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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 사유의 넓이와 외연 확인 … 이 책의 출간은 ‘지성사적 사건’이다”
“소쉬르 사유의 넓이와 외연 확인 … 이 책의 출간은 ‘지성사적 사건’이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3.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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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소쉬르의 마지막 강의』 번역한 김성도 고려대 교수

20세기 현대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친 스위스 출신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의 『소쉬르의 마지막 강의: 제3차 일반언어학 강의 1910~1911』(김성도 옮김, 민음사)가 마침내 번역됐다. 제네바에서 출생한 소쉬르는 현대 언어학의 이론적 토대를 수립하고 기호학이라는 새로운 학무의 가능성을 주창한 천재적인 언어학자이며, 동시에 20세기 사상 지형에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독창적 사상가다. 

스위스 명문가에서 태어난 소쉬르는 15세가 되던 시절부터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섭렵하고 언어의 기원에 대한 연역적 방법에 입각한 소논문을 작성하면서 일찍이 자신의 천부성을 드러냈다. 19세기 역사비교언어학을 주도한 독일의 라이프치히대에서 약관 21세에 발표한 석사논문 「인도유럽어들에 있어서 모음의 원시적 체계 논고」는 그를 당대 최고의 비교역사언어학자 반열에 올려놓고 유럽 전역의 학계에서 추앙을 받게 해준 문제작으로, 지난 200년 동안 언어학 분야에서 생산된 모든 저서들을 통틀어 가장 독창적인 성과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파리에서 고트어를 비롯한 인도유럽어들을 10년 동안 강의한 후, 모교 제네바대로 돌아가 1891년부터 1913년까지 산스크리트어와 비교문법을 강의했다. 그의 말년에 속하는 1907년부터 1913년까지 세 차례의 대학 강의를 통해 일반언어학의 근본적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그는 일반언어학의 강의와 관련된 출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심지어 제자들이 출간을 간청해도 수용하지 않았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일반언어학 강의』는 그가 타계한 지 3년이 지나 그의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의 강의필사노트를 참고로 편집해 출간한 유고집이다. 

역자인 김성도 고려대 교수(언어학과)에게서 책의 의미, 소쉬르가 현대사상에 미친 영향, 소쉬르를 연구하는 국내외 연구자들에 관해 들었다. 

△위대한 스승들의 경우, 직접 저서를 내놓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소쉬르 역시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강의노트’가 책의 기원이다. 소쉬르기호학연구소장인 클라우디아 메지아 키하노가 지적했듯, 소쉬르가 제네바대에서 행한 (마지막)강의를 기록한 학부생 콩스탕탱의 강의노트를 ‘유일무이한 텍스트’로 본다면, 잘 알려진 1916년판 『일반언어학 강의』와 이 책 사이에는 어떤 지적 간극이 있는지 궁금하다.

▲ 스위스 제네바(주네브)대학 문과대학 건물 내부에 걸린 소쉬르 대형 초상화 앞에서 김성도 교수.

“일반언어학으로 국한시켜 말했을 때, 소쉬르는 그 어떤 논문이나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가 남긴 것은 100년 전 그의 강의를 경청했던 제자들의 영혼에 남긴, 그 어떤 물질적 흔적이 아닌 그것보다 더 강렬한 정신적 영감이었다. 왜, 소쉬르가 시종일관 집요하게 책을 집필해달라는 제자들과 동료들의 요청을 거부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그저 확인될 수 없는 가설과 추측만이 제시됐을 뿐이다. 이점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애초부터 책의 형식으로 출간된 『일반언어학강의』의 숙명과도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는 이 책의 진정한 저자의 주체(authorship)라는 문제를 던질 수밖에 없다. 특히 1916년 출간된 이른바 『일반언어학 강의』의 표준판 또는 통속본은 세 차례의 대학 년도, 1907년부터 1911년까지 횟수로는 세 차례 소쉬르가 제네바대에서 행한 일반 언어학 강의를 그의 강의를 직접 수강한 적이 없는, 당시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동료교수들이었던 바이와 세슈에가 학생들의 강의 노트를 참조해 작성한 짜깁기의 결과물이다. 이 책이 내포하는 수많은 문제점과 그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구술 강의가 한 권의 책으로 압축되고 재현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다. 그런데, 독일 학계를 중심으로 소쉬르 문헌학의 일부 전문가들―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예거를 손꼽을 수 있다―은 이 통속본이 너무나 왜곡이 심해, 소쉬르의 사상을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편집자들이 제작한 거의 허구적 작품에 가깝다는 힐난을 퍼부었다. 이른바 소쉬르 텍스트와 그 사상의 진정성(authenticit?)이라는 소쉬르학의 난제가 제기된 것이다. 

