식민연구와 로컬리티연구의 접점’ 등 탈근대연구와의 접점을 모색하면서 로컬리티 연구의 독자적 위치성을 확보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로컬리티의 위치성(re-location)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로컬 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발표됐다. 결국 이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인문학적으로 전유한 로컬리티의 재위치화와 이를 통한 로컬의 역동성에 대한 탐문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1단계의 작업이 로컬리티의 형상을 고민하고 이를 개념화하는 작업에 치중됐다면, 2단계의 작업은 로컬리티가 여러 관계적 맥락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생성, 변화하는가에 주목했다. 즉 배치와 그 효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이에 대한 연구단 안팎의 쟁점들이 학술심포지엄의 장에서 토론됐다. 로컬에 대한 (국가/세계) 통치전략과 이를 어떻게 탈주할 수 있는가(로컬리티: 권력의 재편과 주체의 생성), 사회적 의미망 안에서 구조적으로 조성된 선망과 질시의 감정이 로컬을 어떻게 결핍의 공간으로 타자화하는가(선망과 질시의 로컬리티), 차별을 넘은 차이의 정치는 어떻게 로컬의 권리 인정을 요청할 수 있는가(차이의 정치와 윤리-로컬리티 관점에서) 등등의 쟁점들이 논의된 것이다. 이를 통해서 로컬리티가 당위적이거나 추상적 산물이 아닌, 내셔널과 로컬, 글로벌과 로컬의 관계맺기가 가져온 관계성의 산물임을 증명했고, 지금 여기 갈등과 협상의 로컬리티 국면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존, 공생을 위한 밑거름을 제공한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

이 밑거름은 3단계 어젠다인 공생의 로컬리티에 오면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학술심포지엄에서도 공존과 공생의 로컬리티를 전면화하면서 그 대안을 모색하는 장을 열어 나갔다. 글로벌 이주가 촉발한 가장 뜨거운 다문화의 현장에서 공생을 묻고(다문화와 인정의 로컬리티), 로컬 경계에 대한 실천적 사유를 통해 로컬연대(트랜스로컬)를 제안하고(연대와 자율의 로컬리티), 지구적 차원에서 로컬에 이르기까지 생태적 탐사를 통해 공존의 로컬리티를 다시 던졌다(생태와 대안의 로컬리티). 봉합의 논리가 아닌, 갈등의 국면을 현재화하고, 이러한 장소를 정치화하면서 실천적 담론으로서 로컬리티를 모색했다. 그래서 이러한 학술심포지엄의 자리는 당초 어젠다에서 제안했던 실천학에 대한 환기의 장이 되기도 했다. 지난 10년의 경과를 보면, 다소 작의적인 프레임(형상-갈등-공생)이 보이지만, 이 계단들은 로컬/로컬리티를 더욱 세밀하게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단계적이고 방법론적 계단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3월 10일. ‘로컬리티의 인문학 10년: 소통과 확장’은 그동안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로컬리티 개념이 인문학 영역으로 들어와 어떻게 자리를 잡아나갔는가, 그것의 효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전망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종합적인 성찰의 자리였다. 필자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 2008년을 전후로 로컬리티 담론이 급속도로 확산됐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확산의 매개체 역할을 로컬리티의인문학 연구단이 톡톡히 했다는 것이다. 학술지 논문을 보면, 2007년 7편, 2008년 73편, 2009년 104편 등으로 점차 확산됐고, 인문학에서 생소했던 로컬리티 관련 논문들이 인문학 학술지 지면을 점점 더 많이 확보해 나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계량적인 부분을 절대화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중요한 것은 연구단의 로컬리티연구가 함의하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대 확산이다. 이 지점에서 그동안 인문학적 영역 안에서 줄기차게 강조해 온 로컬(리티)의 재발견, 가치에 대한 작업이 다시금 강조됐다. 조명기의 논문을 인용해 본다.

“기존의 지배적 공간인식 층위를 확인하고 승인하는 데서 출발하는 로컬(리티) 연구는 현상의 거시구조를 설명하는 데는 일정 정도 유용할 터이지만, 기존 프레임의 전환이나 새로운 통합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지향적 가치의 구현을 또 하나의 주요한 속성으로 하는 비판적·대안적 로컬(리티) 연구는, 로컬(리티)에서 전개되고 로컬(리티)을 통해 표출되는 공간인식 층위들 사이의 균열과 비대칭적·상상적 봉합의 양상 그리고 재발견된 균열을 통해 인간 개인이 로컬(리티) 재구성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데서 출발한다.”

근원적인 삶의 자리를 묻는 자리에서 요청된 로컬리티 연구는 그러므로 내가 있는 ‘지금-여기’의 성찰과 맞닿아있다. 갈등에서 공생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이미 환기됐듯이, ‘이론학과 실천학의 종합화’를 추구한 로컬리티의 인문학 영역 안으로 호출된 로컬리티는 이론적 지평의 확장을 넘어, 실천적 동력을 매개하는 장소로서의 위치성이 부각됐다. 로컬리티의인문학의 지난 10년을 더듬는 자리에서 한 토론자는 “작금의 인문학 과잉시대에 로컬리티인문학의 자리는 어디인가”를 물었다. 그때 제대로 하지 못한 답을 하자면, 에드워드 사이드가 주문한 ‘세속성(worldliness)’을 언급하고자 한다. 사이드는 인문주의적 실천이 인간정신을 탐구하는 ‘인문주의의 전통’에 서 있으면서도 세속성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문학은 더 이상 저 고색창연한 자리가 아니다. 온갖 잡다함과 소란스러움이 범람하는 이곳이 인문학의 창발지이다.

 

문재원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현대문학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한 필자는 한국현대소설·로컬리티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엮은 책에 『부산 시공간의 형성과 다층성』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문학담론에서 로컬리티 구성과 전략」, 「지역문학관의 재현과 로컬리티」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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