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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 소비 억제·소득 재분배 통한 포용적 성장, 정치적 의지에 달렸다”
“과시 소비 억제·소득 재분배 통한 포용적 성장, 정치적 의지에 달렸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0.10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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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_30강.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의 ‘필요 소비와 과시 소비’

지출세를 통한 과시 소비 억제와 그 세수를 소득 재분배에 투입하는 ‘포용적 성장’이란 아이디어가 있다면? 과시 소비에 ‘지출세’를 매기고, 거기서 세수를 거둬들여 소득 재분배에 투입한다면 한국 사회의 양극화된 소득 불평등은 좀 더 완화될 수 있을까. 지난 1일(토) 서울 종로구 안국동 W스테이지에서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30강의 주인공은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였다. 그는 이날 「필요 소비와 과시 소비」를 강연 주제로 들고 나왔다.
범세계적으로 팽배한 과시 소비에 대해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되물은 이 명예교수는 사치품에 대한 중과세를 제안했다. 또 정책적 대안으로 “개별 소비세 대신 한 개인이 1년간 소비한 총액을 파악해서 거기에 누진세율을 적용 및 과세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 방법은 영국의 경제학자 칼도어의 아이디어로 처음 등장한 1950년대 당시에는 사실상 현실 적용이 어려웠다. 세금 확대라는 정치적 부담만 정리된다면, 전자정부의 선두주자인 한국은 정치적 의지에 따라 지출세 도입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과연 그의 아이디어는 어떤 내용일까.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온 나라 백성이 먹을 빵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듣고 ‘그렇다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대답한 지체 높은 왕자의 무지몽매함에 대해 나는 깊이 생각해보았다."
―장 자크 루소, 『고백론』

이 말은 프랑스의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철없이 한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루소가 이 책을 쓸 때 마리는 불과 11세였고 프랑스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에서 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제로 마리는 이 말을 하지 않았고, 이 말은 순전히 와전된 것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없는 이 말은 지금도 빈부 격차 및 필요소비와 과시소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유명한 말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케이크를 사치재라고 보기 어렵다. 또 웬만한 사람들은 생일이나 이런저런 행사 때 일상처럼 케이크를 먹는다. 그러니 필수재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와 같이 필수재와 사치재의 구별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므로 상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마르크스도 생존 임금을 논하면서 산업혁명기에 영국 노동자들이 즐겨 입었던?입지 않으면 수치심을 느끼기까지 한?린넨 셔츠는 사실 로마 시대에는 왕이나 귀족도 입지 못했던 옷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주제인 필요소비와 과시소비도 그런 관점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과시소비의 이론

과시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란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토스타인 베블런(1857-1929)이다. 그가 1899년 42세 때 처음 쓴 책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은 그를 일약 일류 학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책에서 베블런은 풍부한 지식과 풍자를 총동원해 유한계급의 역사와 행태에 대해 상세히 분석한다. 그는 부자들을 동상에서 끌어내리고 유한계급을 야만인의 계보에서 추적하여 미국의 약탈적 자본주의에 맹공을 가했다.
베블런에 의하면, 유한계급은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는 방법으로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게으름(노동하지 않음)에 탐닉한다. 과시소비와 과시여가는 지배계급이 스스로 유한계급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베블런은 이 책에서 유한계급의 유래를 야만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찾으면서, 유한계급의 허위의식을 폭로하고 풍자함으로써 독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베블런 이후의 각종 소비 이론

베블런의 분석은 그 뒤 경제학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을지라도 제도학파의 흐름이 되살아난 현재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비를 설명하는 이론 중에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베블런의 유한계급 분석에 기인한다. 즉, 어떤 재화의 가격이 낮을수록 더 많이 사려고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 심성인데, 어떤 경우에는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경우가 있다. 이를 베블런 효과라고 부른다. 이는 부자들이 높은 가격을 주고 물품을 샀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심사에 부합하는 현상이다.

현대 제도학파 경제학에 큰 족적을 남긴 갤브레이스는 『풍요한 사회(The Affluent Society)』(1958)라는 저서에서 의존 효과(dependence effect)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소비자는 왕’이라고 보는 정통파 경제학의 기본 가정에 반기를 든 개념이다. 갤브레이스에 의하면 현실은 거꾸로 기업이 먼저 어떤 제품을 생산한 후 방대한 광고를 퍼부어대면, 소비자들은 필요 여부를 스스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부화뇌동해서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대기업의 위세 앞에서 힘없는 소비자들의 신세와, 광고의 사회적 폐해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것이다.

또한 케인스 이후 소비 이론의 발전을 보면 소비를 소득의 함수라고 보는 케인스의 소비함수가 나온 뒤 경제학계에서는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한 항상소득 가설, 모딜리아니(Franco Modigliani)가 처음 제시했던 생애주기 가설 등 이런 저런 소비 이론이 속출했다. 뒤에 나온 여러 가설들과 비교해서 케인스의 가설은 절대소득 가설이라 불린다. 케인스에게 소비는 소득의 절대적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 케인스 이후 제시된 여러 소비 가설 중 하나는 상대소득 가설(relative income hypothesis)이다. A의 소비는 A의 현재 소득 뿐만 아니라 A의 과거 소득의 영향도 받고(시간적 상대성), B의 소득의 영향도 받는다(공간적, 사회적 상대성)는 것이다. 이 가설을 주장한 경제학자는 듀젠베리(James Stembel Dusenberry)다. 필요소비와 과시소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때 바로 상대소득 가설이 적용될 수 있다. 오늘 부자들의 과시소비가 내일은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고, 과거에는 케이크가 과시소비 품목이었지만 지금은 필요소비 품목이 되는 것도 상대소득 가설로 설명이 가능하다.

