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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혜를 만나는 곳, 책으로 가는 길’
‘시간의 지혜를 만나는 곳, 책으로 가는 길’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0.2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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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출판부 특집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지만(크로노스), 동시에 신의 섭리에 따라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흐름(카이로스)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문화의 최전선에 놓인 책도 그런 두 가지 표정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열람할 수 있지만, 이 만남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키는 이는 여전히 소수일테니 말이다. 이런 까닭에 책은 시간의 모습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다시 단풍이 내리는 2016년 10월, 가을 풍경이 멀리서부터 가까운 곳으로 붉게 타오른다. 그토록 무덥던 날씨가 자취를 감춘 자리에 선현들은 ‘등화가친’ ‘천고마비’라고 책읽기를 강조하지 않았던가. <교수신문>은 이 가을, ‘시간의 지혜를 만나는 곳, 책으로 가는 길’이란 특집으로 대학출판부가 내놓은 의미 있는 책들을 탐색하는 지면을 준비했다. 시간은 일종의 문화 용광로다. 삶의 모든 부분이 녹아들고, 거기서 비로소 하나의 사상이 그림자를 키워내기 때문에, 이 용광로 불길을 응시하는 행위는 ‘성찰’이 되며, 이는 지금 이곳을 새롭게 응시하게 하며, 또 다른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출판 환경이 위축되고 있는 지금, 대학출판부는 어떤 시간의 지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을까. 또 이들이 그려낸 시간의 결은 어떤 모습일까. 대학의 정신적 심장부이자, 지성의 풍향계인 대학출판부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잘 알려진 것처럼 가톨릭대출판부는 ‘가톨릭’ 즉, 종교 서적이 강세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신앙적 삶의 내면을 응시하는 깊이 있는 책들이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상생과 희망의 영성: 여성, 우리가 희망이다』(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2016, 504쪽, 20,000원), 『요한 바오로 2세의 몸의 신학』(미하엘 발트슈타인 엮음, 이동호 옮김, 2015, 812쪽, 47,000원), 『헬스 케어 영성 1』(마크 콥·크리스티나 외 지음, 용진선 외 옮김, 2016, 440쪽, 22,000원)을 가톨릭대출판부 편집자가 추천했다.
『상생과 희망의 영성』은 가톨릭대 협력 지성 연구소인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설립 20주년 기념 논문집으로 나왔다. ‘20주년’이란 말은 한국 가톨릭 여성신학이 모색된 지 그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성신학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여러 요소들 중에서도 자매애, 곧 여성 간의 협력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연구자들은 가톨릭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그간 여성수도자와 평신도여성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협력하고자 노력했다. 이 논문집은 그러한 노력들이 맺은 결실로, ‘품 신학’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몸의 신학』은 요한 바오로 2세의 ‘교리교육’ 내용을 담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스스로에 의해 ‘몸의 신학’이라 불린 가르침이기도 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책에서 인격과 몸을 가르는 현대적 ‘분열’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으로, 성경과 교회의 생생한 전통에 뿌리를 둔 인간 位格의 통합된 像을 제시하고 있다.
다소 특이한 제목을 단 『헬스 케어 영성 1』은 ‘영성’(spirituality) 개념을 보건의료 체계에 통합시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흥미로운 책이다. 영적 돌봄은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도  크게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은 국내 보건의료 체계 안에서 영적 돌봄과 전인적 치유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 이론과 연구 및 실무와 교육의 차원에서 초석을 마련하려는 목적에서 번역됐다. ‘건강과 영성’이라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세계 곳곳의 전문가 80여 명에게 의뢰하여 총 64장에 걸쳐 심도 깊은 논의를 제공하는 이 책은 옥스퍼드대출판부에서 발간돼, 영적 돌봄 분야의 세계적 표준이자 탁월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 5권으로 계속 번역 출간될 예정.

