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22:15 (목)
교육 콘텐츠가 가야 할 길
교육 콘텐츠가 가야 할 길
  • 김정규 한국방송대 출판문화원, 시인
  • 승인 2017.02.13 11: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김정규 한국방송대 출판문화원, 시인

앞으로 1세대 후, 그러니까 30년 후에는 지구촌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우리는 보통 과거라는 틀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보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관점을 미래로 확장하여 사실상 새로운 것인데도 우리가 아는 범위에 들어맞도록 왜곡하려 한다. 물론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습성이 우리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명백해 보이는 변화를 불가능하거나 터무니없다고 여기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한 세대 전에는 어떻게 예측됐을까. 1994년 <타임>지는 상거래를 하도록 설계되지 않았고 새로 유입되는 이들을 우대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인터넷이 결코 ‘주류’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스위크>지는 한술 더 떴다. 1995년 2월의 한 기사에서 온라인 쇼핑과 온라인 공동체가 상식에 반하는 비현실적인 환상이라고 하면서 ‘그 어떤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도 당신이 보는 신문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1991년까지 인터넷에서는 영리사업은 엄격히 금지돼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쳇말로 ‘어이 상실’ 수준이다. 이처럼 디지털 신의 강림은 共進化(coevolution) 형태로 사회 구성요소에 골고루 영향을 끼쳐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 미래인데,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청림출판, 2017)라는 책이 하나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와이어드>의 공동 창간자이며, 『기술의 충격』, 『통제 불능』 등을 집필해 기술사상가로 불리는 케빈 켈리(Kevin Kelly)의 신작이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올 것인가. 이 책에서 켈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특정한 제품이 성공할 것인가를 예측하지는 않는다. 단지 앞으로 30년 동안 나올 상품과 용역의 일반적인 추세를 볼 뿐이다.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기술체계 12가지를 제시한다. 즉 ‘되어가다, 인지화하다, 흐르다, 화면 보다, 접근하다, 공유하다, 걸러내다, 뒤섞다, 상호작용하다, 추적하다, 질문하다, 시작하다’라는 이 동사들은 서로 의존하고 서로를 가속화하는 힘으로 함께 움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유하다’의 증가는 ‘흐르다’의 증가를 부추기고, ‘인지화’하기 위해서는 ‘추적하다’가 필요한 것처럼, ‘화면(을) 보다’는 ‘상호작용하다’와 뗄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상품들이 바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신발은 완성품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재질이나 색상을 교체할 수 있는 덮개, 디딜 때 모양이 바뀌는 밑창 등 발의 확장된 일부로서 끊임없이 변형되는 ‘과정품’이 된다. ‘신발 제조’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서의 ‘서비스’가 된다. 무형의 디지털 세계에서는 정적이거나 고정된 것은 없고, 모든 것이 가변적이 된다는 것이다.
 
교육매체이기도 한 책은 어떻게 될까. 크고 두꺼운 종이책은 고착된 매체로서 안정성의 정수다. 책장에서 움직이지도 변하지도 않은 채 수천 년을 갈 수도 있다. 애서가이자 비평가인 닉 카(Nick Carr)는 책이 고착성을 구현하는 방식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펼칠 때마다 같은 모습이므로, 그 쪽을 참조하거나 인용할 수 있게 하는 판면의 고착성, 어디서 사든 같은 내용일 것이라고 확신하게 하는 판본의 고착성, 잘 관리를 하면 디지털 형태보다 보관성이 나으며 적힌 내용은 변하지 않는 대상의 고착성, 완성되고 종결되었다는 느낌을 주게 하는 완결의 고착성.

이것이 전자책으로 되면서 네 가지의 유동성을 갖게 됐다. 텍스트는 안경알에 띄우는 작은 화면에서부터 벽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에 맞게 흐르게 됐고(판면의 유동성), 필요한 내용을 추가·삭제하는 등 내용을 개인화할 수 있으며(판본의 유동성), 저비용으로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고 사실상 무료인 도서관에 저장돼 누구든 언제 어디에서든지 접근할 수 있으며(그릇의 유동성), 책 내용은 업데이트될 수 있다(성장의 유동성).

인터넷은 세계에서 가장 큰 복사기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경제는 자유롭게 흐르는 복제물의 강에 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복사본의 수가 아니라 그 사본을 연결하고 조작하고 주석을 달고 태그를 붙이고 강조하고 북마크를 하고 번역하고 다른 매체에 옮길 수 있는 방법의 수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의 가치는 사본 자체에서 작품을 다시 보고 개인화하고 진본임을 입증하고 화면에 띄우고 표시하고 옮기고 이용할 수 있는 쪽으로 옮겨 간 것이다. 이제 콘텐츠를 얼마나 잘 흐르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케빈 켈리가 위의 책 서문 제목을 ‘결말을 알 수 없는 미래로의 초대’라고 쓴 것처럼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다. 그러나 맥락적으로 볼 때 장소적·시간적으로 고착 형태이며 독점 공급 체계로 되어 있는 대학 교육 콘텐츠에 어떤 방식으로 유동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시점이다. 이미 디지털 체제에서 강의나 교재를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는 일부 선도 대학들의 결과가 기다려진다.

 

김정규 한국방송대 출판문화원,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