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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철학적 사유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0.11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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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서양 고대 철학 2』 강상진 외 지음|도서출판 길|461쪽|28,000원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에서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기원후 476년)까지
지중해 지역은 제국이 통치하는 곳이지, 더 이상 아테네와 같은 폴리스들이
민주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된다.
즉 철학적 사유의 근간이 문명사적 전환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서양 고대의 철학적 사유는 마지막 단계에서 제대로 이해한 사람에 의해 온전히 번역돼 전수되는 것도 방해받았다. 서양 고대라는 시기적 연속성은 그렇게 끝이 났고 새로운 문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소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운명에 처해지게 됐다. 서양 중세 그리스도교 문명이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을 통해, 또 르네상스를 통해 재발견돼 새로운 삶을 이어가기를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강상진, 「고대철학의 종언 혹은 새로운 모색: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보에티우스까지」)로 끝나는 『서양 고대 철학 2: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보에티우스까지』는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한 책이다.

독특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 책이 놓이는 현실적 맥락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서양고대철학은 서구 철학의 기원으로 끊임없이 호명되는 사유의 깊은 우물이다. 문제는 이 세계에 접근하는 길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희랍어와 라틴어에 기반한 사상과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하는데 전문 연구자들도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근래 학계가 이런 현실을 고민해 상당한 수준의 작업을 내놓고 있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서양고대철학 전체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의 조망을 제시하는 우리말 자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책이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런 사정과 직결된다.

이번 책은 2013년 2월에 출간된 『서양 고대 철학 1: 철학의 탄생으로부터 플라톤까지』(도서출판 길)와 함께 읽어야 한다. 이 책들은 국내의 현실을 직시한 서양고대철학 각 분야 연구자 23명이 집필에 참여해 이룩한 성과라고 해도 좋다. 플라톤 전집 번역을 맡아 수행해오고 있는 정암학당 연구자를 비롯해 각 대학의 전공자가 참여해 집필, 공동발표(논평과 토론) 등을 통해 전체 원고의 균형과 짜임새를 갖추는 데 힘을 쏟았다. 모두 23명의 집필자가 참여해 1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마침표를 찍은, 서양고대철학 분야의 국내 순수 연구자에 의한 첫 결실로 손색이 없는 역작이다. 서구 철학자의 관점에서 서술된 내용이 아니며, 언어의 번역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불필요한 난해함을 겪지 않고서도, 우리말로 된 균형 잡힌 시각을 만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집필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2012년 9월 첫 발표 모임을 가진 이후 일정에 따라 학기 중에는 2개월에 한 번, 방학 중에는 1개월에 한 번 정도 만나면서 초고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이들은 2014년 2월 최종 모임을 갖고, 책 출간 준비를 마쳤다. 초고, 수정본, 최종본에 이르기까지 평균 2~3회의 발표와 토론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집필에 참여했던 강상진 서울대 교수는 “발표된 원고에서 기대되는 바는 무엇인지, 주변 시기나 주제와의 연결은 서로 어떻게 이해하고 진행할지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독자에게 과도한 선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와 같은 논점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책으로서 통일성과 완결성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강 교수의 말은 유사한 작업을 진행하는 연구자들에게 ‘타산지석’의 귀중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먼저 1권부터 잠깐 살펴보자. 참여한 저자들은 박희영, 손윤락, 이기백, 김인곤, 강철웅, 김주일, 김대오, 전헌상, 김유석, 유혁, 강성훈, 정준영, 최화, 이정호, 김헌(집필 순)이다. 이들은 서양고대철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준으로 삼아 그리스 철학의 탄생에서부터 플라톤까지를 제1권에 담아냈다. 구성은 전체 3부로 잡았다. 제1부는 흔히 ‘자연철학자들’이라고 불리는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탄생 배경을 다뤘다. 제2부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사상적 토양이 됐고, 플라톤 철학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이른바 ‘소피스트 운동’과 소크라테스를 다뤘으며, 제3부는 집중적으로 플라톤(6장)을 불러냈다. 특히 제2부에서 소피스트들을 비중 있게 다룬 것은 20세기 후반 이후에 이들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대한 것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다. 소피스트를 다루는 2개의 장은 각각 언어이론·인식론과 윤리학·정치철학을 중심으로 소개했다. 이렇게 구성한 제1권은 대략 기원전 5세기와 기원전 4세기까지로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지들 안에서 이루어진 사유 활동의 결과물들에 주목했다.