문턱 없는 기획도서 공모로 유명한 경북대출판부가 ‘시간의 지혜’라는 주제에 걸맞은 책으로 추천한 책은 『런던 커피하우스, 그 찬란한 세계』(매튜 그린 지음, 김민지·박지현·윤지영 옮김, 2016, 94쪽, 9,000원), 『중국 경제사』(오카모토 다카시 지음, 강진아 옮김, 2016, 508쪽, 29,000원), 『철학 실천』(다니엘 브란트 지음, 김재철 옮김, 2016, 262쪽, 20,000원)이다.
역사학자 매튜 그린의 『런던 커피하우스, 그 찬란한 세계』은 ‘커피’가 어떻게 런던에 문화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또 어떤 연유에서 커피 하우스가 그토록 급속하게 소멸하게 됐는지를 미시적 시선으로 잡아낸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건넨 커피 한잔에는 가장 빛나는 시절 영국의 정치, 역사, 문화가 함께 응축돼 있다. 독자들은 17세기 이후 런던 커피하우스가 당대의 어떠한 정치적·사회적·문화적·경제적 요인들과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근대 이후의 역사를 준비했는지, 커피하우스가 사회적 자본으로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곧 출간될 『중국 경제사』는 일본의 중국학계에서 전후 70여 년 만에 처음 선보인 중국경제사 통사다. 중국 경제의 역사적 연원과 형질, 특색에 관해 알고자 하는 사회적 수요는 일찌감치 있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일본 학계는 46인의 연구자가 대거 참여하는 형태로 이 난제에 도전했다. 통사를 서술할 때 범하기 쉬운 오류, 즉 단순한 사실의 나열을 지양하고 ‘중원’과 ‘강남’으로 이원화된 중국의 지정학적 특징을 큰 축으로 삼아 국가권력과 민간사회, 군사와 재정, 중국과 그를 둘러싼 글로벌 세계와의 역동적 줄다리기로 중국경제사를 구조적으로 일관성 있게 써 내려간 것이 큰 특징이다. 아울러 책 후미에는 책 저술에 참고한 문헌목록뿐 아니라, 시대별 필독서로 추천할 만한 책들을 선별해 그 의의와 학술적 성격에 관한 문헌해제를 따로 편성한 것도 미덕이다.

‘철학실천의 개념과 심리치료와의 관계’라는 부제를 단 『철학 실천』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철학실천’이란 말 그 자체다. ‘철학실천’은 기존의 심리학적 치료와는 달리 인간의 자연적 소질인 철학함을 통해 삶의 대처 능력과 충족 능력을 배양해 정신적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철학적 생활상담을 말한다. 이는 근대 이후 정신적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인을 위한 심리치료의 대안으로 아헨바흐 박사가 창안한 개념으로, 오늘날 세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연관된 교과목으로 개설되고 강연과 세미나 등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분야다. 이 책은 철학실천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소개하기 위한 것으로, 철학함을 스스로 자신의 과제로 인식하고, 나아가 그런 인식을 일깨우는 소명을 가진 이들과 동행할 것이다.

한국학 출판에 강세를 보이는 계명대출판부가 추천한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계명대 목요철학원 편, 2016, 453쪽, 32,000원), 『신화와 문화의 힘』(홍순희 지음, 2016, 298, 14,000원), 『최한기 측인론 연구』(이영찬 지음, 2016, 432쪽, 19,000원)다. 번역보다 국내 저자들의 저술에 힘을 실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편저자인 ‘목요철학원’은 그 기원이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시민들을 위한 철학인문학강좌인 ‘목요철학인문포럼’으로 새롭게 거듭났으며, 현재 문학, 환경, 교육, 생태,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가지고 전문가를 초빙해 발표와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계명목요철학총서’ 1권으로 나온 이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을 시도했다. 서양, 동양, 그리고 한국의 사생관을 검토하면서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파고들어갔다.

『신화와 문화의 힘』은 독자가 분명하다. 대학생의 눈높이에 맞췄다. 신화와 문화의 힘은 결국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힘이다. 본래 가치중립적인 신화와 문화에 힘을 싣는 것도 인간이고, 힘을 빼앗는 것도 인간이다. 그래서 저자는 “신화가 시작된 시점과 공간으로의 여행이 필요하고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시기와 장소로의 이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메르 신화에서부터 한국 신화까지 다뤘다.
19세기의 문제적 사상가인 혜강 최한기의 기학적 인간 이해를 다룬 『최한기 측인론 연구』는 혜강의 ‘사람을 헤아리고’, ‘인물을 평가’하는 이론에 관한 연구서다. 최한기는 개항에 즈음해 전통사상의 토대 위에 근대 서구 학문을 가장 선구적으로 수용해 독창적이면서 완성도 높은 기학적 철학체계를 제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최한기의 기학적 패러다임을 통해 인물평가에 관한 한국학 이론의 정립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목적을 두고 이 책을 썼다. 특히 측인사상의 철학적 배경으로서 기학적 인식론과 인간관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현대 사회심리학의 인물평가 이론과 다른 차원의 토착적 인물평가 이론과 방법론의 체계를 수립하고자 시도했다.