실제로 이 통속본은 소쉬르가 행한 세 차례의 강의 순서를 거의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구조적 결함을 지닌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소쉬르 언어 이론과 그 사상의 발생부터 숙성돼 가는 진화 과정의 궤적을 보여주지 못하는 결정적 한계를 지닌다. 그렇지만 편집자들의 노고도 인정해야 한다. 어쨌거나, 그들은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소쉬르의 목소리를 책이라는 문자 매체를 통해 복원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의  독창적인 사유를 재현하는 데 상당한 공헌을 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문헌학적 진정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미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에서 자신이 택한 『일반언어학강의』의 표준 텍스트의 정당성을 옹호하면서 진술했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텍스트의 문헌학적 실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의 역사적 효과와 소명이다. 그렇다. 까다로운 소쉬르의 전공자들의 눈에는 성이 차지 않겠으나, 이미 지난 100년 동안 읽어온 소쉬르는 바로 통속본이었다는 점에서, 이제 그것은 소쉬르학의 필수불가결한 문헌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소쉬르 텍스트에 접근할 때는 총체적 부정이나 이분법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며 다원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다다익선이라고나 할까. 이번에 필자가 번역한 ‘제3차 일반언어학강의’는 무엇보다 세 차례의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소쉬르의 언어 이론과 사상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기존의 영어 번역본과 일본어 번역본에 견주어도 새로운 것은 언어의 지리 역사학, 이를테면 전 세계의 언어 아틀라스의 소묘에 해당되는 약 100여 쪽의 새로운 문헌을 한국어로 옮겼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제3차 일반언어학 강의’의 수강 학생의 필사본을 최초로 전사했던 일본인 학자 고마추의 판본에도 누락돼 있다. 여기서 고마추 교수는 소쉬르의 세 차례의 강의 노트를 평생에 걸쳐 문헌학적 고증을 통해 완성한 이 분야의 권위자라는 점을 지적한다, 안타깝게도 올해 초 타계했다.  

△앞의 질문과도 이어질 걸로 생각하는데, ‘제3차 일반언어학 강의’라고 명명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이 ‘제3차 일반언어학 강의’의 가장 중요한 요체는 무엇인가? 일반 독자를 위해, 일반언어학 강의의 시간적 ‘강의 구성’에 대한 정보를 부탁드린다. 제1차, 제2차 일반언어학 강의가 있었다는 뜻이며, 이 1, 2차 강의는 어떤 내용인지 대략적으로 정리해주면 좋겠다. 

“중요한 질문이다. 1906년 소쉬르가 최초로 일반언어학이라는 명칭의 강의를 시작했을 때, 사실, 그 제목은 소쉬르 자신이 제안한 것인지, 아니면 제네바대 당국에서 소쉬르 선생에게 요청한 것인지, 아직 확인할 길이 없다. 어떤 경우이건 ‘일반 언어학’이라는 제목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기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제목이다. ‘일반 문법’이라는 용어나 제목은 간혹 사용됐으나 ‘일반 언어학’이라는 제목은 소쉬르의 강의제목에서 최초로 사용된 것이다. 제3차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소쉬르는 1906년부터 1907년까지가 제1차, 1908~1909년에 2차, 그리고 1910~1911년 세 번째 강의를 했다. 그러나 1911년 말부터 소쉬르는 건강 상태가 악화돼, 학교에 휴직계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년 동안 병마와 싸우다 1913년 2월 타계했다. 만약 소쉬르가 10년을 더 생존했다면, 아마도 4차, 5차 일반언어학 강의는 계속됐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3차 강의에서 소쉬르가 반복적으로, 시간의 부족을 이유로, 적지 않은 부분에서, 더 이상 자세히 다루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1차 강의, 제2차, 제3차 강의의 구성과 내용의 차이점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문헌학적으로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이라 제한된 지면에서는 상세하게 기술할 수 없다. 단, 소쉬르 선생의 기본 설계도를 제시할 수는 있다. 

▲ 소쉬르가 세 차례 일했던 강의실로, 현재도 강의실로 사용되고 있다.

