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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논리에 꽁꽁 묶인 ‘과학’ … “모험·첨단 연구 가로막아”
경제논리에 꽁꽁 묶인 ‘과학’ … “모험·첨단 연구 가로막아”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7.02.27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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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지원정책, 헌법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 22일 국회 정책토론회 열고 헌법개정 제안 
이주영 개헌특위 위원장 “과학은 경제발전 도구 돼선 안돼” 공감

한국이 최신의 과학(원천)기술을 보유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이 경제논리에 포섭돼 온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가 과학기술정책을 연구자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최근 학계 곳곳에서 제기됐지만, 정책적 개선 요구를 넘어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은 사뭇 낯설기까지 하다. 하지만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비례)이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과학기술 헌법 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들여다보면 국가 과학기술정책과 헌법의 연결고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제발표 ‘과학기술활동에 대한 새로운 헌법적 규정을 요구한다’를 맡은 노환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 교수(학술·교육정책)는 헌법 제9장(경제) 제127조 제1항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해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를 지목했다. 헌법상에 과학기술이 ‘국민경제 발전’과 연결되면서 정부의 과학기술 담당 행정부처가 경제부처에 배속되고, 연구기관(사업)에 대한 정책이 경제장관회의에서 다뤄지는 등 국가연구개발사업이 ‘경제논리’에 따라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근본적 처방이 헌법 개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노 교수의 주장은 과학기술 분야의 독자적 운영을 더 늦추었다간 국가경쟁력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과학기술의 ‘경제발전’ 프레임에 따라 연구인력이 다양한 분야에 포진하지 못하고, 이들 역시 경제적 이익이 가시화 될만한 연구에만 집중하다보니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최신의 이슈에 대응할 국가연구기반이 빈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과감한 연구주제에 도전하지 못하고, 위험성이 적은 주제에 매달리게 된 이유는 경제논리를 적용하는 평가체계 탓”이라며 “경제적 이익이 보이지 않는 연구주제는 시도조차 못하고 포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꼬집었다. 

▲ 사진제공= 신용현 의원실

지난해 10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이명철) 정책연구소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16년 현재 국가 R&D 투자 비중이 GDP 대비 4.3%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과학기술이 각종 재난이나 국가 간 정치적 갈등·협력 등에서 미진한 대응을 보여온 배경은 세간의 궁금증을 사기도 했다. 

정부는 매년 연구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지만 국가적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 분야 교수들을 불러모아 일회성 토론이나 자문회의를 결성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도 과학기술을 비롯한 국가연구개발이 경제분야에 편향돼 왔기 때문이라는 게 노 교수의 분석이다. 예컨대 북한 정보를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거나, 아프간 파병을 할 때도 해당지역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상황 등이 반복되는 것이다. 

‘기술확보’에서 ‘연구팀 보유’로 개념 탈피해야

이날 노 교수가 제안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헌법 개정 방향은 참고할 만하다. 우선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초점을 현행 ‘기술확보’에서 ‘연구팀 보유’로 개념을 완전히 달리할 것을 주문했다. 구체적으로는 이공계와 인문계라는 이분법적 인식 구분의 틀을 모든 학문영역에서 적정규모의 국가연구원을 보유하는 쪽으로 바꾸고, 재난이나 국가 간 이해상충·협력 등 국가적 공공문제를 다양한 학문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정부 입장에서도 경제논리로 묶어둔 과학기술을 독자적으로 떼어내고, 다양한 학문분야를 육성해야 각종 글로벌 이슈에서 국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국회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신용현 의원도 “현행 헌법 제127조의 ‘과학기술의 혁신’은 과학기술계의 안정적인 연구환경 조성과는 거리가 먼, 기획재정부가 출연연구기관을 고작 이익 창출이 목적인 ‘공공기관의 경영혁신’이라는 잣대로 통제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연구현장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연구자의 자율성을 옥죄는 ‘반혁신’에 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영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자유한국당) 역시 노 교수와 신 의원의 과학기술 헌법 개정 취지에 공감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축사에서 헌법 제9장(경제) 제127조 제1항을 언급하면서 “과학이 순수하게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경제에 종속된 것이자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로 여겨진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의 기초과학 지원정책에 대해서도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 지원이) 경제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수단에 투자를 한 것일뿐 순수한 과학 그 자체를 위해 현실적인 지원을 한 것은 아니었다”며 “과학을 단순히 ‘경제’ 관련 테두리에 가둬놓는 것은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관심과 호기심, 그로 인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에 어떠한 족쇄를 채워놓는 것은 발전의 원동력을 저하시키는 일이다”라며 과학기술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넌지시 강조했다.

한편 대한민국 헌법은 1963년 개정된 제6호에서 과학기술활동을 처음 규정한 이후 네 차례 개정을 거쳐 1988년 개정된 제10호 127조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 개발을 통해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라는 과학기술활동 규정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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