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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자르고 달아나는 ‘호신술’의 귀재
꼬리 자르고 달아나는 ‘호신술’의 귀재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6.09.27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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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63. 도마뱀
▲ 물왕도마뱀 사진출처= 블로그 ‘물한모금’(lnj2452.egloos.com

텃밭 구석에다 빗물을 받아두겠다고 쓰다버린 커다란 플라스틱 통 하나를 놔뒀다. 호랑나비만큼이나 자란 가을 배춧잎이 시들시들해 바가지로 물을 뜨려는데 통 안 바닥의 자작한 물에 도마뱀 한 마리가 오도가도 못하고 마구 꿈틀거리고 있었으니 얼른 두 손으로 다소곳이 퍼들어 놓아줬다. 옛날 같으면 분명 한참 요리저리 놀리다가 보냈을 터인데 나이가 드니 ‘不殺生’이란 말이 문득문득 떠올라 그리 못한다. 밭일할 때 심심찮게 만났던 그놈이 아니었지 모르겠다.

파충류(reptile)는 뱀·거북·악어 등이 있고, 우리나라에 사는 뱀 무리는 모두 합쳐봐야 고작 16종으로 그 중에서 뱀科 11종과 도마뱀科 5종이 있다. 한국 여름은 매우 건조하고 겨울엔 모질게 추워서 변온동물들의 서식처론 좋지 못하다. 그래서 열대지방에 비해 그 종수가 턱없이 빈약한 것은 물론이고 덩치는 작고 색깔도 보잘 것 없다.

 뱀(snake)은 몸이 가늘고 긴 것이 다리·눈꺼풀·귓구멍이 없고, 혀는 두 가닥으로 갈라졌으며, 왼쪽 폐는 퇴화돼 없어졌다. 그런데 도마뱀(lizard)은 네 다리가 발달했고, 귀가 있어서 소리를 들으며, 눈꺼풀을 움직일 수 있고, 호신술로 스스로 꼬리를 자른다.
한국산도마뱀 중에서 전국적으로 가장 흔한 것이 아무르장지뱀(Takydromus amurensis, grass lizard)인데 아시아고유종(endemic species)으로 한국과 일본·중국·러시아에서 인도네시아까지 분포한다. 이것 말고도 줄장지뱀(T.wolteri), 장지뱀(T.auroralis), 표범장지뱀(Eremias argus), 도마뱀(Scincella laterle laterle)이 있고, 이것들을 통틀어 보통 ‘도마뱀’이라 한다.

장지뱀이란 이름에서 ‘장지’는 ‘긴 발가락(長指)’을 가졌다는 뜻이고, 또 ‘도마뱀’의 ‘도마’는 ‘자름’의 뜻이 들었다. 다른 말로, 급하면 꼬리를 잘라버리고 도망치는 이 동물의 특징이 담겼다고 하겠다. 그리고 발바닥이 발달해 매끈한 플라스틱 통도 벌벌 기어오른다.
그럼 아무르장지뱀(T.amurensis)을 살펴보자. 학명(속명) takydromus는 민첩하다(fast-running)는 뜻이고, 종명 amurensis는 아무르(Amur)지역에서 잡은 것을 처음 신종으로 발표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몸길이 7∼9cm, 꼬리 약 10cm이고, 몸은 갈색이며, 몸은 비늘로 덮여 있고, 특히 등(背)비늘은 모가 나고(keeled scale) 매우 크다.

주행성으로 지상에 살고, 목은 거의 없으며, 꼬리는 몸길이 정도이고, 가느다란 두 갈래 혀를 가지며, 발가락은 5개로 발톱이 있다. 넓적다리 언저리에 장지뱀에만 있는, 페로몬(pheromone)을 분비하는 3쌍의 작은 구멍(서혜공, 鼠蹊孔)이 있다.
전국 어디서나 서식하고, 잡초가 우거진 길가·양지쪽 묵정밭·경작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곤충·거미·지렁이·노래기·달팽이 따위를 실컷 잡아먹고는 소화시키느라 양지바른 너럭바위에 넙죽 엎드린다. 포식자는 뱀·올빼미·솔개 따위들이다. 한 해 한 번 이상 허물을 벗는데 영양상태가 좋으면 그 횟수가 늘고, 바위 틈새나 나뭇가지 사이에 몸을 비벼 껍질을 벗는다.

수컷은 암컷보다 머리가 크고, 번식시기에는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몸이 화려하고 선명한 빛깔로 바뀔 뿐더러 입을 벌려 목을 부풀리거나 꼬리를 흔들기도 한다.
6~7월 경에 양지쪽 돌 바위 밑이나 썩어가는 나무 밑, 낙엽 속 모래흙에 3~4개의 알을 낳고, 4주 후면 부화한다. 알은 말랑말랑해 깨지지 않고, 길이 7mm, 너비 5mm로 하얗다. 한방에서는 소변불리·신결석·방광결석 등에 효능이 있다 하여 봄·여름에 잡아 말린다.

도마뱀꼬리는 달리기·몸의 균형 잡기·나무타기·구애·짝짓기·지방저장에 중요한 기관이다. 꼬리를 잃는다는 것은 거기에 저장해둔 양분을 잃는지라 커다란 손실이다. 그러나 어쩌랴, 하마터면 몽땅 통째로 먹힐뻔 했는데, 그보다 낫지 않은가!
눈독을 들이던 포식자(천적)에 들켜 꼬리를 잡히거나 물리면 금방 꼬리근육을 수축해 일부를 스스럼없이 떼줘버리니 이것은 도마뱀의 척수반사에 의한 일종의 본능인 것. 이렇게 스스로 토막 내버리는 것을 자절(自切, autotomy)이라 한다.

잘려진 꼬리토막이 까딱까딱, 꼬물꼬물 꼼지락거려 포식자를 홀린다. 꼬리는 몇 분간 경련을 일으키면서 꿈틀거려 적을 혼란시켜 놓고는 와중에 비웃기라도 하듯 득달같이 내뺀다. 말해서 바람잡이 꼬랑지는 천적을 눙치고 따돌리는 꼼수라 하겠다. 그런데 몸을 다치거나 꼬리를 잘렸을 때는 지체 없이 따스한 햇볕을 쬐어서 체온을 높인다고 하니 일종의 ‘열 치료(heat therapy)’다.
꼬리는 바로 다시 예전과 얼추 비슷하게 재생하지만 꼬리뼈는 생기지 않고, 대신 연골 비슷한 흰색 힘줄이 생긴다. 그런데 꼬리는 아무데나 잘라(떨어)지는 게 아니고 미리 형성된 꼬리 뼈마디가 느슨하게 이어진 자리(脫離節)에서만 일어난다고 한다. 많은 무척추동물이 도마뱀과 흡사한 생존전술을 쓴다.
문어·게·거미불가사리·가재·거미·민달팽이들도 막상 죽게 생겼다 싶으면 사정없이 스스로 다리를 자른다. 맙소사. 大我를 위해 小我를 희생한다? 거참, 아무리 그렇지만 끔찍하게도 몸의 일부를 후딱 떼어주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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