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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종 ‘주민등록표’ 만드는 데 골몰 … “생태보감·식생지는 미래 위한 국가적 과제”
식물종 ‘주민등록표’ 만드는 데 골몰 … “생태보감·식생지는 미래 위한 국가적 과제”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0.19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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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식물 3천800종 담은 10권짜리 『한국 식물 생태 보감』 작업하는 김종원 계명대 교수

생태보감의 경우, 식물에 대한 종합적이고입체적인 해석이 요구되는 지난한 학술
행위다. 그 무엇보다도 분주하지 않는 연구 여건에서만 가능한 일이라 본다.
수많은 고전과 각종 사전을 필수적으로 섭렵하는 것은 기본이다.


부제 ‘주변에서 늘 만나는 식물’을 단 『한국 식물 생태 보감 1』(자연과생태, 2013.12)이 처음 출간됐을 때,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구한 한 독자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책 제목이 왜 보감인지 알겠다. 일제 찌꺼기를 털어버리고 진정 우리 것으로 채워져 있어 너무 알차다. 여태껏 잘못 알아 왔던 것, 지금이라도 바로 알게 돼 너무 감사하다. 늘 먹고 접하는 식물을 알아가고 그 삶을 읽어 내려가는 즐거움이 크다. 자연에 대한 그간의 목마름이 해소된 듯”(알라딘, white1078, 2014.1.14.)


당시 독자가 지적한 것처럼 이 책은 ‘圖鑑’이 아니라 ‘寶鑑’이라 이름 붙였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보감은 “1. 다른 사람이나 후세에 본보기가 될 만한 귀중한 일이나 사물, 또는 그런 것을 적은 책. 2.보배롭고 귀중한 거울”의 의미를 지닌다. 책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저자는 경북대 생물학과를 나와 일본 요코하마국립대에서 석사학위를 하고, 다시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식물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종원 계명대 생명과학과 교수(58세)다. 그는 최근 ‘풀밭에 사는 식물’을 정리한 『한국 식물 생태 보감 2』를 내놨다.

▲ 몽골 초원식생조사중 휴식(사진 오른쪽끝)

생태 선진국들은 풀밭 식물사회에 오래전부터 주목해왔다. 한국의 각시붓꽃이 사는 풀밭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오래된 방복지도 보호하려고 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생태 선진국들이 그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속에 빙하기 유존식물, 희귀식물, 특산식물, 진화학적 특이식물 등이 살고, 단위 면적당 출현하는 식물 종다양성이 숲보다 더욱 풍부하기 때문이다.” 풀밭이 생물다양성 중점지역(hot spot)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권 ‘풀밭에 사는 식물’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이지 우리나라 사람에게 풀밭은 숲보다 매우 뜻깊은 데가 있다. 샐러드, 그린, 허브, 베지터블, 그 어떤 영어 단어도 그 속뜻을 충분히 담을 수 없는 한국인의 ‘나물(Namul)’이 풀밭 식물사회에서 잉태한 전통문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가 눈여겨 본 것은 참취, 미역취, 산비장이, 절굿대, 솔체꽃, 어수리, 고사리 등, 초원식생의 주요 구성원인 산채다. 그리고 이들 하나하나를 ‘면면이 이어져 온 오래된 우리 식물 이름’으로 빼곡하게 정리해냈다.
“부추, 도라지, 뻐꾹채, 타래난초, 참배암차즈기, 옥녀꽃대, 할미꽃, 무릇, 각시붓꽃 등 우리나라 고유 명칭의 기원과 유래를 따져 보노라면, 사회학, 언어학, 역사학, 문화학, 생태학, 형태학, 진화학, 유전학 등 온갖 정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국인의 오래된 미래를 챙겨 보기 위해서라도 풀밭 가꾸기, 즉 자연초원식생, 반자연초원식생의 보존에 나서야 한다.”

