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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질수록 커지는 관계 ‘가족’ … 변화의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나?
멀어질수록 커지는 관계 ‘가족’ … 변화의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나?
  •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 승인 2016.09.2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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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13. 교집합과 합집합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한가위에는 말 그대로 풍성함이 최고조에 달하는 때라는 말이다. 풍성함만 넘쳤을까. 걱정도 한껏 부푼 나날이었다. 어쩌면 몸과 맘이 따로따로인 채 연휴가 지났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추석의 차례는 설날보다도 풍성했겠다. 예전에는 상 뒤로 병풍을 둘러 세우고 지방을 써붙이거나 상 위에 위패를 세워 놓고 차례를 지냈다. 집안에 따라 정월 대보름, 단오, 백중이며 동지에도 차례를 지내기도 했었다. 예전에는 일용할 양식이 부족할지라도 ‘좀도리 쌀독’을 놓아두고 매끼 한 움큼씩 차례나 제사를 위해 곡식을 모아두었던 것이 어머니들의 지혜였다. 

▲ 일러스트 돈기성

19세기 말 1896년생 시어머님이 살아계셨을 때를 보면, 우리 집안에서는 정월 대보름과 동지에도 간단한 예를 지냈다. 지금도 약식이나 오곡밥 또 동지죽을 소소하게 차려놓는 정도의 시늉을 한다. 이제 차례는 형식적이라 해서 대폭 간소화 되는 추세이자, 신앙에 따라서는 우상숭배라 하여 아예 차례를 치운 집도 많다. 차례에 선악의 가치는 해당되지 않고, 다만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문제는 만남이다.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어도 설명절과 추석엔 고향집을 찾는 것이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다. 윤치호 선생이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10%의 이성과 90%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국인의 민족성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했다고 하더니, 세월이 가도 한국 사람들은 감성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아 보였다. 오죽하면 명절 이동 인구를 민족대이동에 비유했을까. 물론 이성적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비이성적 행동을 비판적으로 보는 말이었다.

그런데 근년에는 그 대비가 바뀌어 이성적인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가 분명하다. 귀성열차를 봐도 그렇다. 이번 코레일 추석 열차 승차권 판매기간 내의 예매율은 52.5%로 최종 마감됐다고 했다. 예상처럼 그날로 동이 난 것이 아니다. 14일 호남선 하행 예매율이 97.6%로 1위였던 것을 감안하면, 전체적으로는 절반에 훨씬 못 미친 경우가 많았지 않겠는가. 

이제는 귀성보다는 독자적인 연휴를 보내려고 하는 경우가 늘고, 그것이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서울역의 아이러니를 보자. 귀성객 대비보다는 해외여행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는 서울역 도심공항터미널에 추가 인력을 배치하고 탑승 수속 카운터를 탄력적으로 확대해야 했단다. 첫차를 앞당기고 막차 시간을 늦춰가며. 당연한 서비스로되 조금은 뭔가 이상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떠났을까. 인천공항공사 발 뉴스로는 10일에서 18일까지 하루 평균 출국자와 입국자가 모두 8만명을 넘어, 9일 동안 모두 140만명이 인천공항을 이용했단다. 그렇게 명절에 북적대는 인천공항을 비춰주는 뉴스화면은 우리 같은 구시대 사람들에겐 생경한 것이 사실이다. 제주도를 포함해서 ‘해외’에 나간 적이 없는 사람들도 실은 많다. 내가 사는 주변에서는 상당하다. 이런저런 핑계로 가끔씩 해외에 머물던 나를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생각하면 많이 미안해진다. 

명절 연휴 해외여행이 부쩍 늘어나는 이유는, 이제는 자녀들에게 너흰 꼭 고향에 와야 한다고, 조상께 성묘는 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부모들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편적인 것이 없지는 않겠지만, 명절 연휴를 보내는 데 모범답이 따로 없는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세대는 그들의 철학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니, 우리 세대도 예로부터 하던 습성을 벗어나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도 되는 것이리라. 심심찮게 그런 이웃들도 보인다. 물론 그것이 꼭 해외여행이어야 하는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또 날마다 연휴인 노인들까지 덩달아 명절에 맞춰 나설 필요까지야 없지 않겠는가. 어머니 집을 찾고 싶으면 어쩌라고! 하긴, 차례 문화에 속박되어 살아왔던 젊은 시절에 대한 반작용일까도 싶다. 

1960~1970년대 유럽에서의 일화가 생각난다.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강의실이나 학생 식당의 문을 열어준다. 예전에는 여학생은 가볍게 고마워요 하며 먼저 들어가는 것이 관습이었다. 여성해방운동의 시절, 여학생은 ‘난 해방되었거든요!’라고 톡 쏘며 먼저 입장하는 우선권을 내려놓고 뿌듯해 한다. 남학생은 고개를 흔들며 먼저 들어간다. 그건 물론 시작이었다. 피상적인 의례를 버리고, 많은 것들을 그 여학생들은 되살려냈다.

‘명절 연휴를 가족과 함께’라는 관습적 슬로건의 효과가 분명 떨어지고 있다. 가족과 나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가족이라는 원과 나라는 원, 두 원의 관계다. 관계라 하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말이 아니다. 어떻게든 겹치는 부분이 있어야 관계다. 이것을 집합에 대입해서 생각해 본다. 

두 원의 합집합과 교집합은 반비례한다. 교집합이 커지면 합집합은 작아지고, 교집합이 작아지면 합집합은 커진다. 내가 가족에게서 빠져 나올수록 나와 가족을 합한 합집합은 커지고, 내가 가족에 포함될수록 합집합은 작아진다는 말이다. 두 원은 부모와 자식으로도, 남편과 아내로도, 두 연인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나와 너의 관계다. 나는 인간이다. 인간은 생래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가만히 있으면 당연히 외로운 혼자다. 외로운 나는 외로운 너와 함께이고 싶을 때가 있다. 다만 최소로 조금만 엮여 있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손가락 하나로 연결돼 있을 때 우리는 거의 두 사람이다. 우리가 온 몸으로 포개어 있을 때 우리는 거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하나이면 나는 반인데, 나는 반이고 싶지 않고 온통이고 싶다. 그렇기에 손가락 하나로만 연결되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나 하나로 너는 너 하나로, 우리는 거의 둘로. 이럴 때 인간은 이성적이 된다.

문제는 교집합의 질이다. 양보다는 질적으로 우수한 교집합이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이성적 판단을 초월하는 절대적 신뢰, 사랑 같은 어떤 것이 녹아있는 달콤 씁쓸한 알갱이, 아니 두 팔 벌려 아무렇게나 누워도 흔들리거나 터지지 않을 바닥이면 좋겠다. 작아도 안전한 교집합을 지니고 있는 동안 우리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생래적으로 외로운 숙명의 인간이 외롭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꿈 같은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꿈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닐 터.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덜 소유한 데서 오는 허전함은 손에 쥘 수 없는 어떤 것을 소유함으로써 달래고도 남을 것이다. 

누구랑도 손가락 하나만 걸고 함께 있는 느낌의 작고 탄탄한 교집합을 쌓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다르게 함께 살기. 완전히 이성적인 사람은 없다. 누구나 마음 속에는 본향 어머니의 집이 있다.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전남대 독일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하인리히뵐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도이칠란트·도이치문학』등을 썼다. 퇴임 후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장편소설 『표현형』 등을 내고 PEN문학활동상, 광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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