 

고려대출판문화원이 꼽은 책은 『배려: 이론과 실천을 위한 가이드』(신창호 지음, 2016, 310쪽, 17,000원), 『신사·학교·식민지: 지배를 위한 종교-교육』(히우라 사토코 지음, 이언숙 옮김, 2016, 390쪽, 23,000원), 『외로운 여정: 육성으로 듣는 미주 한인 초기 이민사 하와이에서 유카탄, 쿠바까지』(이경원·김익창·김그레이스 지음, 장태한 옮김, 2016, 364쪽, 21,000원)다.
배려』는 부제 ‘이론과 실천을 위한 가이드’가 말해주듯, 실천적 지침서다. 사회가 제아무리 디지털 세상으로 변화한다 해도 삶의 기본적 가치는 중요하다. 저자는 이 기본적 가치로서 ‘배려’에 주목, 이를 학문적 담론으로 걸러내는 시도를 했다. 시대정신과 배려의 의미, 배려와 관련한 동서고금의 사유들을 간략하게 제시하면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배려’ 혹은 ‘메타 배려’의 양상을 청년 대학생들과 함께 나누고, 이 시대에 ‘나’는, ‘너’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현재 내 삶의 문제에 냉정하게 마주서고자 했다.

 『신사·학교·식민지: 지배를 위한 종교-교육』은 ‘신사참배’를 다룬 책이다. 과연 누가 이 기묘한 ‘신사참배’를 강제하고, 끈질기게 요구했을까. 저자는 관헌처럼 눈에 보이는 직접적 권력 집행의 그 주체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미주 한인 이주사를 다룬 『외로운 여정』은 실증적 가치가 돋보이는 책이다. 미주 한인 이민사는 전 세계를 향해 독자적으로 대항하면서, 예속된 나라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숭고한 명분을 세우고, 견딜 수 없는 농노제도(노예 생활)를 견뎌낸 한국인들에 관한 위대한 이야기이며, 이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초라하지만 불멸의 대하소설과도 같다. 70여 개가 넘는 구술 역사 자료 중 30개를 추려서 이 책에 담아낸 게 특징. 이미 고인이 된 제1세대 이민자들과 이국 땅에 묻혀있는 사진신부들(Picture Brides),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의 이야기, 멕시코 유카탄의 한인들, 미군에 입대한 2세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1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자가 만든 세상』(마이클 슈먼 지음, 김태성 옮김, 2016, 392쪽, 18,000원), 『시간적 인간: 시계 없는 삶을 위한 인문학』(이원 지음, 2016, 256쪽, 13,000원), 『전쟁의 역설: 폭력으로 평화를 일군 1만 년의 역사』(이언 모리스 지음, 김필규 옮김, 2015, 661쪽, 29,000원)를 추천한 곳은 한국방송통신대출판부. ‘지식의날개’가 이곳의 대표적 자매 브랜드다.
<타임>과 <월스트리트저널>의 특파원으로서 20년 가까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 마이클 슈먼은 이 책 『공자가 만든 세상』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미화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진짜 공자를 찾아 나서는 데 집중한다. 오랜 여정 끝에 저자가 공자에 대해 갖게 된 생각은 매우 호의적이다. 공자는 그의 명성을 오용해 온 치졸한 권력자들과 달리, 인류애를 바탕으로 사심 없이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고자 노력했던 사람이다. 따라서 저자는 현대에도 공자가 있는 세상이 없는 세상보다 낫다고 단언한다. 다만 유교 역시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시간적 인간』은 난해한 시간 철학서도, 성공을 위한 시간 습관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도 아니다. 이 시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간적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희망의 길을 찾기 위한 작은 시도다. 궁금하지 않은가. 우리는 왜 매일 시간에 쫓기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간적 인간을 이 책의 제목으로 구상하면서 내 나름의 개념을 담고자 했다. 이 개념은 동물과 차별화되는 인간의 고유한 본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본성은 바로 인간의 시간 의식이다. 인간은 자신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것에 탄생과 소멸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다. 이 유한성을 의식하기 때문에 인간은 아파하고 고민하고, 그래서 생각하고 성찰하는 존재가 된다. ‘시간 의식을 가진 인간’, 이것이 시간적 인간에 대한 나의 정의다.”

