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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물음
결국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물음
  •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 승인 2016.11.08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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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164. KAOS 시리즈 첫권 『기원』
▲ 기원에 대한 물음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실마리는 인간과 자연(우주 혹은 생명)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기원』 책 표지.

모든 ‘기원’은 미래와 맞닿아 있다. ‘기원’을 생각하는 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우주의 기원은 우주의 마지막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생명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 차원의 ‘기원’을 다룬 동명의 ‘렉처 사이언스 KAOS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세상에 나왔다. 『기원(the Origin,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은 국내의 대표적인 학자들 총집합해 대중들과 만난 결과물이다. 지난 2015년 3월부터 6월까지 10회에 걸쳐 약 1천500명이 강연에 참석했다. 강연은 카오스(KAOS, Knowledge Awakening On Stage) 재단에서 주관했다.


10회 강연은 △우주(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 △물질(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김희준 석좌교수) △지구(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최덕근 명예교수) △생명(국립생태원 최재천 원장) △암(서울대 생명과학부 이현숙 교수) △현생인류와 한민족(을지대 을지병원 이홍규 석좌교수) △종교와 예술(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 △문명과 수학(국가수리과학연구소 박형주 소장) △과학과 기술(서울대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 △한국 과학기술의 기원(한국외대 사학과 박성래 명예교수)이 순서로 이루어졌다.

시작과 끝,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홍성욱 교수는 어떤 것의 기원, 어떤 기술의 기원을 얘기할 때 모든 역사학자가 동의하는 답이란 없다고 밝혔다. 이 책에서 다루는 ‘기원’이란 분야별 학자들의 식견일 뿐 정답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교수들이 들려주는 기원에 대한 접근법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오늘날 학자들은 빅뱅 이후를 우주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일련의 사건들은 138억년 전의 빅뱅 이후 거세게 일어났다. 즉 모든 생명은 138억 살이다. 우리는 △입자의 진화 △원소의 진화 △화학적 진화 △생물학적 진화 △인류의 진화라는 단계를 거쳐 여기에 와 있다. 김희준 석좌교수는 인간을 비롯한 현재 살아있는 여러 형태의 생물들을 ‘138억 살’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구는 지금으로부터 46억년 전 탄생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분자들 간 상호작용은 지구에도 적용됐다. 생명 역시 원자들의 우연한 조합으로 형성된 것과 같다. 최재천 원장은 지구 생명의 역사에 대해 “자기를 복제할 줄 알았던 최초의 화학물질의 일대기”라고 했다. 오늘날 생명의 형태를 이루기까지 ▷변이와 유전 가능성 ▷생존경쟁 ▷차등번식 등으로 이어져왔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로서 생태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인간은 지구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주장을 종합해보자. 다윈은 “모든 생명은 하나로부터 왔다”고 밝혔다. 인간이 거대한 생명 그물에 사는 하나의 존재일 뿐이며, 인간 탄생을 위해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최재천 원장은 지구 역사가 다시 반복된다고 했을 경우, 지금과 같은 인간이 다시 등장할 확률을 0으로 보았다. 인간은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우연들이 겹쳐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의미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지구의 생명들을 보살펴야 한다.
최재천 원장은 인간이 기막힌 두뇌를 가졌지만 자기 꾀에 잘 넘어가는 동물이라고 설명했다. 암의 기원을 강연했던 이현숙 교수는 암은 가장 강한 녀석들이 아니라 그때그때 살아남는 것들이라고 밝혔다. 확대해 보면 지금 지구에 사는 것들이 지구의 암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혹시 인간은 지구라는 가이아에 새로운 혈관을 만들고, 다른 곳으로 침입하는 악성 종양은 아닌가. 다른 한편, 인간은 그렇게 진화하는 건 아닌가.


