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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절박한 문제에서 담론 생산할 때 세계와 어깨겨룰 수 있다
‘한국사회’의 절박한 문제에서 담론 생산할 때 세계와 어깨겨룰 수 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0.05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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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코리아, 인문학에서 희망을_ ③ 인문학이 만드는 업그레이드 코리아

인문학자들이 반신반의하는, 그러나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는 ‘인문학진흥법’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교수신문>은 앞서‘인문학진흥법’ 8월 공표를 앞두고 기획시리즈 ‘인문진흥법에 바란다’를 마련, 문사철 분야 교수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기획에 이어 새롭게, ‘인문학진흥법’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 짚어야 할 현안들, 그리고 이 법안의 궁극적 지향점 등을 진단하는 ‘업그레이드 코리아, 인문학에서 희망을’ 시리즈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차례
1.무너지는 인문학 기반, 그리고 박사들의 운명
2.더 큰 인문학의 무대: 세계적 연구소의 꿈
3.인문학이 만드는 업그레이드 코리아
4.좌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기획 ‘업그레이드 코리아, 인문학에서 희망을’ 1편 「무너지는 인문학 기반, 그리고 박사들의 운명」이 활자의 옷을 입고 나갔을 때, 곳곳에서 많은 관심과 호응이 이어졌다. 그만큼 한국 인문학 박사문제가 절박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시장에서 ‘인문학’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그늘에는 제도적 문제, 인문학 학문후속세대의 지속가능한 세대교체 문제에 심각한 빨간등이 켜져 있었다. 상황을 한 순간에 반전시킬 묘책은 불행하지만 없어 보인다. 문제의식을 갖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한걸음씩 나아가는 ‘느린’ 행보 속에서 공감의 폭을 확산하는 게 어쩌면 가능한 하나의 대안일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목소리도 들렸다.

이어 2편에서는 ‘세계적 연구소의 꿈’을 짚었다. 각 대학마다 대학의 얼굴에 해당하는 관록 있는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종합’ 연구소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세계적 연구소 육성’ 의지를 다그쳤다. 그게 십여 년 전의 일이다. 독자적이고 고유한 연구 주제, 이를 수행할 연구 인력, 국제적인 인적 연결망, 그리고 지원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대학과 학계는 십년의 시간을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국민의 血稅까지 동원됐다! 세계적 연구소의 꿈은 하루아침에 꿀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이제쯤 ‘세계적 연구소’가 몇 개쯤은 탄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 지적도 있었다.
이런 지적 혹은 불만에는 결여된 게 있다. 독자적이고 고유한 연구에 대한 이해다. 혹자는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 일견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충분치는 않다. 거기엔 지속적인 담론 생산과 토대 구축 작업이 요청된다. 지난 십년의 시간이 비록 구멍 뚫린 독에 물붓기식이었다 해도 거기서부터 어떤 지혜를 길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HK연구교수로 참여했던 김 아무개 박사의 말이다. “분명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교훈을 얻었죠. 지금의 방식을 계속 고집해서는 목표(세계적 연구소)는커녕, 연구자들의 창의적인 에너지마저 쉽게 고갈될 것이라는 교훈이죠. 연구소마다 지향하는 의제들이 있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세계와 네트워킹할 수 있는 담론 창출에는 한계가 있다고 봐요. 다른 접근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연 인문학은 지금 이곳, 한국사회로부터 어떤 절박한 요청을 건네받을 수 있을까. 김 박사는 세계와 연결, 교류할 수 있는 담론 창출은 ‘한국사회’의 절박한 문제로부터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그것은 식민지·전쟁·분단·군사독재·민주화·경제성장의 온갖 문제를 껴안고 있는 한국 사회만의 특수성 해명에 근접한 일일 수 있다. 철학이나 사회학, 역사학 등지에서 이들 개별 주제들을 녹여 이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이를 좀 더 고민해보면 이런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요컨대 이런 그림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를 좀 더 업그레이든 된 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는 추진체가 될 수 있다.

영문학자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요즘 ‘탈성장’, ‘성장이후’를 고민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기차처럼 달리던 시절이 끝났다는 것. 성장이 멈춘 사회를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점에서 우리는 한국사회가 성장 중심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탐색하는 담론 창출에 눈을 돌려볼 수 있을 것이다. 성장 중심 사회에서 성숙 기반 사회로 나아갈 때, 인식의 전환을 모색하는 작업이야말로 인문학이 가장 먼저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동시에, 우리 모두가 목격했던 그대로, 지금의 한국사회는 ‘각자도생’의 처절한 사회, 죽어라 경쟁해서 생존해야하는 사회다. 생존이 아니라 더불어 생활하는 삶으로 전환하는 지혜를 모색하는 일도, 인문학 담론 생산 작업이 짊어져야 할 부분이다.

생존이 아닌 생활, 어느 정치인의 표현대로 ‘저녁이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한국 정치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이건 정치학자만의 몫이 아니다. 한국 정치가 고립과 불통에서 통합과 교류의 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거와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인문학 담론 생산 작업 목록에 올릴 수 있다. 이념, 지역, 세대, 직종 등에 의한 분열을 극복하고, 나아가 동서화합-남북통합-동아시아공동체를 그리며, 세계시민으로 나아갈 수 있는 모색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함께 손잡을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식민지에서 해방돼 전쟁을 거치면서도 경제적 성장 신화를 이룩해낸 한국인의 DNA에는 서구의 것을 모방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철저히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정신적·물질적 조건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인문 정신은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의 토대이자 준거가 될 것이다. 이 인문정신을 우리의 고유한 ‘자기 정신’으로 밀고나가는 작업,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21세기 문명의 표준을 세계에 내놓는 것을 꿈꿀 수 있다. 그 누구도 세계사적 특수성을 우리만큼 안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문학 담론 생산과 함께 토대 구축 작업이 필요하다고 앞에서 지적했다. 중국이 벌이는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발끈하지만, 그들이 유장사업을 통해 지의 원천을 중국화 하는 것에는 범학계적 차원, 사회 차원에서 별다른 대응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한국 학계와 사회에 시급한 것은 전통시대 이후 축적된 지의 원천을 정리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원천 문헌 확보’ 작업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지지부진한 정본 작업 및 주해 작업에 좀 더 역량과 지원이 집중돼야 한다.

철학자 후설의 책을 번역하고 거기에 주석을 꼼꼼히 단 자크 데리다의 박사논문은 우리가 기억해야할 사례다. 철학사, 미학사, 문화사, 언어사 등 각종 사전 작업도 토대 작업에 속한다. ‘디지털 휴머니티’ 작업도 향후 토대 구축 작업에 요청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 담론 생산과 토대 구축 작업이 분명 한국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면, 자기부정과 패배주의의 쳇바퀴를 도는 일 대신에 지금 인문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매우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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