김재홍, 조대호, 손윤락, 유원기, 전헌상, 손병석, 김헌, 이창우, 오유석, 김유석, 송유레, 박승찬, 강상진 등이 집필에 투입된 제2권에서는 플라톤 철학 이후,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를 중심으로 시작해 고대철학이 끝나가는 시점에 해당하는 기원후 6세기의 보에티우스(Boethius)까지를 다뤘다. 1권과 달리 2권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겨냥하고 있다. 강상진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까지의 사유의 전개가 지역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뚜렷한 선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양고대철학의 전통은 크고 작은 여러 선들로 복잡하게 구성되며, 훨씬 넓은 지역에 펼쳐진다”고 지적한다.

전통의 분기와 지역적 확산은 서양고대철학의 문명적 기반이었던 고전 그리스 세계가 겪어야 했던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망 소식이 아테네에 전해진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가 철학에 두 번 죄를 짓는 것을 면하게 하기 위해 도시를 떠났다고 전해진다. 정치적 망명에 가까운 이 탈출은 서양고대철학의 역사에서 이 폴리스가 가졌던 지위와 향후 겪게 될 운명에 대한 전조처럼 들린다. 즉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에서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기원후 476년)까지 지중해 지역은 제국이 통치하는 곳이지, 더 이상 아테네와 같은 폴리스들이 민주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된다. 즉 철학적 사유의 근간이 문명사적 전환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대적 전환이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게 했을까. 우선 제국적 통치는 기존의 철학과 문화에 일종의 ‘초지역적 성격’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제국의 패권이 마케도니아에서 로마로 넘어감에 따라 언어적으로도 라틴어와 같은 非그리스어로 수행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또한 기원후 2세기부터는 고전 그리스-로마 문명과는 전혀 다른 문명적 뿌리를 가진 유대-그리스도교 전통과의 만남을 통해 서양고대철학은 인식론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전환의 계기를 맞이한다. 아테네라는 민주정 폴리스 안에서 그리스어로 수행되던 독특한 사유 활동은 더 이상 민주정을 전제할 수도 없고 폴리스라는 고전 그리스 고유의 정치 단위가 제국이라는 정치적 단위에 의해 와해된 역사적 환경에서, 반드시 아테네에서만 가장 잘 수행되리라고 기대할 수도, 그리스어로 해야 가장 잘 수행되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非아테네·비그리스적 요소들을 수용하며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2권이 좀 더 역동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권은 1부 아리스토텔레스, 2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전통으로 구성했다. 전체 15장 가운데 8장을 아리스토텔레스에 할애해 집중적으로 다뤘다. 플라톤과 더불어 서양고대철학의 양대 축을 형성한 중요한 철학자이기에 그의 다양한 철학적 조류를 좀 더 세밀하게 나눠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성에서 눈치챌 수 있듯,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전통이 어떻게 변형돼 가는지를 여러 철학적 조류를 살펴봄으로써 전체 서양고대철학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세심한 안배라고 볼 수 있다.
집필자들이 강조했듯,  『서양 고대 철학』이 우리말로 사유하는 지평 위에서 ‘새로운 모색’을 위해 반드시 조회해야 할 준거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서양 고대 철학 연구자 집단의 지적 성취 수준을 보여주는 한 척도임에 틀림없다. 망망대해 서양고대철학으로 가는 항해에 유용한 지도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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