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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差 또는 視差의 문법…빛이 작렬하기 직전의 텍스트들
時差 또는 視差의 문법…빛이 작렬하기 직전의 텍스트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2.28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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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겨울 계간지 읽기
그러니까 계간지에는 時差·視差가 깊을 수밖에 없다. 매력이면서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다. 가을에서 겨울에 이르는 시간, 광화문에서부터 제주까지 촛불이 밝힌 그 불빛 때문에 시차는 더욱 크고 깊다.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사랑의 촛불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파도쳐나가리란 것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겨울 계간지 가운데 그나마 이 촛불에 근접한 쪽은 <오늘의문예비평> 103호와 <황해문화> 93호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늘의문예비평>은 가장 뒤늦게 출간 소식을 내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전히 어떤 예감에서 사태를 직감하거나 감지하고 촉을 발휘한 측은 <황해문화>일 테지만, 이들의 접근 역시 직접적인 연결점은 조금 약하다. 빛이 작렬하기 직전 타올랐던 각자의 고민과 그 순도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치와 일상이 타오르는 촛불의 시대에’라고 운을 뗀 <오늘의문예비평>은 특집으로 「동아시아 안보의 ‘숨은 신’」을내놨다. 이들은, 촛불이 점화한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에 기획되고 들불처럼 번져가는 시민집회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직’알 수 없는 시점에 마무리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 특집은 “증상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기에 이 사태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을 근거지로 사유 한다는 것

전성욱은 「근거지로서의 중국」에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와 관련된 사태를 한국의 오래된 ‘감정의 정치’와 관련해 조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근거지’란 공간적 지시라기보다 철학적 범주이며, 관습적인 인식에 저항하는 항전의 주체를 형성하는 장소라는 의미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국을 사유의 근거지로 삼는다면 현재 동아시아 상황을 ‘미국의존주의’, ‘한반도 중심주의’, ‘북한 위협론’, ‘일본 적대론’을 넘어 하나의 아포리아로 인식할 수 있는 인식론적 도약을 이룰 수 있다는 게 전성욱의 주장이다.
 
이런 생각의 진지들은 특집에 함께 묶인 두 글, 「안보 이데올로기와 동아시아 희생의 시스템」(이명원), 「평화를 거부하는 평화」(김동원)에서도 발견된다. 이명원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전개되고 있는 군사적 안전보장의 흐름들이 개별 국가의 안보 문제에 기인한다기보다 미국의 헤게모니 이행기의 세계체제 변혁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시각에서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양상들과 일본에서 벌어진 일들을 비교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의 사태 속에서 희생 시스템이 저항 시스템으로 전화할 가능성을 읽어냈다는 것이다. 한편, 김동원은 안보의 논리 속에 희생된 마을‘강정’에서 몸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제주도라는 평화의 섬에서 벌어진 폭력을 생생히 전달했다. 평화 아닌 군사적 요충지가 돼버린 땅에서 고스란히 그 부담과 고충을 안고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경청할 만하다.
 
권두언으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를 실은 <황해문화>는 특집 「정당에게 ‘성장’을 묻다」라는 도발적 주제를 던졌다. 이것은 경제 현실에 대한 고민이기도 한데, ‘경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예민한 문제의식을 견지해왔던 <황해문화>다운 접근이랄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추문과 헌정파괴가 전제됐다면 확실히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겠지만, 큰 틀에서 봐도 이들의 시선은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성장지상주의를 넘어 포용의 경제로」(이정우), 「새누리당의 경제성장전략에 관한 소고」(윤창현), 「더불어성장이 빠른 성장의 길」(홍종학), 「한국 경제 위기에 대한 국민의당의 해법: 공정성장」(채이배), 「‘정의로운 경제’는 실현가능한가」(정태인), 「먼저 지옥문을 닫고, ‘성장 너머 행복의 나라’로 가자!」(홍태희) 등 여섯 편의 글을 모았다. 총론 하나에 각론으로 정당별 질문을 제기한 셈이다.
 
그러나 거칠게 말한다면, 도발적 질문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떻게 보면 답이 예상되는 물음이기도 했다. 일자리 창출(새누리당), 포용적 성장(더불어민주당), 국민성장(국민의당), 소득주도성장전략·정의선진복지전략(정의당), 모든 경제성장은 다른 가치의 파괴를 동반한다!(녹색당)라는 대답이 그렇게 읽힌다. 질문은 시의적절 했고, 의도는 좋았지만, 재확인에 그친 맥빠진 느낌이다. <황해문화>는 이보다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특별한 글-소설가 김성동의 신작중편소설과 역사학자 전갑생 선생이 소개하는 포토에세이가 깊은 울림을 남기는 것으로 읽힌다.
 