제1차 강의에서 소쉬르는 언어학적 개념들과 방법들에 대한 그의 철저한 비판을 개진했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소쉬르가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과 순서는 통속본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1차 강의는 소쉬르의 언어 사상의 씨앗을 목격할 수 있다. 그는 먼저 역사적 문제에 초점을 뒀다. 즉, 1차 강의에서는 소쉬르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공시 언어학의 문제는 아직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제1차 첫 강의에서 소쉬르는 언어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정의하는 시도를 감행한다. 그리고 만약, 언어학이 언어 또는 언어들을 다루는 과학이라면, 도대체 언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또한 기존의 언어를 다뤘던 민족학, 논리학, 문헌학, 음성학, 심리학, 사회학 등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를 자문한다. 

제1차 강의의 두 번째 쟁점은 문자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언어학적 오류를 다루고 있다. 제1차 강의에서 이미 기호, 시스템, 가치 등의 핵심 개념어들을 도입하고 있다. 이 세 개의 용어는 사실상 언어에 대한 소쉬르 사상의 중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세 개의 용어는 이미 이보다 훨씬 앞서 소쉬르가 명시적으로 사용한 바 있다. 이를테면 시스템이라는 용어는 그의 불후의 석사 논문에서, 가치라는 용어는 1880년대 그의 음운론 관련 필사본에서 사용됐다. 이밖에도 1차 강의에서는 음운론의 토대를 완전히 새롭게 마련하고 있다.

제2차 강의에서 소쉬르가 가장 강조한 것은 언어의 영속적 이원성이다, 소쉬르는 그의 자필 필사본에서 ‘double essence’ 즉 ‘이중적 정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쉽게 말해서, 목소리를 통해서 생산된 소리가 하나의 단어가 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그 소리에 하나의 의미가 결착됐을 때다. 의미는 하나의 복잡하고도 심리적인 단위라고 말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소쉬르는 하나의 개별 언어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언어에는 이중적 측면, 즉 사회적 측면과 개인적 측면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랑그와 파롤의 구별에 해당된다. 제2차 강의에서 ‘언어는 하나의 사회적 사실(fait social)’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강제력이라는 관념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소쉬르가 동시대의 사회학자 뒤르케임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제2차 강의에서 가장 핵심적 내용 가운데 하나는 언어가 하나의 기호 체계라고 진술하면서 기호학의 소묘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공시태 언어학과 통시태 언어학의 이론적 심화가 이뤄진다.

소쉬르 생애 마지막 강의인 제3차 강의에는 모두 14명의 학생이 수강 신청을 했다. 이 가운데 마그리트 세슈에(Marguerite Sechehaye, 통속본 편집자 가운데 한명인 세세의 부인임), 에밀 콩스탕텡을 손꼽을 수 있는데 이 두 명은 제2차 강의도 수강했다. 통속본의 편집자인 바이와 세슈에는 마그리트, 데갈리에, 요셉 등의 필사 노트를 참조했으나. 가장 완성도가 높은 콩스탕텡의 노트를 놓치고 말았으며, 통속본 출간 이후 수년이 지나서야 그 존재를 깨달았으나 후회막급이었다.  

제3차 강의는 1910년 10월 28일 금요일 시작해 먼저 서양의 언어학사를 모두 3단계로 나눴다. 주지하다시피 이 강의는 통속본에서 가장 앞부분에 배치됐다. 제3차 강의는 앞의 강의에 비해 전체적으로 공시태에 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제3차 강의에서 소쉬르는 언어지리학의 전체적 윤곽을 제시하고 있는데, 20세기 언어학에서 언어지리학이라는 방대한 연구 프로그램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는 점에서 새로운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다. 앞서 답변에서 강조한 것처럼, 이 부분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소쉬르의 사유의 넓이와 외연을 보여준다. 언어가 정치체제, 종교, 문자, 지리, 사회, 문화와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가에 대한 언어지정학의 그랜드 아틀라스다.

이밖에도, 제3차 강의에서는 언어철학적 차원에서, 보다 심오한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실재, 단위, 정체성, 자의성 등의 묵직한 개념들이 다뤄졌다. 이점에서 소쉬르 언어인식론의 중핵은 역시 제3차 강의에서 만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콩스탕탱의 강의필사본인 ‘프랑스어 필사본 전사 기록’을 키하노 소장으로부터 2008년도에 건네받았다. 키하노 소장과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 같은데.

