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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사이버대 2년, 어디까지 와 있나
진단 : 사이버대 2년, 어디까지 와 있나
  • 교수신문
  • 승인 2002.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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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2001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사이버대가 시행 2년째를 맞으며 갈림길에 서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학사 학위 수여 사이버대는 전국에 12곳. 이들에게서 느껴진 ‘위기’의 첫 조짐은 올해 초 모집된 신입생 숫자였다. 전년도에 비해 모집 인원이 늘어난 곳은 단 두 곳 뿐이었며 특히 지방 소재 대학 세 곳은 10%대의 신입생 밖에 유치하지 못했다. 올해도 사이버대들은 2003년도 신입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일부 대학은 경품을 내거는 홍보 전략까지 불사하고 있다. 사이버대 ‘시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자 올해 인가를 받은 대학 가운데 세 곳은 아예 2003년도 신입생 유치를 포기하기도 했다.

현재 사이버대에는 자칫 일반 대학의 아류나 사설 학원 수준의 인식에 머무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대학들은 내년도 교사 건립을 계획중이지만 현재 대부분의 사이버대 교수들은 가벽이나 파티션으로 나눈 1~2평의 공간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ㄱ대의 한 교수는 “공간부족과 소음, 집중력 저하로 연구에 전념하기가 힘들다”라고 말했다. “교수와 직원간의 구분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교수도 많다. 교육 외적 잡무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송재룡 서울사이버대 교무처장은 “아직까지는 교수 채용에 몰려드는 박사들이 많기 때문에 사이버대들이 그 덕을 보는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장기적으로 교육 철학이 부족한 대학은 도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입’으로는 사이버를 외치지만 ‘생각’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영자들의 마인드도 위험하다. 낮은 법인전입금과 높은 등록금 의존률, 부채비율은 사이버대의 미래를 우려케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특히 지난 1학기에 신설된 대학 7곳 가운데 법인전입금이 전혀 없는 대학이 네 곳이나 된다는 사실은 재고할 만 하다.

일부에서는 운영방식도 여전히 보수적이고 획일적이다. ㄴ대학의 한 교수는 “사이버대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대학 측이 여전히 출퇴근 시각을 고집해 마찰을 빚었다”라고 전했다. 또다른 교수는 “전임교원이 부족하고, 수백 명 규모의 대형강의가 많다”라며 “조교마저 지원되지 않는다면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빛이 바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이버대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수준 높은 수업내용과, 학생의 역량에 따라서는 교과과정을 한 달만에 뗄 수도 있게 하는 등 자율적인 학사 운영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생각은 디지털, 규정은 아날로그

교수들의 신분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사이버대가 평생교육법 제22조에 대학형태의 평생교육‘시설’로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교수들은 사학연금, 교원공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경영자의 ‘마인드’가 불건전할 경우 대학이 비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허종렬 서울교대 교수(사회교육과)는 “매우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규정”이라며 “학교교육이라는 점에서 고등교육법으로 일괄 규정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ㄷ대의 한 교수는 “교수로서의 지위가 일반 교수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사기가 떨어지고 일반대학에 대해 미련을 갖게 된다”고 토로했다.

새롭게 대두되는 지적재산권의 문제도 사이버대들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남은경 한국디지털대 교수(교양과정)는 “교육내용 중 영화를 보여줘야 하지만, 사이버상에서 링크할 수 없어 학생들을 학교로 부른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강의실에서 비디오를 상영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사이버상에서는 불법인 이유는 저작권법 제23조 2항에서 ‘전송’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김미정 열린사이버대 교수(인터넷컨텐츠학부)는 “강의 컨텐츠들이 ‘내 것’처럼 생각돼 더 열심히 개발하게 된다”라면서도 “소유권이 어느 쪽에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서달주 저작권심의위원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사이버대 소속 전임교수라면 그 제작물은 ‘직무제작’이라는 이름으로 사이버대에 귀속된다”라고 말했다. 과거 두루뭉실하게 처리됐던 저작권 문제가 조만간 첨예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관련 법규 재정비가 시급하다.

냉엄한 밀림에서 살아 남으려면

결국 사이버대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불안정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이버대의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들은 많다. 기술적 인프라 기반이 뛰어나고, 높은 교육열, 평생교육 인식의 확산으로 두터운 학생층이 확보돼 있으며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효율적인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형화된 틀이 없다는 점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교수들도 늘고 있다. 한 교수는 “학벌이나 한 두권의 강의노트가 아닌 진정한 개인 역량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 점을 인정받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들의 말대로 사이버 공간에서의 적자생존은 다른 어느 공간보다 빠르게 일어난다. 그러나 현재 모든 대학들은 ‘낙오될 대학’이 반드시 내가 아닌 다른 어떤 대학이 될 것처럼 여유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진작 고민됐어야 했을 정체성, 커리큘럼에 대한 연구, 우수한 교육환경 구축 등에 대해 여전히 ‘행동’하지 않는 대학이 있다면, 그들이 가장 빠른 희생자가 되리라는 사실이다.

설유정 기자 sy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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