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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의 눈으로 들여다 본 조선은 '역동적' 사회였다
생태-환경의 눈으로 들여다 본 조선은 '역동적' 사회였다
  • 김동진 한국생태환경사학회 회장
  • 승인 2017.03.02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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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조선의 생태환경사』 김동진 지음 | 푸른역사 | 364쪽 | 20,000원

봄철 하얀 꽃이 눈송이처럼 열리는 나무가 있는데, 조선의 백성들이 이 나무에 ‘이팝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성계의 이씨 왕조가 세워진 후에야 백성들이 흰 쌀로 지은 밥을 먹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해방의 공간에서 김일성 등이 ‘니밥에 괴기국’이라는 구호를 내세웠고, 정권의 수립에 성공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1970년대 통일벼 등을 통해 식량을 자급하고 마음껏 쌀밥을 먹게 된 경험은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 여전히 중요한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진흙에서 농사지어 얻는 쌀이기에 ‘니[泥]밥’으로 불리기도 하고, 전주 이씨 왕조가 처음 이룩한 것이기에 ‘이팝’으로도 불리는 쌀밥은 왜 20세기 한국인들의 꿈이 됐는가. 누군가의 꿈은 경험의 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꿈꿀 수 없다. 그것이 직접적인 경험이든, 간접적이든 경험이든 가리지 않고.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내 아버지 세대가 ‘니밥에 괴기국’을 꿈꿀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일제 강점기에 밥은커녕 소나무 껍질로라도 허기를 채우면 여한이 없는 시절이었다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이 적지 않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한 어르신들이 꾸었던 꿈 ‘니밥’은 조선시대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 내게 중요한 화두의 하나였다. 왜냐하면, 아버지 세대가 적어도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쌀밥 먹은 이야기라도 들어본 적이 있어야 그런 꿈을 꿀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식민지근대화론’ 뒤집는 사료 속 증언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식민사관에 따르면 조선은 노예제의 낙후하고 빈곤한 사회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생산력의 수준은 노예제를 운영할 정도로 낮았다는 것이므로, 백성들이 쌀밥을 먹고, 혹은 먹어보려고 꿈꾸었다는 것은 역사학자로서 상상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식민사관에서 주장하는 한국사의 정체성론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 역사학계의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이러한 노력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불완전한 설명의 틈으로 최근 새롭게 등장한 주장이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이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한 연구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적 역사관의 수용을 주창하면서 일제 강점기에 이룩된 근대적 발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연구자로서 현장 조사에서 만난 노인 중 일제 강점기의 삶이 넉넉했다는 증언하는 이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문헌 중심의 연구자인 내가 여러 사료들을 섭렵하면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풍요한 삶을 증언하는 사료를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16세기 중엽 성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이문건은 부인의 병에 ‘소고기를 먹지 말라!’고 처방했다. 17~19세기 조선인들의 1인당 소고기 섭취량은 1995년 이전 한국인들이 먹던 것보다 그 양이 많았다. 이것이 ‘니밥에 괴기국’에 얽힌 한국인들의 깊은 한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생태환경사는 생태와 환경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역사학과 어느 정도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점은 ‘생태계(Ecosystem)’라는 단어에 잘 드러나 있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먹이사슬로 연결돼 있고, 서로가 서로에 의존한다.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인간 역시 다른 생명체와 생명이 없는 물질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생태환경사에 대한 연구는 전근대 사회의 생활에서 필요한 자원을 얻는 대상으로서 논과 밭뿐만 아니라 사람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여러 생명체들에 주목함으로써 지금까지 역사학계의 연구에 나타난 상호 모순과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서로 연결돼 상호작용하는 생태와 환경의 특성은 분석을 넘어선 관계의 설명을 추구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요소에 대한 패러다임적 설명을 통해 상반되는 요인을 발견하고, 더 낳은 설명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생태환경사로서 15~19세기 한국인의 삶은 식민사관이나 식민지근대화론에서 주장하는 ‘정체’된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시기 한국사는 매우 ‘역동적(dynamic)’인 변화가 드러났다. 제임스 러브록이 말한 바와 같이 농사에 힘쓰는 조선 농부들의 쟁기와 톱, 삽과 호미는 15~19세기 한반도의 생태 환경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농지개간이 확대되고, 捕虎정책을 시행하고, 牛疫이 만연하면서 야생동물들은 그 수가 크게 절멸에 가까울 정도로 줄었다. 이와 달리 가축은 크게 늘었는데, 특히 물소와 교배되면서 크고 무겁고 힘센 한국의 독특한 소로 바뀌었다. 15세기에 5천여 마리 이상 살았던 범과 표범, 그리고 200만 마리 이상이었던 사슴은 20세기 초 절멸했다. 이와 달리 같은 시기에 소는 3만 마리에서 120만~170만 마리로 늘었으며, 힘은 두 배 가까이 세졌기에 우력 대폭발이라 할 정도의 큰 변화였다.