“2007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소쉬르 탄신 150년 주년 국제 학술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콜롬비아 출신의 학자인데, 학부에서 박사학위까지, 제네바대 언어학과에서 15년 이상을 머물면서 소쉬르를 연구해온 학자다. 그 분이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2006년 <소쉬르 연구지(Cahiers Ferdinand de Saussure)>에 제3차 강의의 비평본을 게재했을 때, 번역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정중하게 한국어 번역과 판권을 문의했는데, 흔쾌히 수락하더라.” 

▲ 소쉬르의 생가

△소쉬르의 사상을 현대사상의 지평에서 논하는 이들도 많다. 선생님께선 ‘옮긴이 해제’에서 이렇게 썼다. “소쉬르의 목소리가 제네바대학 강단에서 울려 퍼진 지 정확히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 그의 육성 강의를 들어도 그가 펼친 사유의 심오함과 역동성, 그가 구사한 언어의 생명력과 활력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토록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소쉬르 사유의 심오함과 역동성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번 겨울방학에 학부 학생들과 더불어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강독하면서 그 점을 학생들과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늘 강조하는 것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는 인간의 자연언어를 설명하는 데만 적용될 수 있는 언어학 이론에 머물지 않고, 모든 학문에 적용될 수 있는 과학 비판이며, 이점에서 일반 인식론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이다. 최소한, 나의 경우는 이점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테면 譯者는 언어 이외, 환경과 생태, 도시 공간, 매체이론, 문화사, 이미지 이론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의 외연을 확대해왔는데, 가장 중요한 통찰 가운데 하나는 소쉬르의 인식론이었다. 예컨대 소쉬르가 남긴 ‘관점이 대상을 창조한다’는 것은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나의 좌우명이다. 심지어 여행을 가서 풍경을 감상하거나 도시의 공간을 읽어내려는 시도를 할 때도, 나는 관점이 대상에 선행한다는 점을 체험했다. 아니, 감히 한 걸음 더 나간다면, 나는 관점이 가치마저 창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소쉬르의 사유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백미는 관계론적 사유가 될 것이다. 부분들을 축적하거나 자료들을 늘어놓는 것은 공허하다. 중요한 것은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며, 그 관계들의 총체인 시스템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쉬르의 사고는 철두철미한 시스템 이론이다. 그런데 필자를 비롯해, 소쉬르 연구자들조차도 20세기의 시스템 사유의 거장들인, 파레토, 베이트슨, 루만 등의 시스템 이론과 치밀한 사상적 대질을 하는 작업을 시도해본 적이 없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면, 콩디약의 시스템 이론까지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쉬르 언어이론에서 가치이론은 참으로 독창적이다. 그레마스가 기호학의 마지막 단어는 가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 바 있는 데 이미 소쉬르는 100년 전에 설파한 셈이다. 소쉬르가 평생 매달린 화두는 언어의 가치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쉬르 사상의 심오함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일반 언어학 강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학생들의 강의가 아닌, 스스로에게 고백하듯 적은 자필 노트의 언어는 전혀 다른 성격의 언어다. 그 언어는 한마디로 형이상학에 가깝다. 심지어 불교의 공개념과 허무 개념 등이 빈번하게 사용된다. 그의 자필 노트에서 ‘기호는 없다’ ‘오직 요소들만이 있으며, 그 요소들조차 한정된 시간 안에서 사라지는 실체가 없는 존재’라는 발언을 할 때,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일부 소쉬르 연구자들이 지적한 바 있듯이, 소쉬르의 언어 사상은 철저한 탈존재론적 사유다. 언어의 물질적 실체를 철두철미하게 부정한다.”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듯, 소쉬르의 이 책은 100년 전 사유의 흔적이다. 지금은 디지털 정보시대 21세기다. “소쉬르의 해묵은 강의를 읽어서 얻을 소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는데, 어떤 ‘소득’을 생각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디지털 언어와 관련해 세 권의 책을 출간했고 하이퍼미디어와 증강 도시 등에 대해 국내외 수십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디지털의 기술 발전이 인간의 자율적 사고 능력을 발전시키기는커녕, 역설적으로 인간의 비전과 직관, 창의력은 왜소해지기 십상이다. 다른 고전도 마찬가지겠으나. 아무리 훌륭한 언어와 사상도, 그것을 맞이할 채비가 돼 있지 않다면 소용이 없다. 특히 강조할 것은 고전은 요즘 프랑스 인문학계의 화두인 실감(ressentir)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다. 풀어 말해, 정보나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 읽는 고전이 아니라, 나의 몸으로 직접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겨울방학 때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읽었는데, 몇 단락 (이를테면 그의 모친의 임종 순간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하염없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나의 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의 모친 모니카처럼 맞이할 수 있기를 말이다. 