『전쟁의 역설』은 전쟁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평가와 상반된 해석을 던져준다. 역사가이자 고고학자인 저자는 반인륜적 범죄로 여겨지는 전쟁이 실제로 인류를 위해 위대한 공헌을 해 왔다고 역설한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오히려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고, 안전한 세상 속에서 인류는 부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만 년 이상 이어져 온 이 역설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저자는 과거와 같은 ‘생산적 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예견한다. 그리고 향후 40년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로 규정하고, 이를 안전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자매 브랜드 ‘사람의무늬’를 운영하는 한편, 최근 의욕적인 기획도서 공모를 진행했던 성균관대출판부는 두 권의 책을 추천했다. 『글로벌 시대에 읽는 한국여성사』(정현백 외 지음, 2016, 296쪽, 15,000원)와 『소화시평: 조선이 사랑한 시 이야기』(홍만종 지음, 안대회 옮김, 2016, 576쪽, 30,000원)이다.
원시·고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여성사를 이해하기 위한 최고의 개론서로 평가받는 『글로벌 시대에 읽는 한국여성사』가 특히 역점을 둔 부분은 그간 도외시된 여성의 경제활동과 일상생활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사학계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간간이 진행된 연구들을 통해서 여성의 경제참여를 재구성하려 했다. 동시에 여성의 일상적인 삶을 서술하려는 노력도 진행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여성의 의식주 생활이나 의례, 혼인, 취미나 여가활동 그리고 신앙생활 등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여러 면모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런 시도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학의 연구 지형도에서 뜨거운 관심으로 떠오른 일상사나 미시사에 대한 관심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또한 역사 속 여성들의 일상적인 삶을 독자에게 추체험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오늘의 젠더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소화시평』은 17세기 국학의 대표자이자 자의식이 남달랐던 지식인 홍만종이 펴낸 시 비평집으로, 한문학자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현대어로 옮기고 주해와 서설을 단 책이다. 『소화시평』은 고대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우리 한시의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빼어난 작품들을 골라 짧고 인상적인 비평의 언어를 동원하여 설명해놓은 간편하고도 농축된 저술이다. 『소화시평』 한 권으로 漢詩史에 빛나는 주요 작품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사의 큰 흐름이 단숨에 읽힌다. 수백 년 동안 독서인의 서가에 한 권쯤 놓여 있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가운데 하나였으며, 근대 이전 이백여 년 동안 문학을 아끼는 독자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책이 현대의 독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과거 ‘천마 문고’로 이름을 떨쳤던 영남대출판부는 『중국의 시와 그림 그리고 정치: 그 미묘한 예술』(알프레다 머크 지음, 우재호·박재욱 옮김, 2015, 582쪽, 37,000원), 『퇴계의 인성교육』(이동기 지음, 2015, 214쪽, 17,000원), 『지상의 풍경』(허상문 지음, 2016, 417쪽, 25,000원)을 추천했다. 예술, 교육, 기행 관련 책들이다.
『중국의 시와 그림 그리고 정치』는 山水畵의 문헌적 근거를 살펴보고 어떻게 해석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한 흥미로운 책이다. 아울러 현재 중국회화와 시가문학으로 확연하게 구분돼 있는 학문분야에 이 책은 두 분야의 동질성을 모색하기 위해 융합을 시도한 매우 중요한 연구서로 평가받고 있다. 아름다운 산과 강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그리면서, 엘리트 문인 관료들은 무엇 때문에 과거로부터 홀대받아온 예술(그림)을 그 도구로 선택했을까? 그들이 글쓰기의 힘과 동일한 효과로 그림을 인식했던 계기는 무엇일까? 시적 언어를 어떻게 회화적 언어로 해석했을까? 꼬리를 무는 미스터리 속에서 저자는 이러한 흥미진진한 암호들을 풀어주고 있다.

『퇴계의 인성교육』은 퇴계를 성인이나 학자로서가 아니라 ‘생활인으로서의 퇴계’로 드러내어 일상인으로서의 삶을 인성교육적인 측면에서 오늘날 접목시킬 수 있는지를 모색한 책이다. 저자는 『퇴계선생연보』와 『퇴계선생언행록』의 옛 기록들을 바탕으로 그가 삶속에서 인성교육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살폈다. 또한 퇴계의 학문과 인성교육을 학봉 김성일의 자료를 통해서도 살펴봄으로서, 동시대를 살아간 다른 학자들에게 퇴계의 사상과 삶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도록 했다.
여행기는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지상의 풍경』은 쉽게 보이지만 들어갈수록 결코 녹록치 않다. “삶은 상처이고, 여행은 그 상처를 확인하는 길이다”라고 저자는 여행을 정의한다. 그래서 그의 여행길은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아픔을 통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상처를 확인하는 길이었다. 티베트, 인도, 시베리아, 실크로드, 비잔티움, 그리스, 이탈리아, 이집트, 영국, 체코 프라하, 아우슈비츠, 두브로브니크, 미국, 캐나다, 앙코르와트, 부에노스아이레스, 맞추픽추 등 동서양을 횡단하며 그 속에 피어있는 역사와 신화, 눈물과 땀을 찾아 공감하는 과정에서 사유했던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산문 언어에 담아냈다.

