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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군의 죽음
인문학 군의 죽음
  • 손종업 선문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7.02.2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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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에세이] 손종업 선문대·국어국문학과

이글은 <인문예술> 제2집에 실린 손종업 선문대 교수의 「인문학 군의 죽음에 관한 진상 특위 중간보고서」 중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 손종업 선문대 교수

이 보고서를 쓰느라 그의 행적을 쫓는 동안에, 나는 자주 어디선가 그와 마주칠 수도 있으리라는 은밀한 기대와 설렘을 지녔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 사실은 그는 대학에는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씁쓸한 사실이다. 그는 대학에 실망했고 대학은 그를 내쫓아버린 뒤에 졸업장 공장이나 취업 알선처로 전락했다. 아마도 이 보고서를 쓰고 있는 내 직업이 무엇인지를 여러분이 안다면, 내가 얼마나 깊은 환멸 속에서 지내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에는 확신을 품은 채 어떤 인물을 쫓아간 적도 있다. 인문학 군이 만약에 살아있다면, 청년 예수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속에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근거는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평범한 얼굴을 한 채로 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을 품고 있다. 나는 아직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어쩌면 이미 만났을 수도 있다. 이 보잘 것 없는 보고서를 읽은 여러분들께서도 길을 걸으면서 유심히 살펴봐주기를 바란다.

그의 온몸은 이미 상처들로 가득할 것이다. 어쩌면 몇 개의 기계장치들이 여전히 그의 몸에 붙어 있을지도 모른다. 기계심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탓에 자주 걸음을 멈추고 가쁜 호흡을 내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생생히 빛날 것이며 그의 손길은 부드러울 것이며 그의 혀는 뱀을 베는 칼이자 상처를 감싸는 솜일 것이며 기꺼이 스스로를 바쳐 시대의 어둠을 밝히려 할 것이다.

그를 찾아 떠도는 동안, 스스로 인문학 군이라고 자처하는 사기꾼들과도 자주 마주쳤다. 대부분의 그들은 차라리 인문학 군의 변절자에 가까웠다. 그들은 오로지 고전을 읽고 자기를 계몽하고 능력을 키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도구로 만들고 신자유주의의 도금된 훈장처럼 스스로 빛났다. 그들은 강의를 했고 끊임없이 책을 찍어냈으나 스스로 자유로운가도 의문스러웠지만, 인문학 군처럼 기꺼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려는 그 마음이 읽히질 않았다. 그가 인문학 군이가를 알아보는 가장 손쉬운 척도는 의로움을 위해 이로움을 버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의외로 이 실험을 통과하는 자는 많지 않았다.

말년의―살아있다면 여전히 눈부신 청년이겠지만―인문학 군이라면 그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으맂도 모른다. “산다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다른 문제죠. 당신같이 썩은 사람은 살아 있지도 않고 살 가망도 없습니다. 산송장이죠. 구더기가 이물이물하는.”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로서, 삶을 다시 정의하는 것, 그리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문학 군의 꿈이었을 것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그는 눈부신 꿈을 꾸었고 의지를 불태웠는지도 모른다. 그가 남긴 문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또 무엇을 하지 않겠는가를 물었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며 또 하지 않겠는가를 말해 주마. 나는 내가 이제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을 섬길 수 없어. 그것이 비록 나의 가정이건, 나의 조국이건, 나의 교회건 말야. 그리고 나는 될 수 있는 한 자유롭게,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완전하게, 인생 또는 예술의 어떤 양식 속에서 나 자신을 표현하도록 노력하겠어. 또한 나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허용된 유일한 무기들, 즉 침묵, 유랑, 그리고 奸智를 사용토록 할 거야.”(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이를 통해 혁명은 나와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행돼야 할 긴 혁명(Long Revolution)이며, 우리는 우리 존재의 소임을 불씨처럼 짊어지고 있는 힘을 다해 나아가서, 미래에 전달하는 한 존재하는 보람을 다하는 거라는 그의 유언은, 설령 그가 이미 허망하게 죽었다고 하더라도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손종업 선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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