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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글 정책의 올바른 방향
[기고] 말글 정책의 올바른 방향
  • 교수신문
  • 승인 2002.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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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부경대 신문방송학

문화관광부와 국어 연구원은 지난 10월에 국어 발전 종합 계획을 내놓으며 국어 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보도 매체에 공개된 8대 중점 추진 과제를 보면 대부분 오래 전부터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른 것이어서 새로운 내용은 없어 보인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도 없지는 않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과 넘쳐나는 외국어 문제를 고칠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오늘날 국어 발전을 위협하는 요인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빠져 있다. 국어 발전에 많은 걸림돌을 만들었던 국립국어연구원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것도 문제다. 국립국어연구원은 그 조직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방식이 철저하게 권력을 등에 업은 국어학계의 일부 학맥이 좌우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우리말글을 위협하나

걱정되는 것은 우리말글의 위협 요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국말을 배울 필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데서 온다. 지난 날 한문이 신분 상승의 매개물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미국말이 직장에서 능력의 기준이 된다. 각종 공무원을 뽑는 시험에서 미국말이 그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해도 좋은가. 사법 시험 같은 곳에서는 미국말은 거의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이런 각종 국가 시험부터 막연한 통념으로 미국말을 배울 필요를 부풀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공공연하게 나온 미국말 공용화 논의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른바 ‘세계화’로 나타나는 미국의 패권에 순응하자는 이데올로기가 언어 방면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초등학교에서의 미국말 교육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었고, 이제는 유치원 꼬마들까지도 미국말을 배우고 있다. 조기 유학을 하는 이유도 미국말이 큰 까닭이 된다. 지난날의 한문 숭배는 이제는 어김없이 미국말 숭배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이에 대한 비판적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가 얼마만큼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필요성에 의존한다. 외국어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필요한 분야에서 배우면 된다. 애초에 초등학교에까지 미국말 교육을 해야 한다는 필요를 누구나 절실히 느낀 것은 아니었다. ‘세계화’라는 뜻 모를 말이 주문처럼 돌아다니자 모두가 아는 체 해야만 했다. 제대로 된 정책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영어가 경쟁력이다”는 식의 통념이 선전됐을 뿐이다.

외국어에 대한 필요성을 줄이는 데에는 학문에서 번역의 중요성이 인정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번역 작업을 총괄하고 지원할 국립 번역원을 세우는 것이 좋다. 번역 무른모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립 번역원이란 기구를 세우는 것이 짐이 되다면 이미 있는 국립국어연구원을 번역원으로 개편하는 것이 좋다. 이런 논의도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사실 이제까지 국어연구원의 운영을 두고 말이 많았다. 서울대라는 두터운 학맥 때문에 아직도 매체들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했지만 그 탄생부터가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다. 20년 전에 군사 정권 시절에 이희승을 비롯한 한자 혼용파들이 권력을 등에 업고 만든 것으로 아직도 ‘서울대 출신의 독무대’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통일을 대비하는 사전을 만들겠다고 떠들며 출발했으나, 정치적 동기로 계획을 여러 번 변경하여 내놓은 부실한 ‘표준 국어 대사전’은 이제 폐기 여론이 거세다. 1994년의 이희승 미화 왜곡 작업, 정치권을 등에 업은 한자 혼용 정책, 동양 삼국의 한자체 통일 작업 등 적잖은 말썽을 부렸다.

민간 자율적 운동이 중심돼야

그러나 이번에 나온 시안을 보면 이런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그냥 국어연구원의 조직을 확대하고 그 권한을 강화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별 추진 과제로 ‘국어연구원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말과 함께 구체적인 조직 확대 및 권한의 내용이 나오고 있다.(중앙일보, 11월 15일 최용기) 그러나 이런 법안 제정은 올바른 방향에 서있지 않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국립 번역원이지 국어연구원이 아니다. 이런 국가 기구는 학문 연구에서 국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해 많은 연구자들을 정부의 눈치나 보게 할 가능성이 크다. 또 그것은 그냥 국어 연구가 아니라 말글살이를 직접 규제한다는 점에서 국가 개입의 확대를 의미한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정권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이를 불만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마저 있다. 이미 40년 전에 이런 쓰라린 경험을 한 적이 있으며, 이는 우리말글 사랑 운동에 큰 걸림돌이 됐다. 산업자원부 같은 데서는 영어로 회의를 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이 기구가 그냥 구색만 갖추고 실질적 기능이 없는 기구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런 현실로 미루어 보면 좀 더디더라도 민간의 자율적 운동이 중심이 되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국어 정책이 바람직하다. 국어가 발전하려면 이런 불신받는 국가 기관부터 정리하는 것이 일의 순서이다. 더구나 국어 연구원에 설치한다는 표준어 사정 위원회에서 새말을 사정한다(국민일보 10.10)는 데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경성제대에 수입된 ‘과학적’ 언어학을 아직도 그대로 읊조리는 국어연구원은 언어의 자연성을 내세워 새말은 애짓는 것이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라는 관점에 서 있는데 이는 특히 토박이말로 새말을 짓는 데 공공연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국립국어연구원이 시민단체로부터 우리말 훼방꾼으로 뽑힌 적이 여러 번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말글살이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부터 말글 정책이 나와야 한다. 바람직한 말글 정책의 본질은 외면하면서, 불신받는 국가 기관이 한가닥 뉘우치는 빛도 없이 언론이 침묵하는 틈을 타서 스스로의 권한을 강화하고 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일에 골몰한다면 큰 반발을 부를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국민의 동의 없는 법규에 따른 말글살이 규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활발한 논의가 잇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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