조선의 농본정책은 농지개간으로 구현됐고, 川防과 火田이 농경지를 넓히고 생태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15~16세기에 조선은 시냇가에 보를 막아 무너미 땅을 개간하는 데 주력했다. 냇가의 무너미 땅의 개간이 마무리되자 17세기 무렵부터 화전에 의한 산록과 깊은 산중의 땅을 개간하는 화전 개발로 이행됐다. 그 결과 국초 150만ha 남짓이었을 농경지는 20세기 초 450만ha 이상으로 확대됐다.

농지 개간 확대가 불러온 환경 변화

이러한 농지 개간이 가능했던 것은 백성에게 산림 이용을 개방하는 정책을 시행한 결과였다. 산림의 개방은 농지개간과 가용공간의 확대를 가져온 반면 숲은 크게 훼손됐다. 원시림과 활엽수가 우거졌던 15세기 조선의 산림은 이용이 증가해 20세기 초에는 초원에 가까운 상태로 변모하고, 농경지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이 확대된 만큼 그 면적이 크게 줄었다. 또한 냇가의 무너미 땅은 사냥터에서 농경지로 개간됐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시냇가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천렵을 즐기고 은어를 비롯한 민물고기의 이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

생태 환경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서도 나타났다. 조선은 일상의 음식을 먹게 하여 백성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종의 예방의학을 중시했다. 그 결과 이전에 약재로 사용되던 것들 중 다수가 음식으로 전환됐다. 여기에 누룩, 맥아, 젖산균 등으로 발효하거나 미생물을 증식해 이용하는 방법들이 궁중이나 사원을 넘어 일반 백성들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지고 보급됐다. 누룩은 술을 만들고, 맥아는 식혜를 만들었지만, 이 둘을 조합해 단맛이 나는 술을 만드는 기술로 발전했다. 애초 간장을 담기위해 만들어졌던 메주는 된장을 만들게 됐고, 다양한 재료로 장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했다. 이러한 장의 발달사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룬 것이 맥아와 고추를 더해 만든 고추장이었다. 공교롭게도 사도세자는 기력이 쇠진해 죽음을 눈앞에 둔 영조에게 고추장을 가져다 바침으로써 비운의 왕세자가 됐다.

농지개간이 초래한 생태환경의 변화는 전염병의 발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무너미 땅이 개간돼 사람들의 거주지가 산곡에서 더 낮은 지역으로 옮겨지던 시기에 수인성 전염병인 이질이 만연했다. 16세기 이래 소의 사육이 늘면서 우역, 홍역, 천연두가 만연하고 사슴이 절멸하면서 한반도의 야생동물의 서식환경이 격변했다.

조선의 역사적 발전은 한반도에 주어진 생태 환경 자원의 이용을 통해 이뤄졌고, 이는 한반도의 생태 환경을 이전 시기와 명확히 구분될 정도로 크게 변화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복잡한 여러 요인이 상호작용하며 전개됐고,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생태와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인간의 개발은 예기치 않은 재난으로도 이어졌다.

포호정책을 시행하고, 농지를 개간하며, 음식을 개발하고 질병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의 경험은 국가의 정책으로 받아들여져 전국으로 확산됐다. 지방과 백성의 경험에서 유래된 집단지성의 활용은 일상적이었으며, 어의 등 고급 관리들이 만들어낸 고급 지식은 백성들에게 알려 효험을 본 후 널리 시행했다. 착호당상, 김치상서의 존재에서 조선이 그리 고답적인 관료 사회이기만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을 주도한 이들이 사회의 주류로 진입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열린 사회일 수 있다는 점도 엿볼 수 있다. 『조선의 생태환경사』에 이러한 내용을 담았다.

김동진 한국생태환경사학회 회장

필자는 한국교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원대에 출강하고 있으며, 생태환경사를 통해 한국사회경제사를 재정립하고, 이를 역사교육의 현장에 적용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아틀라스한국사』(공저), 『조선전기 포호정책 연구:농지개간의 관점에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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