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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전집’과 ‘선집’ 출간이 남긴 질문들
두 개의‘전집’과 ‘선집’ 출간이 남긴 질문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0.11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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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_ 『김우창 전집』(전 19권, 민음사)과 『함석헌 선집』(전3권, 한길사)

 거인에게 찬사를 보내는 건 어렵지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복잡 미묘한
지성사적 인물을 향한 전집을 세상에 내놓는다고 한다면,
공식적인 글쓰기에서 배제되거나 숨은 글까지 포함해야 한다.

도대체 전집은 어떤 것일까. 거기엔 어떤 의미가 온축돼 있으며, 그런 전집을 탄생케 하는 힘은 어떤 것일까. 여기 두 가지 전집(하나는 선집)이 보인다. 이 책들은 중요한 지성사적 질문을 던져준다.
김우창 전집 간행위원회는 2014년 1월에 민음사와 전집을 내기로 결정한 후 그해 5월부터 실무진이 구성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탁월한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 전공자인 김우창 교수의 한국 문학에 대한 기여를 생각하면, 그의 전집은 반가운 일이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1977), 『지상의 척도』(1981), 『시인의 보석』(1993), 『법 없는 길』(1993), 『이성적 사회를 향하여』(1993) 등의 기존 전집을 흡수해 모두 19권 체제로 새롭게 엮었다. 『보편 이념과 나날의 삶』, 『문학과 그 너머』, 『예술론: 도시, 주거, 예술』, 『사물의 상상력과 미술』, 『다원 시대의 진실』, 『문학의 경계와 지평』, 『풍경과 마음: 동양의 그림과 이상향에 대한 명상』, 『정치와 삶의 세계』, 『산과 바다와 생각의 길』, 『세 개의 동그라미: 마음, 이데아, 자각 ―김우창·문광훈의 대화』, 『시대의 흐름과 성찰1』, 『대담/인뷰터 1: 1968~1999』, 『대담/인터뷰 2: 2000~2014』가 여기에 속한다. 이 19권 세트에는 별권으로 『연보/총목록』을 포함하고 있다. 출판사측은 “김우창의 정확한 연보 그리고 제목순, 연도순으로 정렬한 총목록을 실어 앞으로의 연구에 길잡이가 되도록 했다”라고 밝혔다.

19권에 이르는 김우창 전집은 그의 50년에 걸친 사유의 궤적을 망라하고 있다. 그가 썼던 비평, 논문, 에세이에서 대담, 칼럼까지 ‘모두’ 수록했다. “한국어로 생각하는 모든 이를 위한 지적 자산”이란 평가가 있지만,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일단 이 19권 체제가 ‘전집 완간’으로 불릴 수 있냐는 기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의 공식·비공식적인 글쓰기를 모두 수록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전집 간행위원회’ 참여자들의 면면이 익명화돼 있는 것도 문제다. ‘초대받아 쓴 글’들 중심으로는 ‘김우창’이라는 심미적 인간의 내면, 그리고 그 내면이 직조해낸 동시대의 한국 문학과 문화의 깊은 곳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의 비망록, 공개되지 않은 편지, 일기장, 초등학교 학생부, 집안 가계까지 모두 그려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의미의 ‘전집 완간’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인에게 찬사를 보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복잡 미묘한 지성사적 인물을 향한 전집을 세상에 내놓는다고 한다면, 공식적인 글쓰기에서 배제되거나 숨은 글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아직 왕성한 지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사적인 측면’은 아직 꺼내놓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연보/총목록』도 그가 활동을 계속하는 한 ‘마침표’가 없는 부분이다. 기억의 문제, 자료의 평가 등에서 김우창 교수가 직접 참여해 ‘전집’ 그림을 그리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거기에 출판사가 어떤 ‘이득’을 생각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도 든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는 ‘전집’으로 부르기보다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이광수의 『무정』 발표 100주년인 올해다. 여전히 우리는 한국문학사와 지성사를 수놓은 거인들의 ‘전집’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함석헌학회가 내놓은 『함석헌 선집』은 어떤가. 한길그레이트북스 148~150권으로 배정된 『함석헌 선집』(전3권)은 『씨ㅇ´ㄹ의 소리』, 『들사람 얼』, 『인간혁명』으로 구성됐으며, 함석헌선집편집위원회(김제대, 이만열, 신대식, 김영호, 윤영천, 이재봉, 김민웅)가 엮었다. “함석헌 사상은 현대 아시아의 고전이다”라는 신념을 안고 선집을 내놓은 이들은 “동서고금의 사상을 넘나들며 사람의 도리와 생명의 본질을 설파한 함석헌 선생의 글 중 대표적인 글 94편과 시 11편을 모았다. 함석헌학회와 한길사가 선생 탄생 115주년, 한길사 창립 4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일단 이번 선집은 함석헌의 사상이 농축된 글들을 선정해 분야별로 정리해, 함석헌 사상의 전모를 파악하기 쉽도록 배려했다. 또한 각 권에 권별 해제와 선집을 아우르는 전체 해제를 넣어 독자가 함석헌의 사상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선집’이 기존의 『함석헌 전집』(전20권)과 『함석헌저작집』(전30권)을 저본으로 삼고 각 글이 최초로 게재됐을 때의 원본과 대조해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함석헌선집』은 ‘전집’이라는 전체상과 다른 개별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사상의 정수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1권 『씨ㅇ´ㄹ의 소리』는 기독교와 동양 종교 그리고 역사에 대한 글을 모았다. 기독교 정신의 참뜻은 무엇이며, 동양철학, 특히 노장사상과 불교를 재해석해 숨은 정신이 무엇인지 밝혔다. 무엇보다 그러한 뜻과 정신이 역사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함석헌의 고유 개념인 ‘씨ㅇ´ㄹ’을 들어 설명했다. 1권 『들사람 얼』은 민중과 민족 그리고 통일 문제를 다룬 글을 모았다. 세계와 시대에 국가주의·민족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뜻’으로 대표되는 보편적인 역사관이 필요함을 밝혔다. 3권 『인간혁명』은 실천의 문제를 다룬 글을 모았다.

갈등, 전쟁, 재앙, 파괴, 폭력, 탐욕, 양극화 등으로 한국사회는 지금 격심한 질병을 앓고 있다. 그렇기에 일찍이 함석헌 선생이 외쳤던 근본적인 전환과 혁명, 새 나라, 새 윤리, 새 교육, 새 종교, 새 문명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는 기획자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전집’이 어째서 ‘선집’과 나란히 놓일 수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뭔가가 남아 있다. 그것이 일종의 ‘다이제스트’ 형태인 선집의 형식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기념식에 불려나온 사상가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에서 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수익도 나지 않은 책을 이 깊은 출판 불황기에 무모하게 내놓은 출판사와 학회의 순수한 열정에서 오는 것인지, 판단은 독자가 내려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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