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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호 새로나온책
865호 새로나온책
  • 교수신문
  • 승인 2017.01.2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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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레이건과 대처의 후계자들)은 은행가, 기업인, 굽실대는 언론계 인사, 휘하 보좌관과 다양한 유형의 아첨꾼들만 출입할 수 있는 폐쇄적인 벙커에 은신해 있다. 그들은 절반은 현실이고 절반은 가상인 돈, 통계, 포커스 그룹의 세계에 산다. (……) 권력을 쥐고 있을 때 그들은 진지한 비판을 전부 반역으로 취급하는 편집증적 경향을 보이고, 스스로 유명인인 양 행세하며 대접받는 홍보 전문가들에게 점점 더 의존한다. 정치적 차이가 축소된 탓에 권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거나 퇴임 후 벌이가 쏠쏠한 고문 자리를 얻고 돈을 긁어모을 수단이 된다. 오늘날 권력과 돈의 공생은 세계 어디서든 믿을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내가 유럽 및 북아메리카 주류 정치에 이름 붙인 ‘극단적 중도파(extreme centre)’는 바로 이렇게 체제에 봉사하면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겁 많고 고분고분한 정치인들을 뜻한다.”
―타리크 알리 <뉴레프트리뷰> 편집위원, 『극단적 중도파: 세계 정치에 내린 경계경보』 (장석준 옮김, 오월의봄, 2017.1) 중에서]

■ 역관상언등록 연구, 이현주 지음, 글항아리, 468쪽, 25,000원

이 책은 1637~1692년 사이에 ‘역관들의 상언’이라는 단일 주제로 묶인 문건들을 기록한 등록물이다. 17세기 조선의 문서 행정 처리과정, 당시 동아시아의 정세와 이에 대한 조선의 대응 방식, 그리고 역관들의 인사이동 및 처우 개선과 양성 대책, 기타 무역에 관한 결정 등이 담겨 있다. 대체로 지방 수령들이 중앙정부에 올린 장계, 첩정과 역관들이 올린 상언을 근거로 삼아 예조에서 啓目을 작성하고 국왕께 올려 재가를 받았던 문건들이다. 예조의 계목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인용된 원문서들의 형식과 내용은 다양하다. 17세기 역관들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사료 가치가 매우 높다. 「역관상언등록」을 현대어로 번역한 이 책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표기법의 하나인 이두에 관한 설명과 문건이 작성된 배경, 당시 대외 정세 등에 대한 해설도 담겨 있어,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 단초가 될 1차 사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 종이: 하얀 마법 종이의 시대, 로타어 뮐러 지음, 박병화 옮김, 알마, 448쪽, 22,000원

종이는 나무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이 관계는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여러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다만 이는 비교적 최근인 19세기 후반부터 적용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종이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이 책은 고대부터 중세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종이의 역사를 상세하게 추적한다. 중국에서 유래한 종이가 아랍 문화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고, 13세기 이후 유럽에서 일상에 뿌리 내리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제시된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단순한 제지술의 역사를 넘어 그것이 당대의 사회문화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까지 두루 살핀다는 것이다. 예컨대 17세기에 종이는 우편제도와 결합해 서신 왕래를 자극했고, 이는 학자들 간의 서신 교류로 이어져 학술 발달을 촉진했다. 품질이 조악한 값싼 종이의 발명은 근대적인 신문이 우후죽순 생기도록 유도했고, 다양한 문화적 현상들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됐다.

