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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사료 통해 왕조국가의 역사적 실상을 파헤쳤다”
“재정 사료 통해 왕조국가의 역사적 실상을 파헤쳤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1.22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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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아산서평모임_ 『조선후기 왕실재정과 서울상업』 (조영준 지음, 소명출판, 2016)
▲ 아산서평모임 사진제공=아산정책연구원

지난 16일(수) 저녁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진행된 제11회 아산서평모임의 주제도서는 조영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조선후기 왕실재정과 서울상업』(소명출판 刊)이었다. 이 책은 <교수신문> 823호(2016년 3월 21일자) ‘책을 말하다’에 소개된 바 있다. 이날 서평모임에서는 지정토론자로 김문식 단국대 교수(사학과)와 이현미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외교학)이 참여했다.
조 교수는 PPT 발표를 통해 “정부 재정과는 별도의 영역에서 왕실 경제의 주요 업무와 결재를 담당했던 궁녀나 내시의 위상까지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는 회계장부의 방계 자료로서 조달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나 기록에 대한 도전적 해석과 의미 부여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왕실이 어떤 방식으로 물자를 구매했는지, 그 과정에서 대금으로서의 화폐가 어떻게 지급되고 있었는지를 비롯한 재정 지출의 실상을 파악한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고 책의 의미를 정리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김문식 교수는 조 교수의 책이 지닌 장점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가 읽어낸 장점은 자료의 분석과 활용, 그리고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왕실재정의 운영 실태를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동시대를 평가하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규장각에서 ‘근대정부기록류’로 분류하는 자료 가운데 내수사 및 각 궁의 회계장부를 세밀하게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이를 통해 기왕의 자료 해제에 나타나는 오류를 수정하고, 관련 용어를 정확하게 해석하며, 회계장부 및 고문서의 체제와 시전 상인의 물품이 내수사나 궁을 거쳐 왕실로 조달되는 경로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이 부분은 앞으로 비슷한 자료를 다루는 연구자들에게 훌륭한 안내자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며, 후자는 특히 고종, 순종 대의 경제정책을 평가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게 그의 평가다.
반면 김 교수가 던진 ‘의문’ 또는 좀더 명확한 설명 요구는 크게 세 가지였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왕실재정의 운영 추이가 궁금하다는 것. 즉, 왕실재정의 적자가 18세기부터 나타난 현상인지 아니면 그 이후의 현상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두 번째는 수진궁의 재정자립도가 낮아져 결과적으로 적자가 누적된 이유가 뭐냐는 것. 세 번째는 대원군과 일본의 조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이다.


“국가와 시민사회, 정부와 시장,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근대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재정 사료를 분석해 조선시대 왕조국가의 역사적 실상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한 이현미 선임연구원은 “조선시대 정부재정과 왕실재정이 불가분했다는 저자의 지적에 매우 공감한다”고 말하면서 “후대의 관점에서 비판하자면, ‘國’으로서의 조정과 ‘家’로서의 왕실이 분리되지 않으며, 법적 규율에서 제외되는 왕실의 특권이 ‘전근대’ 전제왕정의 구조적 위기를 야기한 폐해이자 ‘근대적’ 절대왕정이나 계몽군주정과의 차이라고 입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이어 “내수사와 궁방의 재정은 왕실의 ‘사적인’ 영역이라고 한다면, 왕조국가에서 공과 사, 왕실(재정)과 정부(재정)의 분리가 가능한가, 그 기준은 무엇이겠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또 “이 책을 잘못 읽으면, 중간층의 확대와 상업 자본축적이라는 측면에서, 자본주의 발달에 저해가 됐던 조선 왕조와 이를 촉진한 합리적 식민 행정부(‘식민지 근대화’론)로 거칠게 정리될 위험이 있다”고 오독을 경계하기도 했다.


반면 이 연구원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자유주의적 제국주의(liberal imperialism)’의 법적 장치들과 정치적 정당성 결여에 대한 일련의 지적을 환기하면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저자가 “장기간 미하가 누적되고 있었지만 왕실에 청구하지 못하고 있다가 왕실의 권위가 유명무실해진 보호국기에 들어서 채권의 청구가 가능했던 것은 왕실과 시전 간의 관계가 국역과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특권으로 맺어진 동반자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대목 등에 대해서 좀더 정치한 접근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이 인용하고 있는 자료들 중 중요한 일부분은 보호국기 일본인들의 제실채무 정리과정에서의 증빙자료로 제출된 미하금 청구자료의 일환이다. 과연 이러한 기록으로 재구성된 것이 어느 정도 객관적 현실의 반영이며, 위의 해석(왕조국가에서 억압, 검열되었던 개인의 권리가 식민국가에서 법적 제도적 장치로 구현됨)은 고민 없이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라고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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