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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보다 1~2천년 앞선 ‘토기뿔잔’의 미학
고대 그리스보다 1~2천년 앞선 ‘토기뿔잔’의 미학
  •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 승인 2016.09.29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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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의 文響_ 39. 백자 철화 뿔잔 (白磁鐵畵角杯)
▲ 사진⑩ 백자철화뿔잔

뿔잔의 최초 발생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분포는 넓고종류도 다양하며 유물의 재질과 형식의 차이는 있지만 민족의 특성에 맞게 각 문화권의 자생적태동과 어느 정도의 전파에 의한 변화와 발전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뿔잔은 쇠뿔이나 사슴뿔 등 짐승의 뿔을 직접 잘라서 만들거나 土器, 금속제로 뿔모양의 盞을 만든 것으로 고대 유목민족, 기마민족이 실제사용하거나 풍요를 기원하는 제례용기로도 사용됐다. 유럽에서는 土器로 만든 뿔잔이 B.C.3000년경 그리스 크레타문명에서 비롯돼 이집트, 페르시아에 영향을 주었으며 金, 銀, 靑銅으로 제작된 여러 형태의 뿔잔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기원전 6세기~2세기경 유라시아의 스키타이제국에도 뿔잔이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었고 중국에는 짐승의 뿔과 관련된 잔을 古典 기록에서 볼 수 있으며 전국시대에 제작된 유물도 전해진다.
뿔잔의 최초 발생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분포는 넓고 종류도 다양하며 유물의 재질과 형식의 차이는 있지만 민족의 특성에 맞게 각 문화권의 자생적 태동과 어느 정도의 전파에 의한 변화와 발전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 사진① 도기 말머리장식뿔잔(보물 제598호)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뿔잔은 부산 동삼동유적의 신석기시대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뿔잔(B.C.5000년~B.C.4000년)으로 고대 그리스의 크레타섬에서 제작된 토기뿔잔보다 1천년~2천년 정도 앞선 시기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은 아직 출토사례가 없으며 삼국시대에 신라와 가야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제작된다(삼국시대의 뿔잔은 다른 시기에 비해 유물의 수량도 많다).
우리나라의 뿔잔은 대부분이 쇠뿔을 그대로 형상화시킨 것인데 이례적으로 동물과 접목시킨 뿔잔으로 부산 복천동 제7호분에서 출토된 가야시대의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 한쌍 (보물 제598호)과 남북국시대 신라의 도기 새머리장식 뿔잔이 전해진다(사진① ②). 그리고 말탄 장수나 동물의 등에 뿔잔을 붙여 제작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쇠뿔을 그대로 형상화시켜 받침과 함께 제작됐다(사진③ ④). 아울러 청동으로 제작된 뿔잔도 금관총 출토품과 창녕 교동 7호분 출토품이 있어서 금속제로도 제작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靑磁와 靑銅으로 뿔잔이 제작됐으나 대부분이 短角杯로 짧은 뿔모양의 잔을 실생활에서 사용했다(사진⑤). 간혹 쇠뿔모양의 청자뿔잔도 있으나 매우 희귀하다(사진⑥).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短角杯는 거의 사라지고 간혹 쇠뿔 크기의 白磁角杯, 粉靑沙器角杯가 고분에서 출토되는데 의례용으로 만들어져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사진⑦ ⑧ ⑨).
(사진⑩)의 백자철화뿔잔은 조선초기에 경기도일대의 官窯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뿔의 끝부분에는 鐵畵顔料를 진하게 칠했다. 뾰족한 끝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칠해진 철화안료의 일부분은 酸化됐으며 몸통과의 경계가 명확하다(사진⑪). 뿔잔의 입 부분은 한단의 작은 턱을 만들었고 고운 모래받침을 사용해 燔造한 후에 모래를 깎아낸 흔적이 있으며 부분 부분에 흙물 흔적이 덮여 있다(사진⑫). 뿔잔의 내면에는 물레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몸통의 胎土에는 철분이 약간 있고 회백색의 유약을 두껍게 골고루 시유했다.

이 뿔잔은 입지름이 7.3cm이고 몸통의 길이는 22cm로 실제 성장한 수소의 쇠뿔 크기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사진⑬) 뿔잔의 몸통이 알맞게 휘어져 유려한 곡선이 아름다운 작품을 빚어냈다. 몸통의 표면에는 사용한 흔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祭禮 후에 바로 副葬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1061호로 지정된 백자철채뿔잔(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홍근 기증)과 일본에 있는 백자뿔잔(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소장)과 제작시기와 제작방법이 일치하며 모두 조선초기에 경기도 일대의 官窯에서 특별히 번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뿔잔은 유럽문화의 시원인 고대 그리스의 크레타문명에서 처음 陶器로 제작돼 페르시아, 이집트에 영향을 주어 다양하게 변화했으며 유라시아의 스키타이문명에서도 제작됐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제작됐다. 그러나 뿔잔의 전파에 있어서 각 문명권의 주변국에는 가능했겠지만 페르시아의 사자머리 뿔잔과 가야시대의 말머리 뿔잔을 연결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세계 최고의 토기뿔잔이 부산 동삼동유적에서 출토됐다는 것이다.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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