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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894!
응답하라 1894!
  • 안재원 서울대인문학연구원·서양고전문헌학
  • 승인 2016.12.2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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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안재원 서울대인문학연구원·서양고전문헌학
▲ 안재원 연구원

1894년! 그 유명한 갑오년으로. 동학운동이 일어나고 청일전쟁이 벌어졌으며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지정학적 구조가 결정된 바로 그 해다. 그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그 이후로 큰 변화가 없었다. 물론, 당장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역학 구도가 구조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4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이제는 ‘할 말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촛불동력을 통해서 마련됐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남북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북한에게는 이런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군사적 도발을 통한 관심받기 시도를 중단하라고. 북한이 군사적 도발과 실험을 하면 미국이 이를 빌미삼아 그만큼 더 서해로 밀고 올라오게 되고, 그러면 이에 따라 중국의 반발도 그만큼 세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한반도 서해 지역의 군사적인 긴장은 단지 국지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전쟁으로 직결되기에.

미국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G2사이에 있는 긴장의 전선이 서해를 중심으로 형성되게 되면 세계 평화의 완충지대가 없어진다고,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매우 위협적인 변수가 된다고. 물론, 단기적으로는 무기를 조금 팔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근거하고 내세우고 있는 세계 패권의 보편적 논리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이렇다. 바위(주먹)를 내면 보를 내야 하는데, 주먹을 낸다고 곧바로 이쪽도 주먹을 내는 형국이다. 그래서 미국에게 요청해야 한다. 중국이 주먹을 내면 미국은 보를 내야 한다고. 그 보는 바다 위에 떠 있는 항공모함이나 사드와 같은 주먹이 아니다. 그것은 실은 미국이 지금껏 내세운 보편 논리인 민주주의, 인권, 자유이다. 인류의 기본 가치이자 보편가치들이다. 힘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이 힘이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보일 것이다. 중국을 이기는 보는 광화문에서 빛나는 ‘촛불’이다. 즉 민주주의다.

중국에게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주먹을 이기려면 중국은 보를 내야 한다고. 그 보란  아마도 장구한 역사에 기반한 문명의 힘이다. 미국의 자극이 눈에 거슬린다고  주먹을 낸다면, 중국은 미국과 똑같은 잘못에 빠질 것이다. 세계의 지성과 교양을 가진 세계 시민들이 인정할 만한 보편의 가치와 논리를 바탕으로 전략적인 주먹을 제시해야 한다. 동양 문명이 관용과 배려의 원리 위에서 작동하는 것을 알리는 기회와 계기를 세계의 지성에게 제공하는 것이 중국다운 것이다.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자들과 무기상들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 문명과 역사의 힘을 바탕으로 융통성 있게 대응하는 유연함이 바로 중국다움일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일본에게도 말해야 한다. 현재 아베가 취하는 주먹도 일본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중국이 조금 세게 나오면, 그 피해는 일본 경제로 이어질 것이기에. 따라서 일본은 경제적으로 흥했을 때의 논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는? ‘눈치공화국’을 이제는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구한말과 다르기에. 일단 高宗 한 사람에 불과했던 주권자가 지금은 5천만으로 늘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미국, 중국, 일본,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눈치공화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각설하고, 주먹에게는 보를, 보에게는 가위를, 가위에게는 주먹을 내야 하는데, 우리의 주먹은 무엇일까? 결론은 민주주의다. 일본이 경제를 통해서 세계무대를 누볐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서 세계 정치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가장 비싸게 팔 수 있고 가장 오랫동안 팔 수 있는 상품이 바로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이고, 우리의 민주주의일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세계에 적어도 동북아 지역에 정치 상품으로 내놓아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이게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증거는 갑오년 이후의 우리의 역사다. 3·1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1987년 대투쟁을 계승한 광화문의 촛불의 빛에 의해서 밝혀진 민주공화국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응답하라 1894”에 대한 응답이다. 이런 의미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울려퍼진 국민의 명령은 준엄하고 담대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것은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요구를 넘어서 있다.

안재원 서울대인문학연구원·서양고전문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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