소쉬르의 강의에서 어떤 소득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나? 그것은 읽는 이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질 것이다. 소쉬르가 구사하는 은유와 이미지의 언어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물의 깊이를 파고드는 탐구하는 정신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선생님의 분석은 『일반언어학 강의』가 단순히 언어학의 지평에서뿐만 아니라, 사상사의 측면에서도 주요하게 취급된다는 걸 재확인해준다. 그런데 그만큼 소쉬르에게 다가가는 길은 녹록치 않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소쉬르’에게 독자들이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이 물음 역시, 독자의 마음가짐과 지적 성격, 의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한 가지 독서 방법 가운데 하나는, 굳이 1장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소쉬르가 세 차례의 강의를 하고 타계했기 때문에, 사실상 소쉬르가 염두에 둔 다양한 이론 요소들, 즉 이론소들의 순서를 누구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기호가 먼저인가, 가치가 먼저인가, 기표가 먼저인가, 정답은 없다. 따라서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서 순서를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읽어도 된다.

또 다른 하나는 만약, 시각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소쉬르가 사용한 생생한 은유들과 비유들을 한번 직접 이미지로 그려볼 수 있다면, 멋진 작품이 나올 것이다. 그가 살아 있는 나비와 박제된 나비를, 제네바-파리 기차, 알프스의 주요 정상들을 언급할 때, 나무의 줄기, 광물을 인용할 때, 그것을 한 편의 이미지로 재현해본다면 흥미진진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또는 복잡한 이론적 개념적 이해를 반드시 목표로 삼을 필요가 없다.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짧은 구절들 몇 개를 갖고 감상해도 된다.” 

▲ 지난 1월 9일~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개막식 장면.

△이 책이 번역돼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2006년 전사됐고, 그걸 2008년 건네받았다. 선생께서 이 번역본 출간을 놓고 ‘작은 지성사적 사건’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왜 그런가? 그리고 이번 번역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 또한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이번 소쉬르 제3차 강의의 한국어 번역본에 관심을 가져준 <교수신문>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이번 소쉬르 번역에 대해서 단 한 곳의 중앙일간지에서 단신을 전했고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역자에 대한 관심 부족을 아쉬워하는데, 아니다. 소쉬르라는 20세기 현대 인문학의 거장에 대한 이 같은 총체적 관심 부재는 역자에게는 현재의 언론에서 인문학에 대한 인식 수준을 말해주는 지표이고, 특히 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공감하듯이, 인문저술의 비평과 서평 공간이 완전히 실종됐다는 것을 일러준다. 

기존의 통속본 소쉬르에 덧붙여, 소쉬르의 생생한 육성 강의를 담은 새로운 소쉬르 텍스트를 한국 독자들에게 내놓은 것이 ‘왜, 인문학의 장에서 작은 사건이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싶다. 기존의 통속본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내용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새로운 감수성과 영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감의 수혜자는 결코 언어학 전공자들의 무리에 머무르지 않고,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등 가능하다면 전 분야로 확대될 수 있기를 바란다. 

힘들었던 부분? 모든 부분에서 어려웠다. 특히 수백여 개의 고대어와 지명들이 등장하는 지리역사 언어학 부분에서 도저히 소쉬르의 무불통지의 박학을 따로 잡을 수 없었다. 소쉬르가 언급한 고대 언어, 비명, 종교 교리, 지리명 등, 내가 이렇게 무식한가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물론, 이 같은 난점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지정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하나만 더 묻겠다. 1910년대 유럽의 대학 강의실에서 진행된 ‘강의’와 온갖 평가 바람과 구조개혁 논의에 휩쓸리고 있는 2017년의 한국 대학 강의실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도대체 대학에서 ‘강의’란 무엇인가? 

