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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에 교수들 연루… “이제는 침묵깨고 나와야”
국정농단에 교수들 연루… “이제는 침묵깨고 나와야”
  • 김홍근 기자
  • 승인 2016.12.24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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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책 대격변 속 교수사회 ‘自省’ 고개든다
▲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길에 전국에서 온 교수 1천여명이 집결했다. 이들은“정부의 일방적 대학구조조정을 중단하고 대학 공공성을 확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최성욱기자
지난 15일 열린 최순실 게이트 4차 청문회 증인명단에는 유난히 전·현직 교수가 많았다. 이화여대 사태 관련 청문회였기도 했지만, 교직 생활을 하다 정계로 입문한 정부 측 인사들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올 한 해, 교수들이 불미스러운 사건·사고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건 비단 이화여대 사태만이 아니다. ‘옥시교수’부터 ‘인분교수’까지 교수 스스로 불명예를 자초하면서 불리워진 별칭도 다양하다. 여기에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정책이 맞물리면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던 교수의 위상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교수사회 곳곳에서 “우리(교수)가 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어 주목된다. 대학의 자율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지성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그저 침묵하는 일원에 불과했던 데 대한 반성이다.
 
한국대학학회는 지난 1일 <대학: 담론과 쟁점> 2호를 발간하며 ‘교수, 개혁의 대상인가 주체인가’라는 특집을 기획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에서도 9일 개최한 정책포럼에서 대학과 교수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조명했다. 이들은 교수들이 본분에 따른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에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대학학회 편집인을 맡고 있는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는 <대학: 담론과 쟁점>에서 ‘편집자의 말’을 통해, 교수집단의 진정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번 특집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번 이대사태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교수가 아닌 ‘학생과 시민’이었다면서, 대학을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가장 큰 책임의 당사자인 교수집단이 바뀌어야한다는 지적이다. 사회적으로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던 교수들이, 어쩌다 스스로 반성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을까.
 
‘생존’ 위해 침묵한다는 교수들
 
학계 일부에선 오늘날 대학과 교수가 ‘침묵’으로 일관하게 된 이유를 ‘신자유주의 원리’로 설명한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발발한 세계 경제 위기가 교육 예산의 삭감으로 이어졌고, 대학 운영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대학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 경영 전략을 대학에 도입하고, 이것은 곧 대학 간 경쟁과 평가를 유도했다.
 
한국 역시 1990년대에 들어 대학평가를 시작한다. 최근에는 교육부가 평가의 맨 앞에서 평가주체를 자임하고 있다. 대학재정지원사업을 미끼로 정부가 대학을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기 위한 ‘공개입찰’ 방식일 뿐이라고 설명해왔다.
 
오히려 대학구조개혁을 통해 낮은 평가를 받은 대학은 지원을 중단하고 자발적 퇴출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부의 평가 시스템 안에서 교수들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논리는 최근 ‘침묵하는 교수’들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9월 <교수신문> 798호에서 심층보도한「교수들은 왜 침묵하는가」에서 다수의 교수들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부나 대학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에 대해 비판을 하면 변하는 것은 없이, 보복과 불이익만 돌아온다는 것이다. 결국 ‘생존’을 위해서는 맡겨진 일에만 충실한 ‘샐러리맨’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 교수들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수들을 이해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 현재의 교수사회를 비판하는 다수의 의견이다. 그들은 교수가 직업적사명감, 사회적 위치로서의 책임감을 잊어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일부 교수들의 행적만 보더라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옥시사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산학협력교수로 참여했던 한 서울대 교수는 돈에 눈이 멀어 양심을 팔았다는 비판을 받았고, 강남대의 ‘인분교수’는 제자에게 교수 임용을 미끼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분을 먹이는 등의 가혹행위를 저질렀다. 성적·학위로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가 형성돼 있는 학부·대학원생 제자를 성적 대상으로 삼아 추행을 저지르는 사건은 해마다 언론 지면에 등장한다.
 
‘최고 지성’이라 불리며 사회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오던 대학 교수들이 이제는 ‘기득권’ ‘보수세력’ ‘철밥통’ 등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서영표 제주대 교수는 <대학: 담론과쟁점>에 실린「비판정신의 실종과 민주화운동 세대의 이율배반」에서 “대학 교수들은 ‘권위’를 가져야 한다. 줄을 잘 서고 돈 냄새를 잘 맡는 능력에서 오는 ‘억지로 만들어진’ 권위가 아니라,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대안을 찾는 지적 노력에서 얻어지는 것이어야 한다”며 ‘곡학아세’와 같은 현실을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최근 일부 교수들부터 “교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교수들이 자초한 비난을 교수들 스스로 정상화시켜 놓는 일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간의 무기력증과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어쩔 수 없다”라는 알리바이를 벗어 던지고 직업적 소명감과 사회적 책임감을 되찾아야할 때라는 것이다.
 
고석규 목포대 교수는 사교련 정책포럼 기조발제에서 “지금의 교수사회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처럼 교수가, 그리고 대학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도덕적 수준에 오르고 그에 부여된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교수들이 사회적 위치에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촉구했다.
 
신현철 순천향대 교수 역시 <대학: 담론과 쟁점>에서 “지금까지 평가라는 만행으로 교수들이 어쩔 수 없이 침묵을 강요받았다고 치더라도, 이제는 침묵을 깨야만 할 것”이라며 “교수는 사회의 소명의식을 지닌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교수들의 ‘자성’은 이전에도 종종 있어왔지만, 결국엔 대의로 자리잡지 못한 채 일부의 ‘거친 목소리’ 정도로 치부돼 온 것은 교수가 대학사회에서 ‘기득권’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성찰적 목소리를 쉬지 않고 내는 교수들은 경고한다. 교수 스스로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라고 외치는 교수들은 소명과 생존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교수들에게 일종의 ‘교수 윤리강령’으로 통하는 이른바 ‘소크라테스 선서’를 일독하길 권한다.
 
※소크라테스 선서
“나는 나의 학생, 나의 전공분야, 나의 동료, 나의 대학, 나의 국가에 대한 나의 책무를 인정하고, 지식의 발전과 확산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한다. 나는 도덕적 직업인 교수직에 임해 교육, 연구, 봉사를 나의 기본임무로 알고, 교육을 그 중심에 둔다. 나는 새 지식의 전달에 균형과 보편성을 유지하고, 학문발전과 학생, 동료, 대학 및 국민에 대한 책무를 다하고, 국민의 신뢰받는 연구로 나의 전공분야에서 정상에 서도록 최선을 다한다. 나는 교수, 학생 간의 인간적이고, 지적인 관계를 중시하고, 교육내용을 준비하는 데 최선을 다하며, 친절과 성의로 교육에 임한다. 나는 학생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실시하고, 대학사회의 각종 발전노력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신임교수가 좋은 선생, 성공한 학자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다.”(윤수인 부산대 명예교수, <교수신문> 627호 원로칼럼「교수의 윤리강령?」중에서)
 
김홍근 기자 m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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