▲ 가야고분 식생을 설명(밀집모자가 저자)

일본을 거쳐 오스트리아에서 식물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의 학문 이력에는 당시의 ‘목숨을 건’ 작업이 깊게 놓여 있다. 1989년 강 하중도 식생 조사를 위해 조그마한 카누를 타고 다뉴브강을 건너다가 전복한 일도 있다. 1990년 만주 식생 조사 중에 장백산 중국 국경수비대에 체포된 일도 있고, 1991년 연해주를 조사할 때 KGB로부터 미행을 당하기도 했다. 이 미행 끝에 극적으로 연해주 삼림 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런 내력이 그를 좀더 강인하게 단련시켰을 것이다.


그의 보감 작업은 모두 10권까지 구상돼 있다. 바닷가, 암벽·바위, 습한 땅, 개척 땅, 낙엽활엽수림, 상록활엽수림, 아고산·고산지대, 분포 특이 식물 등으로 이어질 예정. 2013년 12월에 첫 권을 냈으니, 이 책이 저자의 말대로 1년에 한 권씩 나온다 해도 2024년에야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방대한 작업이다. 그는 왜 이 작업에 매달린 것일까. 그를 이메일 인터뷰로 만났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사진제공=김종원 교수

 
△ 도감이 아니라 ‘보감’이라고 이름 붙였다. 왜 보감인가?

“들풀도 생명이다. 모든 생명을 삶의 얼개를 갖는다. 그런 삶의 얼개는 곧 삶의 역사다. 따라서 들풀 한 포기 한 포기는 그들이 사는 땅의 역사를 품은 판도라 상자와 같은 것이다. 애오라지 사람과 부대끼는 역사는 더욱 복잡하고 끈끈하다. 도감은 사람의 눈과 카메라 렌즈로 비춰진 그림과 사진으로 엮은 지식의 나열이라면, 보감은 대상이 된 들풀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의 역사성, 생태성, 문화성 따위를 담은 박물학적 총서다. 하찮은 들풀 한 포기라도 그 삶의 얼개는 우리 인간과 다르지 않다. 풀 한 포기도 아무 데나 살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사는 터를 가려 살고, 사는 데는 그럴 만한 연유가 있다. 한국인의 나물 문화는 그런 들풀의 은밀하다고 할 생태성을 알아차린 선조들의 지혜 산물이다. 이를테면 보감은 야생 들풀의 형이상학을 발효시키면서 생겨난 산물이다.”
 

△ 1권에서 760종, 2권에서 501종을 다뤘다. 주변 평을 들어봤는데, 수록 항목보다 ‘정확성’을 높이 평가한다. 이 정확성은 어쩌면 기존 한국 식물학계의 어떤 타성에 대한 반성이자 성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식물의 우리말 이름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보감 작업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그냥 인용문헌을 나열하면서 표절의 악습에서 해방된 것처럼 여긴다. 무늬만 인용이지 표절이 만연하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영화 한편을 보고 나면, 보는 이마다 그 감상문은 다르다. 영화의 명대사를 그대로 옮긴다면, 그것은 먹은 것을 그냥 토해 내는 것과 같다. 먹은 것을 소화했다면 그 배설물은 다른 모양을 하고 다르게 나타나고, 또 다른 새로운 싹을 틔우는 밑거름이 된다. 마찬가지다. 말과 글의 속뜻을 정확한 이해할 때, 인용이란 것도 자연스럽고 올바르게 이루어지고, 적지적소에 그 문헌을 적시할 수 있다고 본다. 인용문헌의 적시 상태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그 학계의 정확성과 정직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일지라도 때와 장소와 話者를 적시해야 하는 것이다. 글자만 옮겨 적는 인용보다는 그 본질에 대한 사색, 不立文字를 늘 새겨 봐야 하는 까닭이다.”

