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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한 번 가려면 9시간 허비"
"학회 한 번 가려면 9시간 허비"
  • 김진일 동의대·컴퓨터공학과
  • 승인 2016.10.0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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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방에서 살아보니

地方이란 사전적 의미로 중앙에 대비한 지역을 말하며, 이는 서울 이외의 지역을 의미한다. 나는 현재 부산에 살고 있으니, 이는 다른 말로 지방에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우리 속담에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의 의미는 서울에 보내어 공부도 하고, 출세도 하라는 뜻을 내포한다. 언제부터 생겨난 속담인지는 몰라도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서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전 국민의 교육열이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우리나라의 경우라 이 말에 일부 수긍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감이 든다. 그렇다면 지방에 살면 공부도 할 수 없고, 출세도 못한다는 말인가?

몇 년 전쯤의 일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수들 모임을 서울에서 하기로 했다. 한 4시간 걸리는 상견례를 겸한 회의인데 함께 점심식사하고, 그 뒤에는 컴퓨터가 설치된 장소에서 하는 15명 정도가 모이는 회의였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지방소재 대학의 교수비율이 거의 반반이다.

장소 선정에 대한 의견을 묻기에, 서울역에도 세미나실이 준비돼 있으니 지방에서 올라가는 사람에게는 편리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결론은 서울의 강남 지역이란다. 할 수 없이, 서울역에 내려서 약속장소까지 약 1.5시간씩, 왕복 3시간을 길에서 허비해야 했다.

여기에 더해, 지방에서 올라가야하니 KTX 왕복시간으로 약 6시간 포함, 무려 9시간 이상을 서울사람에 비해 더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집에서 기차역까지 가는 시간은 서울사람도 이동시간이 있으니 제외하고 말이다.
 
아이들의 대학입시 소집도 그랬다. 오전 9시 집합, 9시 30분부터 논술시험이란다. 지방에서 출발해 아침 9시에 집합하려면 첫차인 새벽 5시 KTX를 타도 빠듯하다. 5시 기차라면, 적어도 3시에 일어나서 씻고, 역까지 나가려면 4시전에는 집을 나서야한다. 결국은 전날 출발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고등학생인 자녀를 여관에 혼자 보내기도 그러니, 부모 중 한명이 따라 나서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돈과 시간의 낭비다. 인재는 지방에서 뽑아가고, 배려는 전혀 없다.

최근 앞선 사례와 비슷한 회의가 대전에서 열렸다. 전국에서 모이는 교수들의 평가회의다. 대전에서 열려서인지 모임시간이 오전 10시30분이다. 당일에 출발해도 조금은 여유롭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요즘에는 지방에서 그런 회의나 모임들이 자주 개최된다. 많은 공공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한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서울역 회의실에서도 가끔 모임이 열려 나름 시간절약이 된다. 이는 지방에 대한 배려인지, 아니면 서울에 대한 배려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러한 변화는 반가운 일이다.

여러 공공기관의 이전에 대한 업무효율의 문제가 가끔씩 언론에 보도된다. 사실은 이에 대한 우려는 정책을 결정하기 전부터 제기된 문제점이다. 그럼에도 이런 정책을 시행한 배경은 더 이상 서울의 팽창과 이에 대한 부작용을 방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난제가 서울주변 지역의 문제로 파급되고, 나아가 수도권 전체의 어려움으로 확대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난제들을 여기서 말하기에는 너무도 많고, 다양하기에 생략한다.

빈부격차 문제는 사회의 큰 이슈다. 이의 해소는 국가 정책의 중요 과제이며, 방치하면 폭동이 되기도 한다. 지역 간의 격차 역시 마찬가지다. 그간 많은 분야에서 지방은 차별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스포츠 등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서 서울이 중심이었고, 그렇게 돌아갔다. 아마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느끼지도 못했으니 당연히 배려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태껏 서울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불편들이 요즘 가끔씩 느끼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동안 이 곳 지방에서는 항상 그렇게 느꼈고, 그렇게 지내온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여러 격차들을 해소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도 멀지만, 조금씩의 변화가 긍정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는 희망을 보이기도 한다.

요즘에는 학회가 지방에서 많이 개최된다. 부산, 대구, 광주 또한 제주 등에서도 말이다. 우리는 항상 서울에서 오시는 손님들을 위해 그들의 방문시간까지를 고려한 일정을 짜게 된다. 어렵겠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진일 동의대·컴퓨터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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