 

이화여대출판문화원이 추천한 책은 『번역 트러블: 한국소설과 문화번역』(김미현 지음, 2016, 352쪽, 23,000원), 『소음과 분노』(서숙 지음, 106, 170쪽, 9,000원), 그리고 『한국 현대 철학: 그 주제적 지형도』(정대현 지음, 2016, 952쪽, 39,000원)다.
『번역 트러블』은 문화의 접점인 ‘번역’을 소설을 사례로 짚어낸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문학 독자나 특정한 시대 자체가 새로운 번역자로 기능하면서 자신의 정서나 사상, 시대나 사회적 이념을 기반으로 문학을 새롭게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해나가는 행위에 대해서 문화번역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문화번역은 단순히 번역의 범위를 언어가 아닌 문화로 넓힌다는 의미가 아니라, 작품에 대한 재평가와 그 속에서의 갈등과 변형, 차이를 끌어안는 ‘문화적 전환’이 포함돼야 한다는 적극적 의미를 지닌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언어)번역한 소설들이 아니라 동일한 한국어로 창작됐지만 서로 다르게 문화번역된 한국소설들을 대상으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음과 분노』는 서숙 전 이화여대 교수가 자신의 강의록을 소설별로 펴내는 ‘서숙 교수의 영미소설 특강’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대표작인 『소음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s)』(1929) 강의를 담았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 남부의 한 명문가의 몰락을 통해 전통적인 가치와 기존 질서의 붕괴를 그린 작품으로, 무엇보다 서술의 연속성을 거부하고 ‘의식의 흐름’ 기법 등을 통해 새로운 소설 유형을 구축한 모더니즘 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소설이다. 특히 허무와 분노로 몰락한 콤슨 가문의 인물들 옆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흑인 보모 딜지의 모습에 주목해 포크너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희생과 사랑과 생명의 연대의식을 강조해 설명하는 것이 흥미롭다.
『한국 현대 철학』은 부제가 암시하듯 ‘주제적 지형도’를 그려내는 데 무게를 둔 책이다. 원로 철학자 정대현 전 이화여대 교수의 역작이다. ‘철학’이라는 이름의 학문은 1920년대 국내에 처음 유입되면서 기존의 것은 동양 철학으로, 새로 도입된 것은 서양 철학으로 분류됐는데, 양쪽 모두 기존의 중요 철학자 위주로 해석하는 것이 주된 학풍이었다. 이에 저자는 ‘철학하기’란 무엇이며 한국의 현대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이고 유의미한 질문을 던진다. 1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는 현재 활동하는 500여 명의 한국 철학자들의 저서와 그들의 연구에 대한 애정 어린 점검이 담겼다. 40여 명의 철학자를 동시대 철학자들의 사유가 지닌 당대성과 논변성에 주목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460여 명의 철학자들을 그 주제를 가능하게 한 배경, 또는 앞으로 발전 가능하게 하는 전망의 문맥에서 소개하고 있다.

 

전북대출판문화원은 『위기의 대학, 길을 묻다』(서거석 지음, 2016, 362쪽, 16,000원), 『이상 평전: 암호적 예술의 숲을 찾아서』( 이보영 지음, 2016, 752쪽, 40,000원)를 추천했다. 두 권 모두 내공이 녹록치 않은 저자의 책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북대를 새로운 반열에 올린 서거석 전 전북대 총장과, 염상섭 연구로 일찍이 국문학계에 이름을 날린 이보영 전북대 명예교수가 그들이다.
『위기의 대학, 길을 묻다』는 새로운 대학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거쳐야 할 책이다. 전북대 제15~16대 총장을 지낸 서거석 교수는 총장 취임 당시 빈사상태에 있던 전북대를 총장 재임 8년 만에 명문대학으로 우뚝 서게 했다. 저자의 고뇌와 처방,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도전과 열정, 대학 경영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책은 모두 5부로 돼 있다. 제1부에서 제3부까지는 대학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어떤 방향으로 새롭게 디자인했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 새로운 정책을 추진했는지, 구성원을 어떻게 섬기고 이끌었으며 성과를 냈는지 필자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밝히고 있다. 제4부에서는 대학을 비롯한 조직을 이끌고 나가는데 필요한 핵심 노하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제5부에는 한국대학 발전을 위한 여섯 가지 제언을 수록했다.