▲ 자생하는 부추

△ 보감을 보면서 놀란 것이 두 가지다. 하나는 부록으로 달린 형태용어사전과 학명, 한국명, 영어명, 중국명, 일본명을 제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식물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구체적인 서술 문장의 매력이다. 식물사회학자가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놀랐다. 전자는 학문적 엄밀성에 충실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후자인 ‘빼어난 글쓰기’는 타고난 것인가?
“부족한 글 솜씨를 내용의 정확성으로 메울 뿐이다. 정보의 시대에 정보의 신뢰성은 광합성 식물의 엽록체와 같다. 엽록소가 없으면 기생만이 절대 생존 방식이고, 숙주가 존재하지 않으면 기생생물은 존재할 수 없다. 보감은 스스로 자생하는 착한 숙주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가다 어려운 한자 용어를 쉬운 한글 용어로 만들어 썼다. 예를 들면 ‘岩殼地’를 모가 진 바위가 츠렁츠렁 쌓인 ‘츠렁모바위’, 모가 졌으나 넙적한 시렁처럼 생긴 바위가 쌓인 ‘시렁모바위’로 새로운 한글 명칭을 지어냈다. 그럼에도 독자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작은 생태사전’을 수록해야만 했다.”
 

△ 『한국 식물 생태 보감』은 모두 10권으로 구상됐다. 논문으로 업적평가를 받는 지금의 대학 분위기에서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어떻게 10권을 완주할 계획인지 궁금하다.
“SCI 논문은 사실상 교수 업적평가의 몸통이다. 우리가 사는 땅에 분포하는 식물의 생태와 역사를 일일이 영어 논문으로 들어낼 까닭은 없다고 본다. 거기다가 평가에 불리하다고 해서 『한국 식물 생태 보감』 완성을 게을리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식물사회학을 공부한 나의 소명이다. 『한국 식물 생태 보감』은 우리나라에 사는 식물종의 주민등록표이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 국가가 후원해 준다면 더욱 신명날 일이다. 하지만,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여건이고, 이것은 이 시대에 태어나 사는 비켜갈 수 없는 나의 업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목숨 걸고 할 뿐이다.”
 

△보감 작업을 위해 식물사회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을 것 같다. 발품을 판 뒤에는 또 어떤 작업을 보탰나.
“고사리나 김의털을 보자. 이들은 유럽 중앙알프스를 지나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유라시안대륙의 서쪽 끝 포르투갈의 ‘로카곶(Cabo da Roca)’ 해안에서부터 유라시안대륙 동쪽 끝 한반도 호미곶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하는 종류들이다. 이를테면 고대 인류가 늘 봐왔던 그런 들풀이다. 그런데 고사리, 김의털의 명칭처럼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된 이름은 우리에게 많이 남아 있다. 고사리를 나물로 해먹는 습속은 지금도 여전하고, 그런 습속에서 생겨난 이름이 고사이다. 김의털은 농경문화에서 생겨난 김매기 (잡초 제거)에 잇닿아 있는 고유 명칭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뽑을 수 없는, 호미 같은 것으로 ‘김을 매야 제거할 수 있는 화본형 풀’을 우리는 ‘김’이라 했다. 이런 사실은 식물의 분포와 지리, 살아가는 방식의 생태, 말과 어원에 대한 변천사, 고전 속에 나오는 기록의 실체와 그 내용의 진실성을 검증해 가면서 밝혀지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 일본과 빈에서 공부했다. 각각의 학문적 환경, 내용 모두 다를텐데, 일본에서 석사를 하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박사를 하게 된 것은 어떤 계획에서였나. 또, 식물사회학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면.
“식물사회학은 중부유럽 독일어권에서 태동했고, 그곳이 학문의 중심이었다. 일본의 식물사회학도 그곳에서 배웠고 도입하였다. 한마디로 ‘beyond Japan’ 일본을 넘어서고자 했다. 거기다가 당시에는 우리나라와 국교가 없었던 중공과 소련 땅인 만주와 연해주에서 현장 식생조사연구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 제 3지대인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선택했다. 마침 우리나라 대사관을 비롯한 학문적·경제적 후견인과 오스트리아 정부의 각별한 도움이 컸다. 식물사회학을 하게 된 동기는 검게 불탄 산지에서 꽃이 핀 핑크빛 꽃며느리밥풀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꽃며느리밥풀은 불에 그슬린 땅에서 그렇게 많은가? 어디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이런 것을 연구하는 분야가 식물사회학이란 것을 교수님에게서 들었다. 1979년 학부 3학년 때의 일이다.”

