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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실한 모양만큼 영양분도 풍성하구나
포실한 모양만큼 영양분도 풍성하구나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7.02.1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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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73. 모과

모과(木瓜, 나무木 오이瓜)는 ‘나무에 달린 참외’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 시골에서는 모개, 한방에서 木瓜 또는 木果로 쓰기도 한다. 그런데 木瓜를 목과로 읽지 않고 모과로 읽는 것은 동일한 한자어가 어떤 때는 本音으로 나고, 또 어떤 경우에는 俗音으로 날 때, 속음이 익숙할 적에는 속음으로 적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木’의 경우 본음은 ‘목’이지만 ‘木瓜’의 경우엔 속음인 ‘모’가 많은 사람들에게 더 익숙해 ‘모과’로 적는다. ‘六月’을 ‘육월’로 읽지 않고 ‘유월’로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했던가. 얼굴이 울퉁불퉁하게 못 생긴 사람을 놓고 “모과 같다” 한다. 그리고 시큼 떨떠름한 맛에다가 생김새도 제멋대로이니 “과일 망신은 모과가 다 시킨다”는 말이 나올만하다. 그러나 그야말로 못생겼지만 일품향기는 여느 과일에 비길 바 없이 은은하고 풋풋하다.

모과(Chinese quince)는 채치거나 납작납작 썰어 설탕에 재었다가 뜨거운 물에 타 마시는 모과차를 만들고, 썰어 말린 것에 소주를 붓고 설탕을 넣어 모과 술을 담거나 약재로 쓴다. 그밖에 모과숙·모과정과·모과편·모과죽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지난 어느 날 엄마는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과 술이 남자 정력을 좀먹는다 하여 며느리가 담아둔 푹 묵은 술을 몽땅 쏟아버리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모과(Chaenomeles sinensis)는 장미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나무높이는 5~10m나 되고, 야물고 매끈한 회갈색 나무껍질(樹皮)은 조각조각으로 벗겨져서 구름무늬(雲紋狀)를 띤다. 중국원산인데 학명의 종소명 sinensis는 중국이란 뜻이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에 분포하고, 한국과 중국에서는 木瓜, 일본에서는 花梨라 부른다. 역시 동아시아가 원산지면서 모과와 같은 속인 자생종 명자나무(산당화, C.japonica)도 모과를 쏙 빼닮은 주먹만 한 열매가 달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중부 이남의 화단, 정원에 관상·분재·약용으로 심는데 서울만 해도 겨울엔 밑동을 짚으로 두툼하게 싸매줘야 월동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듬직한 모과나무는 경남 의령의 郭再祐 장군을 기리는 忠翊司에 있으며 그 수령이 적어도 280년이 됐을 것으로 본다.

잎은 어긋나며 난형으로 길이 6~12cm, 너비 3~6cm이고, 잎 양끝은 좁으며, 가장자리에 뾰족한 잔 톱니(鋸齒)가 있고, 앞면에 광택이 난다. 잎 표면에는 털이 없으나 어릴 때는 뒷면에 빼곡히 털이 난다.

꽃은 5월경에 활짝 피고, 지름 2.5~3.0cm인 꽃잎은 5개로 연분홍색이며, 가지 끝에 1개씩 달린다. 꽃잎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倒卵形)이고, 끝이 오목하게 들어간다. 암술은 3~5개이고, 암술머리는 다섯 갈래로 갈라지며. 수술은 20개 남짓으로 길이는 꽃잎의 절반정도다.

풋열매는 푸르스름하다가 무르익으면서 싯누렇게 되며, 배와 비슷하나 겉이 언틀먼틀하고, 몸피는 반구형이고, 길이 4~8cm, 너비 3.5~5cm, 두께 2~3.5cm다. 모과는 하도 木質이 발달하여 여간 딱딱한지라 조매(좀처럼) 이빨도 안 들어간다. 농익으며 향이 뛰어나지만 맛은 시고 떫으며, 껍질이 하도 단단해 날로 먹기는 어렵다.

갓 딴 과실표면에는 끈끈한 芳香油(精油)성분이 잔뜩 묻어있어 만지기가 께름칙할 정도지만 이것이 향미와 약효를 더해 준다. 아무튼 모과는 43가지나 되는 향기물질이 어우러진 독특한 향 때문에 파치도 버리지 않고 바구니에 담아 방안이나 자동차에 놓아둔다.

모과는 알칼리성식품으로서 당분(과당)·칼슘·칼륨·철분·비타민C가 많고, 타닌(tannin)성분이 있어 텁지근한 떫은맛이 나며, 사과산·시트르산 등의 유기산 탓에 신맛이 난다. 그리고 소화효소분비를 북돋아 소화기능을 좋게 하고, 물질대사를 도와 숙취를 풀어주며, 특히 가래를 삭여주고 기침을 멎게 하기에 한방에서는 감기나 기관지염·폐렴 등에 쓴다. 요새 와서는 항산화(antioxidant), 항바이러스(antiviral)물질이 한가득 들었다는 것이 새로 알려졌다 한다.

목재는 재질이 붉고 치밀하면서도 반질반질한 것이 매끄럽고 아름다워 예부터 고급 장롱(樺榴欌)을 만들 때 꼭 쓰였다한다. 또한 조선시대의 민속목기가 주로 모과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단단하면서도 만들기가 손쉽기 때문이라 한다.

모과나무는 이렇게 과실과 목재도 좋지만 꽃과 수피의 고움도 빼놓을 수 없다. 가냘픈 연분홍색 꽃의 아름다움과 얼룩얼룩하고 매끄러운 줄기에 군데군데 불룩불룩 튀어나온 혹 또한 독특하다. 또 넓은 공원이나 뜰 안에 치벋은 가지마다 주렁주렁 샛노랗게 매달려 있는 포실하고 흐벅진 모과에서 가을의 풍요로움을 한껏 느낀다. 그리고 익은 과일에서 새까만 씨앗을 발라내어 한데 묻었다가 봄에 뿌리면 고스란히 싹이 튼다.

모과열매나 나무줄기가 돌처럼 몹시 딱딱한 것은 세포막이 아주 두꺼운 과육세포인 石細胞(stone cell) 때문이다. 배(pear)를 먹으면 이(齒)사이에 꼭꼭 씹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돌세포이고, 매화나 복숭아 등의 종자껍질도 거의 전부가 석세포로 되어 있어 그렇게 된통 야물다. 배를 먹으면 이까지 하얗게 닦아진다고 “배 먹고 배 속으로 이를 닦는다”고 하는데 이 또한 돌세포가 치약 연마제의 몫을 한 것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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