 『이상 평전』은 李箱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생생하고 면밀하게 규명한 평전이다. 평생을 이상과 염상섭 문학 연구에 몰두해온 이보영 교수의 또 하나의 역작으로, 이상 문학 연구에 획기적 사건이 될 만한 책이다. 어떤 삶이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지만 이상의 삶에 어두운 면이 훨씬 많았던 것은 그의 작품으로도 입증된다. 그는 거의 언제나 가정이나 직장의 아웃사이더였으며 예외적 존재였다. 물론 그 자신이 예외자 의식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그 점에서 그의 삶은 이중인격자의 삶이었다. 저자가 여기서 눈여겨 본 것이 바로 ‘이중적 성격’이다.
저자가 『이상 평전』에서 이상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그리고 그의 정신적 발전 과정을 주목하면서 검토한 것은 그의 작품세계의 진면목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가려지거나 숨겨져 온 그의 생애의 미스터리를 밝혀내기 위해서다. 그 결과 저자가 밝혀낸 것의 하나는 그가 일제 강점기의 어느 작가보다도 집요한 항일적 작가였다는 사실과 동아일보사가 후원한 ‘브나로드 운동’에 관심이 있었고, 그가 만년에 아나키즘을 정치 이념으로 선택한 것도 그 연장선 위의 사건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이상의 아나키즘과 관련된 연구는 전혀 볼 수 없었고, 그의 「단발」, 「슬픈 이야기」 및 「실화」가 아나키즘 소설 3부작인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가 만년에 아나키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었다. 저자가 새롭게 구성한 ‘이상 평전’ 쓰기는 기존의 이상 평전에 도전하면서, 또 다른 평전 쓰기의 자극제가 될 게 틀림없다.

일반적인 ‘대학출판부’란 이름과 달리 ‘지식출판원’을 내세운 한국외대지식출판원이 꼽은 책은 『내러티브와 자아』(세미오시스 연구센터 지음, 2015, 280쪽, 17,000원), 『우정, 자유, 복종 그리고 카니발리즘: 몽테뉴와 라 보에시』(서종적 지음, 2016, 184쪽, 16,000원)이다.
최근 들어 내러티브(이야기)가 인간의 정체성 형성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자주 부각되고 있다.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관통하며 행동하는 존재로서 자신을 알아 가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내러티브와 자아』가 놓이는 맥락이다. 인간의 경험은 본질적으로는 서사적이고, 자기 정체성은 스토리로 경험된다. 이 책에서는 기존의 문학적 자기 서사를 넘어서 넓은 의미의 ‘생애사(life history)’ 내러티브를 다루며, 이러한 이야기를 이용해 정체성 형성, 인간의 사회적 행동, 관계, 상호작용 등의 문제까지도 세미오시스 관점에서 재고찰하고자 했다. 김성도, 김은정, 변광배, 서종석, 엄소연, 이윤희, 조윤주 등 언어학·기호학, 그리고 상징과 글쓰기 분석 전문가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우정, 자유, 복종 그리고 카니발리즘』은 몽테뉴의 『에세』의 일부 章과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론』을 읽으면서, ‘우정’의 개념과 더불어 몇 가지 인본주의적인 주제들을 살펴본 책으로, 일종의 책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몽테뉴와 라 보에시의 우정을 살펴보는 일은 우리의 삶에 들어와 있는 타자의 존재와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고 나아가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을 이끄는 것이라 믿는다”라고 말한다. 두 인물은 서구의 문학이나 사상의 논의 속에서 언제나 서로 조응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논의 속에서 이들의 우정은 늘 자연스럽게 같이 언급된다. 이들이 함께 나눴던 우정이 어떠한 성격이었는지는 무엇보다 몽테뉴의 『에세』 1권 28장 「우정에 대하여」에 그 흔적이 남겨져 있다. 저자도 상당부분 이 장에 의지해 논의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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