세계사적으로 이슈가 되는 것은 ‘난민’문제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과학>이 특집 「난민과 이웃」을 기획한 것은 충분히 돋보인다. 위기 국면으로 치닫는 유럽의 정치 상황에 이 ‘난민’문제가 겹쳐있음은 주지의 사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5년 말 현재 2천13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한국적 상황에 비춰볼 때, 난민은 민족국가의 형성과 민족국가의위기라는 근대성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난민’에 대해 완고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2012년 난민법이 제정됐고, 2013년 7월 1일 난민법을 시행하고 있다. 난민법에 의하면,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로 박해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있는 공포로 인해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않는자”를 난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1994년 이후 난민 신청자는 1만1천172명이었지만 2014년까지 난민 인정률은 5%로 지극히 낮다. 국민국가의 강고한 틀이 작동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문화과학측은 “난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제기하며, 국민국가와 국경의 경계, 그리고 현대성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이 문제들이 인간 생명권과 관계있고, 근대적 국민국가의 현재 상태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균열을 증명하는 실제 위기 상태라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여섯 편의 서로 다른 글들이 실렸다.
 
「난민의 세계화 현대성의 파국」(오창은), 「한국사회와 난민: 난민과 환대의 책임」(박경태), 「난민을 관리하는 정치 또는 난민에 의한 ‘난민정치’」(서영표), 「저주받은 자들의 귀환」(정지혜), 「청년이라는 난민」(김상민),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고통스럽다: 동아시아 대도시의 맥도날드 난민들」(송은영)이다. 이들 특집글에 이어 기획 「사회적 재난 이후 동아시아 청년 문화의 새로운 흐름」도 일련의 연속성을 보이는 글들인데, 「사회적 재난 혹은 문화적 技術로서의 ‘음란물’: 미디어 고고학」(장거하오), 「재난 시대, 청년 세대의 문화정치」(정원옥)이 그렇다.
 
문단 내 성폭력을 보는 시선

「특별좌담: 어떻게 할 것인가—문단 내 성폭력과 한국의 남성성」을 특집으로 내세운 <문학동네>는 한국 문단의 은밀하면서도 질긴 추문과 맞서는 데 무게를 실었다. 강지희, 김신형경, 오찬호, 정세랑, 문강형준 등이 참여한 이 좌담은 이후 관련 주제를 파고들 때 하나의 좌표처럼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문학출판계를 이루는 다양한 집단에서, 스스로에게 맞는 내규를 각자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될 것”(정세랑)라는 지적에서부터, 익명의 트위터를 통한 내부 고발의 가능성에 의미를 두거나(강지희), 좌담과 같은 토론을 거쳐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어떤 식의 규약을 만들어내자(김신형경)는 제안도 이어졌다.
 
<창작과비평>은 「리얼리티 탐구의 문학적 형식들」을 특집으로 내걸었다. <창작과비평>이 ‘리얼리티’에 강박을 보일 정도로 매달려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럼에도 ‘다시’ 리얼리티로 회귀하는 것은, 현실주의의 어떤 긴장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특집에는 「분열하는 감각 너머의 리얼리티」(송종원), 「육체성의 형식과 리얼리티」(정주아), 「‘87년체제’를 애도하다」(유희석), 「우리 시대 한국문학의 두 촉: 한강과 권여선」(최원식) 들이 실렸다. 직접 들어보자. “시인·작가들의 작품을 ‘리얼리티 탐구의 문학적 형식들’이라는 주제 아래 집중 검토한다. 무엇이 더 ‘리얼’한가를 묻고 답하는 문학적 고투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저마다의 문학적 형식들은 그 다양함과 깊이로 관행화된 비관주의를 무색케 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관행화된 비관주의를 무색하게 한다’는 대목이다. <창작과비평>은 ‘리얼리티의 탐구’가 한국문학에 깊이 관행화된, 반복되고 있는 어떤 비관주의를 떨쳐낸다고 본 것이다. 이외 <창작과비평>의 ‘대화’ 연속기획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한다」의 마지막회로 재벌 문제를 진단했다. 송원근, 신학림, 이원재, 이일영 등이 참여했다.
 
<역사비평>은 「2016 대통령 선거와 미국사회」를 특집으로, 그리고 연속기획으로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③세도정치기의 이질적 시공간」,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비판③」등을 선보였다. 특집보다는 이 두 연속기획이 무게감 있게 읽힐 듯하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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