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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 텍스트' 확정 작업, 조속히 이뤄지길 기대한다
'결정판 텍스트' 확정 작업, 조속히 이뤄지길 기대한다
  • 이상옥 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17.02.1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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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865호 ‘이효석전집’ 기사를 읽고

<교수신문> 865호에 실린 「‘정본 전집’ 지향한 기획 … 交感은 있지만 校勘은 글쎄?」기사를 읽고 전집 교감편집 책임자 이상옥 서울대 명예교수가 글을 보내왔습니다. 근대작가의 전집 작업은 근대문화유산의 확보와 전승이란 문화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집 작업은 학계나 출판사 어디에서도 쉽게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 명예교수의 이 서간문 형식의 글은 정본 전집 작업의 확산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읽힙니다. 이번 이효석전집을 어떤 측면에서 구성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정리한 이 명예교수의 글을 그대로 게재합니다.

 

중요 문예작품의 정본 편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환기하는 일이 시급한 것은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근대 문헌의 교감 작업은 나날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작업 도중에 절감한 바입니다만, 저의 세대 사람들과 오늘날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는 각각의 교육적 배경에 따른 엄청난 학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나라에서 결정판 텍스트를 확정하는 작업이 조속한 시일 내에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2017년 1월 23일자 <교수신문>에 개재된 『이효석전집』 관련 기사와 평설을 잘 읽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전집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시고 자상한 평설을 해 주셔서 뭐라 감사 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효석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약 40년 전의 일입니다만 처음부터 저는 당시의 이효석 텍스트가 연구용으로는 너무 부실하다는 점을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구미의 학자들이 문학 작품이나 작가 연구에 앞서서 서지 목록과 작품 텍스트부터 우선적으로 챙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된 작가·시대별 서지목록과 결정판 텍스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조속히 높아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2011년에 제가 이우현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이 선생은 이효석문학재단의 창립을 염두에 두고 몇 가지 사업 구상을 밝혔는데 그 자리에서 저는 다른 어떤 사업보다도 전집의 간행이 시급함을 강조했습니다. 이 선생께서는 즉석에서 제 의견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계기가 돼 저는 재단 일에 관여하게 됐습니다.

2012년 9월 재단이 창립되면서 전집 편찬 작업이 시작되자 이내 이른바 ‘정본’(正本/定本) 텍스트를 확정하기 위한 작업 기준을 만드는 일이 논의됐습니다. 우선, 전집의 독자로 전문 연구자와 일반 독자 중의 어느 쪽을 대상으로 삼느냐 하는 문제가 논의됐습니다. 우리는 토의 끝에 일반 독서 대중을 상대로 하되 문학비평가들이 활용하기에도 적합한 텍스트로 전집을 간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학사나 석사과정 수준의 학생들이 이용하는 데에도 별로 손색이 없을 만한 텍스트를 만들어 내자고 했습니다. 한편 박사과정 등 고급 수준의 연구자들은 어차피 텍스트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깊이 있게 참조해야 할 것이므로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을 철저히 수합해 앞으로 구축될 재단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로 올려 둠으로써 누구나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결정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논의된 것은 정본 작업이 무엇보다 작가가 의도했던 ‘원본’을 찾는 일이라는 전제 아래 그 원본을 어떻게 찾아서 확정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작가의 초판본과 작가 자신에 의한 후속본이 있을 경우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1910년대에서 1940년대에 이르는 일제 강점기에는 국한문 혼용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의 맞춤법마저 확정돼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의 출판 인쇄 사정 또한 아주 열악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조해야 했던 텍스트 중의 많은 대목은 더러 고뇌어린 검색을 통해서야 겨우 ‘원본’을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사투리는 되도록 존중하고 많은 생소한 의태어, 의성어 및 특이한 어휘들도 작가 고유의 취향으로 여기며 가급적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를 존중하고 또 어디까지를 바로잡느냐 하는 문제가 수시로 대두했으므로 이 점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기사에서 언급된 『박인환 전집』같은 그런 유의 전집은 처음부터 목표로 삼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철저한 전문 서지목록이나 ‘이본대조표’ 등은 작성할 의도가 없었고 또 그럴 능력 및 시간도 없었습니다. 혹여 그런 시도를 할 경우에는 전집의 분량이 폭주할 것이고 이효석전집 같은 비교적 부피 있는 전집의 경우에는 엄청난 경비가 추가로 소요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출판의 어려움까지도 겪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쉽게 엄두내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행 어문규정을 최대한 존중하고 작가 고유의 어법도 되도록 존중하자는 방침은 일관성 있게 지키면서 최선의 반듯한 텍스트를 확정하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끄럽습니다만, 제가 권두의 간행사에서 원용한 ‘교감’이라는 용어는 그 원래의 엄정한 의미에서 벗어난 채 꽤 느슨하게 쓰였음을 인정합니다.

또, 저는 간행사에서 “이번 전집의 출간이 우리나라 학계에서 이른바 ‘결정판 정본 전집’ 간행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바란다고 했는데 이 말도 따지고 보면 아주 주제넘은 소리로 들릴 수 있겠습니다. ‘결정판 정본’이란 용어에서 ‘결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두고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작가가 원래 의도한 것과 같거나 가장 가까우면서도 여러 가지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힌 텍스트를 의미한다고 아주 나이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이효석전집』이 그런 결정판의 한 본보기이므로 앞으로는 이를 기준 삼아 결정판 텍스트들이 편찬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위와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기사에서 지적한 대로 엄밀한 교감을 거친 결정판 텍스트 작업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 국문학계의 관심이나 학술연구 단체의 지원이 바람직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생각해서, 앞으로 이 방면의 관심과 지원을 촉발해 보자는 뜻은 없잖아 있었습니다.

중요 문예작품의 정본 편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환기하는 일이 시급한 것은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근대 문헌의 교감 작업은 나날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작업 도중에 절감한 바입니다만, 저의 세대 사람들과 오늘날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는 각각의 교육적 배경에 따른 엄청난 학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효석의 경우에도 작품 속에 나오는 많은 어휘나 시대적 상황이 저 같은 구세대 사람에게는 쉽게 이해되는데도 젊은 세대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듯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세대가 바뀔수록 쉽게 교감될 수 있는 텍스트조차 점점 더 교감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나라에서 결정판 텍스트를 확정하는 작업이 조속한 시일 내에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저는 기사에 실린 고견과 충언을 고스란히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어느 한 대목도 반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번 『이효석전집』의 편찬 작업이 기사에서 언급된 그런 높은 수준의 전문적 교감의 경지까지는 처음부터 넘보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서없는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2017년 1월 30일).

이상옥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

필자는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효석문학재단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조셉 콘라드 연구』, 『이효석의 삶과 문학』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암흑의 핵심』, 『굴뚝청소부 예찬』 등이 있다. 『가을 봄 여름 없이』,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등의 산문집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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