■ 지각체계로 본 감각, 제임스 J. 깁슨 지음, 박형생·오생주·박창호 옮김, 아카넷, 580쪽, 33,000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세상을 의식하는 것, 즉 지각하는 것은 감각기관에 부과된 자극에 따른 감각 자료들에 심리적 작용이 가해진 결과라는 간접 지각이론을 폐기해야 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고래로부터 지속돼 온 이 정설에 대한 저자의 대안은 직접 지각이론이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 유기체는 환경에 대한 정보를 감각기관과 신경계를 통해 전환, 변환, 생성을 통해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포착한다는 주장이다. 지각이라는 의식 현상은 신경계, 특히 ‘뇌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활동이 아니라, 인간-환경, 동물-환경, 유기체-환경이라는 ‘생태계에서’ 출현하는 현상이라는 생각이다. 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묻지 말고, 뇌가 있는 머리, 그리고 신체 전체가 어디에 있으며 무얼 하는지를 물으라는 말이다. 가히 혁명적이랄 수 있는 이 견해는 학문 전반에 새로운 지평을 설정한다.

■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노엄 촘스키 지음, 구미화 옮김, 조숙환 감수, 와이즈베리, 248쪽, 14,000원

현대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창시자이자 열렬한 사회 비평가로서 지난 50년간의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에 관한 자신의 핵심 철학을 정리하고 논쟁점을 광범위하게 비평한 ‘촘스키 인간론’의 정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처음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정립했던 1950년대 이후 거둔 인지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언어 연구가 어떻게 과학적으로 발전했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언어의 사회적 측면과 의사소통, 지시와 관련된 측면을 강조하는 여러 가지 다른 이론을 설명하고 비평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론 언어학, 인지과학, 과학철학, 과학사, 진화생물학, 형이상학, 지식 이론, 언어철학, 도덕 · 정치철학, 이상적인 교육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우리 인간이 어떠한 존재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사회, 정치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설명하면서 언어 과학자로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함축적 의미를 전한다.

■ 학문의 고고학, 이행훈 지음, 소명출판, 403쪽, 28,000원

한림대 한림과학원 개념소통 연구시리즈. 서양 철학이 근대 전통 ‘유교’ 사회 속에 어떤 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발화했는지 한국 근대 철학의 수용 및 형성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탐색한다. 제1부 전통학문의 굴절과 새로운 지식체계의 태동에선 근대 한국에서 ‘철학’이라는 개념이 실재의 형상 또는 학문으로 사용되기까지의 과정을 엿보고 전통 지식체계의 변동 양상을 고찰한다. 제2부 ‘철학’ 개념의 수용과 지식체계의 탈구축에선 의미 있는 자료들을 통해 ‘철학’이라는 개념의 수용은 전통 지식 체계의 학문이 근대적 학문으로 재배치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며, 마지막으로 제3부에선 조선의 학술 문화와 사회 정치의 근간이었던 유교가 근대 전환 과정 속 의미 균열을 겪고 변하는 전통 개념의 의미론 변용에 주목한다. 이 책은 근대 ‘전통 개념’과 ‘서구에서 유래한 개념’, ‘신종교’의 충돌 등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근대 철학에 사유 지평을 확장시켜준다.

■ 한국 과학기술 혁명의 구조, 김근배 지음, 들녘, 360쪽, 30,000원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7권. 서구 과학기술발전의 내적 동력에 대해 통찰력과 독창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이론은 더러 있으나 이를 성공한 후발국, 즉 한국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기는 어렵다. 한편, 역행적 엔지니어링론, 즉 선진국에서 도입한 제품 및 공정을 통해 기술 학습을 하고 그에 따라 과학의 수요가 발생한다는 논의 또한 초기 발전단계에의 치중, 일부 기술에 한정된 서술, 역동성에 대한 설명 부족 등의 문제로 인해 온전한 이해를 담아내기에는 한계를 지닌다. 한국 과학기술의 현상은 눈부신 도약이라는 결과는 존재하되 그 결정적 요인은 도무지 감지되지 않는 패러독스로 지칭된다. 그간 여러 사례 연구를 통해 그 일면들이 드러나고는 있으나, 전체상을 일관되고 체계 있게 해명하기는 어렵다. 한국 과학기술혁명의 구조를 되도록 단순화시켜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거시적 구도에서 과학기술 순환 사이클의 다면적 측면을 ‘제도-실행 도약론’이라는 도전적이고 시론적인 이론으로 설명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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