인간이 이외의 종들과는 다른 생태적 지위를 누린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인간은 생존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즐거움을 누릴 것들을 찾았다.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는 약 6만 년 전쯤 서아시아 지역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기원전 약 3만5천년부터 기원전 1만2천년 사이 현생인류는 동굴 벽화를 남겼다. 배철현 교수는 동굴벽화가 단순한 그림에 머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숲속에 있을 때 들리는 새소리와 자연의 소음이 동굴에는 없다. 빛조차 없다.
배철현 교수는 ‘동굴로 간 인간’을, 인간이 왜 인간이 됐고 인간의 욕망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증거라고 했다. 인간은 동굴에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오랫동안 지하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기원전 1만2천년경에 농경생활을 하면서 지상으로 올라온다. 그와 함께 동굴에만 한정되었던 벽화나 생각의 결과물들 역시 지상으로 옮아오게 된다. 이후 기원전 5천년에 도시가 등장하고, 기원전 3천300년에 문자가 등장하고 본격적으로 문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문명을 만든 인류는 동물들과 다른 지위를 누릴 지위를 얻은 건 아닌가.


인간의 생태적 지위 측면을 제쳐두고, 사회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러면 인간이 동물과 원대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은 무한한 세계에 대해 경외심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았다. 물론 태초 인류는 자연을 두려워했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조금씩 자연을 관찰하였고 돌로 새기고 그림으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자연에 대한 강한 집중으로 인간은 자연 현상을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순간 자연을 별 거 아닌 존재, 심지어 지배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존재로 보는 인간 부류가 생겼다. 인간은 불을 두려움이 아닌 사용가능한 물질로 파악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음식을 익혀 먹었고, 날 음식만 먹던 때와는 다른 소화 기관과 뇌를 가지게 된다. 뇌는 점차 커지고 인간은 이성과 언어와 자기 성찰의 개념을 인식하게 된다.


인간이 사회 동물이 됐다는 중요한 특징으로는 예술·문학의 발달과 공유에 있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우주의 질서에 맞게 알고자 하는 능력과 과정이다. 배철현 교수에 따르면, 우주의 질서에 맞게 배열된 것이 아르타(Arta), 즉 예술이다. 우주의 질서인, 의례를 의미하는 인도의 르타(Rta)라는 개념에서 온 어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예술을 공유하는데, 예를 들어 시공간적으로 전혀 상관없는 셰익스피어 작품처럼 수백 년 된 예술 작품들을 찾아봄으로써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든 차원의 예술을 보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이해하는 시각에서 나아가 우주를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예술은 언어와 문자보다도 일찍 나타났다. 언어는 기원전 10만년에서 기원전 5만년 사이에 발명됐다고 추정되며, 문자는 그보다 훨씬 뒤인 기원전 5천년쯤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문자가 없었다. 박형주 소장에 의하면, 문자 기록이 없던 시절에도 예술은 존재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출토품(기원전 2만3천년 경에 만들어졌다)을 보자. 일찍이 인류는 개인이나 집단의 기대나 희망을 어떤 상징을 통해 예술로서 표현하려 했다. 예술은 물리적인 대상들의 관계를 기술하려는 수학과 과학이라는 다른 학문의 기원에도 영향을 준다.

기원과 직결돼 있는 인간의 고유성
기술은 침팬지도 가지고 있다.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다듬고 혓바닥으로 핥아 침을 묻혀 개미집에 넣어 개미를 잡아먹는다. 약 200만 년 전 살았던 호모 하빌리스가 돌도끼와 같은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술의 어떤 측면이 인간을 다른 생물과 구분하는 것일까.
인간은 주변과 새로운 연관관계를 만들어가려는 의도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기술사학자 조지 바살라는 기술은 어떤 구체적인 필요가 아닌 인간의 욕망으로 생기고 발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볼펜의 경우 글 쓰는 데만 필요하다면 한두 가지 디자인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인간은 다양한 모양과 길이, 색깔이 있는 디자인의 볼펜을 만들었다.
‘기원’을 추적하다보면 결국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게 되고, 인간과 자연(우주 혹은 생명)과 관계가 중요해진다. 과연 인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지구상에 단 한 명의 인간이라도 살아 있는 한 이 물음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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