“오늘날 대학 강의실의 풍경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번역을 한 후, 오늘날의 대학인을 향해 발화하고 싶은 메시지 또는 단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흠모(admirer)’다. 역자가 상세히 기술했거니와, 스승 소쉬르의 숨결 하나 놓치지 않고 소쉬르가 남긴 모든 말씀을 옮긴 콩스탕텡이 존재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제자가 스승에 대해서 갖고 있던 막연한 존경을 넘어 흠모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흠모할 때, 그에게는 이런 놀라운 기적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활력과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이점에서, 학생이 교수를 평가해 그것을 점수화시키는 21세기의 대학의 환경에서 기능성과 효율성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심오한 깨달음과 정신적 교류, 초인적인 학구열 등의 미덕을 경험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의 관점에서조차 기능적 학습 주체보다는 오히려 흠모하는 정신이 훨씬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역자의 소신이다. 

이제 대학에서의 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제자는 스승에게 흠모하고, 스승은 제자를 마음으로부터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런 정신적 토양과 윤리적 상호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지식전달의 장으로 전락한다면 다가올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강의실은 너무나 우울할 것 같다. 나의 희망이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치부해도 상관이 없다. 대학에서의 강의에는 정보와 지식 그 이상의 것이 있고, 그것은 모종의 성스러움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과연 나는 스승이 될 수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리킬 자격이 있는가?’ 지금 내 손 안에 쥐고 있는 책 제목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해 성찰했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 『스승』이다. 책의 서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절대로 진정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스승이 될 수 없다’ 그는 신만이 오직 한 인간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25년 동안 강단을 지켜온 내가 과연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 있냐는 준엄한 물음이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사진제공= 김성도 교수
(김 교수는 지난 1월 9일~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 100주년기념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소쉬르의 생가와 대학 등지를 다니며 사진을 촬영했다) 

김성도 교수에게 듣는 국내외 소쉬르 연구와 연구자들

해외의 경우, 소쉬르학의 3대 거장으로서는 금년 초에 타계한 전 로마대학 총장을 지낸 마우로 교수, 소쉬르문헌학의 대가였던 엥글러 교수, 그리고 최초의 소쉬르 필사본을 제시한 고델 교수를 꼽을 수 있다. 이밖에, 최근 몇 년 동안 세 권의 소쉬르 연구서를 출간한 아라베 교수(김성도 교수의 지도교수)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일본은 세계 최초의 일반언어학 강의 번역서(1928)를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단일 국가로는 소쉬르 관련 연구서의 숫자가 가장 많은 국가일 것이다. 

아쉽게도 국내에서 소쉬르를 다룬 단독 저서는 단 세권에 불과하다. 한국어 계통론과 역사 언어학의 태두였던 고 김방한 교수, 그리고 필자의 저서 『로고스에서 뮈토스까지』, 최용호 한국외대 교수의 『시간과 언어』 등이다. 물론 그 이전에 서울대 언어학과에서 장병기 전 홍익대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한 바 있다. 

이밖에 소쉬르 관련 연구 논문들과 번역서를 내온 김현권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를 비롯해, 소쉬르의 언어 이론에 대한 연구를 해온 프랑스 언어학의 석학인 홍재성 전 서울대 교수와 전성기 전 고려대 교수 등을 언급할 수 있다. 

소쉬르에 관한 권위 있는 연구서들에는 「A la recherche de Saussure」 「Linguistique saussurienne」 「Cambridge Companion to Saussure」를 꼽을 수 있다. 

옮긴이 김성도 교수는?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10대학에서 논문 「소쉬르 사상의 인식론적 연속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려대, 서울대 등에서 강사를 역임하고, 전임교수로 20년 동안 고려대 언어학과에서 기호학, 언어학사, 언어학과 인류학 등을 강의해 왔다. 옥스퍼드대, 하버드대, 케임브리지대 방문교수를 지냈으며, 국제 소쉬르 동인회의 정식 회원이며, 세계기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제8대 한국기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영상문화학회 창립(2002년) 구성원이며, 현재 제9대 회장을 맡고 있다. 전문 연구지 <소쉬르 연구지(Cahiers Ferdinand de Saussure)>를 비롯해 유럽의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소쉬르의 새로운 기호학적 비전을 다룬 80여 쪽에 이르는 장편논문을 통해 ‘최우수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현대 언어사상을 비롯해 문화이론, 매체이론과 매체사, 도시 공간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연구지평을 확대했다. 이 같은 초학제적 연구를 실천하기 위한 거점으로서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를 창립, 현재 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로고스에서 뮈토스까지』 『도시 인간학』을 비롯해 다수가 있으며,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퍼스의 기호 사상』 그레마스의 『의미에 관하여』 등 기호학 분야의 고전들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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