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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과학
사람과 과학
  • 서승석 극지연구소 박사·분자유전
  • 승인 2016.11.1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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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서승석 극지연구소 박사·분자유전

학부 마지막 학기를 남겨놓고 진로선택을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를 지내던 시기 친구의 지나가는 물음 “실험실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갈래?”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과학도로서의 삶이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시작된 실험실 생활에서 기억에 남았던 일은 좋은 사람들과 같이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특히 비록 짧은 시간의 아침 커피타임이지만 서로의 안부와 실험에 대한 애기를 나누며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정기적인 실험실 미팅시간의 열띤 토론과정에서 연구결과에 대한 문제인식과 개선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어느 날 실험결과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결과에 당황한 나머지 심적으로 고생한 기억이 난다. “이런 결과가 나오면 기존에 실험한 결과가 쓸모없어지는데, 어떡하지?” 하며 결과 사진을 앞에 두고 며칠을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실험실 선후배님들이 무슨 일이 있냐며 나에게 물었고 조심스레 실험의 문제점에 대해 애기를 했다.

나의 애기를 듣고 잠시 고민을 하더니 “왜 너는 기존의 데이터와 현재 데이터가 같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하며 도리어 나에게 물어 보았다. 그 후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고 가능성 있는 것에 대한 실험을 해보니 모든 결과가 하나의 이야기로 얽혀지게 됐다.

그 이후 박사학위과정에서 연구에 대한 인적네트워크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됐다. 내가 다니던 실험실은 한마디로 방목형 공장과도 같아 어느 누가 돌봐줄 사람 없이 스스로 연구테마를 작성해서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 구조였다. 누구의 간섭이 없기에 무한의 자유를 얻을 수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또한 본인 스스로 져야 했다. 그래서 몇몇의 박사과정 학생이 도중에 학교를 그만두거나 실험실을 옮기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나 또한 “무엇을 졸업주제로 하고 어떻게 실험을 디자인하고 진행할까?” 등 많은 부분에 대해 고민으로 잠을 설치곤 했다. 특히 ‘이 모든 일을 끝까지 나 혼자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오랜 시간을 답답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에게 ‘왜 모든 것을 혼자하려고 하니?’ 묻더군요.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니 평소에 보지 못한 부분들이 보이고 주위에 손을 뻗으면 언제든 잡아 줄 수 있는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로 실험을 진행하며 필요한 부분 특히 중요하고 꼭 필요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실험실내 혹은 다른 부서의 연구자들의 동의를 얻어내어 실험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전문가들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지적해주고 그것을 토대로 다시 실험 계획을 수정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실험실 내 동료들, 여러 다양한 분야의 교수님들, 기술지원의 연구원들이 하나의 그룹을 이루어 유기적으로 일을 진행했던 그 시절이 가끔은 그립다.실험을 하다보면 우리는 자기만의 세상에서 해답을 찾으려 부단히 고민하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특히나 과학도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왜냐하면 그 세상은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것으로 많은 부분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 또한 연구를 진행하며 종종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을 바라볼 때면 놀라곤 한다. 생명현상의 진실 앞에 자신의 아집과 설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다른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통한 진리탐구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도로서의 첫 걸음이라 여긴다.

 

서승석 극지연구소 박사·분자유전
암유전 전공으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를 했다. 암 발생 과정의 마이크로 RNA 메커니즘 연구에 관한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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