▲ 정선-계곡식생 조사중

△ ‘식물사회학’은 어쩌면 기존의 거대 담론이랄 수 있는 역사학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분야가 되지 않을까. 경주를 근거지로 한 신라의 발전, 발해의 쇠망 등을 작은 풀밭 사회에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경주 계림이나 나정에 대한 선생님의 해석을 보니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 역사적 이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입체적 해석에서 그 완성도가 성취된다. 자연환경은 인간의 삶에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으로 우리가 절대적으로 종속되는 연극 무대와 같은 것이다. 그런 무대의 가장 바탕이 되는 소품이 녹색 식물, 식물사회다. 따라서 그 땅에 잔존하는 식물사회 속에는 그런 우리 인간의 삶의 역사가 녹아 들어있다. 그런 식물사회 속에 틈입돼 감춰진 진실을 찾아내는 것도 식물사회학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다. 김알지 탄생설화가 깃든 계림이 낙엽활엽수림으로 이뤄진 공간이라면, 박혁거세의 나정은 낙엽활엽수 한 그루 없는 침엽수 상록수림의 공간이다. 이것은 공간의 생태성과 문화성의 융합, 나아가 역사적 인물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경주에서 신라가 시작됐는가, 시조 박혁거세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가?’ 따위에 대한 물음도 식물사회학은 도전할 수 있다.”
 

△ 고전 연구에는 ‘공구서’가 기본이듯, 식물학 연구에는 보감, 도감 작업이 기본일 듯하다. 일종의 기초연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지금 우리 학계나 대학의 ‘기초과학’ 인식은 얕지 않나. 현장을 몸으로 누비고 다니는 연구자들의 고단함, 애로가 많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일정 부분 기초과학이 장려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단박에 내놓아야 하는 성과주의에 매몰된 형편이기 때문에 진정한 순수 기초과학은 설 자리가 없다. 거기다가 기초과학의 학문 분야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생태보감의 경우, 식물에 대한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해석이 요구되는 지난한 학술 행위다. 그 무엇보다도 분주하지 않는 연구 여건에서만 가능한 일이라 본다. 수많은 고전과 각종 사전을 필수적으로 섭렵하는 것은 기본이다. 참산부추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의 최초 나물은 야생 부추였고, 단군왕검의 탄생설화 속에 나오는 마늘과도 잇닿아 있을  것이라는 숨겨진 사실을 발굴했던 것이다. 고맙게도 문태영 고신대 교수는 이렇게 서평 하셨다. “자료를 모으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그 양이 방대하면 더욱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그 원래의 자료들을 비교해 옳은 그른 정보를 분석 추출해 새로운 정보로 가공하고, 다시 시대에 맞는 해석으로 문서화하는 것은 지식 이상의 것이 필요한 작업이다.”
 

△ 보감 전 10권이 완간되는 날이 기대된다. 그런데 ‘연구비’ 신청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고 들었다. 연구비 신청 없이 어떻게 이 작업을 진행하시는지 궁금하다. 보감 작업 외에 달리 진행하는 작업들이 있는가?
“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연구하기를 원한다. 창조적인 학문 활동을 위해서 어떤 것으로부터도 압박과 구속을 거부한다. 十年有成, 어떤 일이건 뜻을 세워 십년을 꾸준히 하면 못 이룰 일 없다고 본다. 형편 되는대로 “Stay in the moment”(찰나에 머물라)의 자세로 연구를 진행한다. 생태보감 이외에 죽기 전에 하나 더 성취하고자 하는 꿈은 『韓國 植生誌』 완성이다. 우리나라에 현재 자생하는 모든 현존식생과 잠재자연식생을 기록하는 것이다. 생태보감이 종 수준의 연구라면, 식생지는 식물사회 수준의 연구이다. 이런 생태보감과 식생지는 녹색의 自然史 기록으로서 미래 세대의 행복한 삶의 바탕이 되는 국가적 기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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