1873년 미국의 풍자 작가 마크 트웨인이 『도금 시대(Gilded Age)』 란 책을 썼다. 베블런이 살았던 시기는 정확히 도금 시대와 일치한다. 도금 시대는 대체로 1870~1914년 사이의 시기로서 철도와 석유를 중심으로 거대 독점이 출현하고, 이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모으던 시대였다. 당연히 미국의 빈부 격차는 심해졌다. 마크 트웨인은 그 특유의 풍자 정신으로 ‘금을 처바른 시대’라고 표현했지만, 학문적으로 도금 시대를 분석하는 것이 바로 베블런의 필생의 사업이었다. 이 시대는 최근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 등장하는, 여러 나라에서 자본이 커지고 빈부 격차가 심화했던 시기(프랑스에서는 ‘영광의 시대’로 불렸던)와 일치한다. 피케티의 분석에서 의미심장한 것은 앞으로 이런 경향이 21세기 내내 지속되고 심화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정책적 고려

그러면 제2차 도금 시대를 맞아 범세계적으로 팽배한 과시소비에 대해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물론 과시소비를 옹호하는 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가설이다. 이 가설은 부자들이 먼저 돈을 많이 벌면 그들의 지출이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차츰 밑에 있는 중산층, 서민, 중소기업에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 섞인 가설 또는 희망사항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가설이 성립한다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 증명된 바는 없다. 그러니 트리클 다운 가설에 입각해서 불평등한 분배를 옹호하고, 과시소비를 통한 경기부양을 옹호하는 것은 이제 갈수록 설득력을 잃고 있다. 오히려 노동자, 서민들의 소득을 먼저 늘림으로써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 경제성장도 촉진하자는 포용적 성장론 또는 소득주도적 성장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경기부양을 이유로 과시소비를 옹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 위화감 등을 생각할 때 과시소비를 억제하고, 그 대신 필요소비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 될 것이다. 이런 목적을 위해 어떤 정책을 쓸 수 있을까. 우선 생각나는 것은 사치품에 대한 중과세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사치품에 대해 징벌적인 중과세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특별소비세도 거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사치품에 대한 정의가 시대 흐름에 따라 다소 불확실하고, 사치품에 중과세하는 것이 과연 옳은 방법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데 있다. 즉, 중과세는 서민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실질적인 경제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대안으로 우리는 사치품에 대한 개별 세금이 아니라, 각 개인의 1년간 소비총액에 과세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과거 1950년대 영국의 케인스학파 경제학자인 칼도어(Nicolas Kaldor)가 제시했던 아이디어로, 상당히 일리가 있다. 세금의 주종인 소득세와 소비세를 생각해보면 서로 장단점이 있다. 소득세는 누진세로서 공평하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열심히 일해서 소득이 높은 사람(개미)에게 징벌을 가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반대로 소비세는 사회가 생산한 열매를 많이 따먹은 사람(베짱이)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린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빈부 계층 사이에 역진적으로 부담이 돌아가서 근본적으로 불공평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둘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 하는 것이 어렵고 진퇴양난이다.

여기서 발상을 바꿔 소비세에 과세하되 누진세에 공평성을 도입하면 어떠한가 하는 생각이 나올 수 있다. 칼도어의 아이디어는 개별 소비세 대신 한 개인이 1년간 소비한 총액을 파악해서 거기에 누진세율을 적용 및 과세하면 공평하기도 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개미) 대신 열심히 열매를 따먹은 사람(베짱이)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린다는 장점이 발휘될 것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1년간 소비 총액을 계산한다는 것이 어렵고, 따라서 이 아이디어가 처음 등장한 1950년대에는 사실상 현실에 적용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그래서 유일하게 이 세금을 도입했던 스리랑카를 제외하고 이 세금?지출세(expenditure tax)라고 이름 붙여진?을 실행에 옮긴 나라는 한 나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컴퓨터가 이렇게 발달했으니 지출세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문제는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는 데 따르는 정치적 부담이다. 정치인들은 표에 살고 죽는데, 과연 새로운 생소한 세금을 도입한다고 하는 자살수를 두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세계에서도 전산 시스템이 가장 발달한 나라로서 전자정부의 선두주자다. 따라서 지출세 도입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적 의지가 어떠한가를 생각해보면 답답해진다. 복지 증세를 한사코 거부하는 보수정당의 고집을 보면 대단히 어려울 것 같다. 이것이 관건이다. 한쪽에서는 필요소비도 충족하지 못해 자살을 택하는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일이 발생하는 반면, 강남에는 외제차가 범람하고 과시소비가 난무한다. 이러한 한국의 현실에서 지출세를 통한 과시소비의 억제와 그 세수를 통한 소득 재분배, 그리고 이를 통한 포용적 성장이 가능할 것인가.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놓인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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