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味覺의 세계가 이야기 안으로 들어왔을 때
味覺의 세계가 이야기 안으로 들어왔을 때
  • 교수신문
  • 승인 2016.09.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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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발자크의 식탁』 앙카 멀스타인 지음|김연 옮김|이야기나무|268쪽|14,000원

 

발자크의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가 풀어낸 방대한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주는 여러 가닥의 실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 발자크가 인간의 행동 양식을 연구한 끝에 선택한 실들이다. 가장 가느다란 실은 장갑이고 가장 자주 등장하면서도 강력한 실은 돈이며 가장 뜻밖의 실은 음식이다.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언제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겠다. 발자크 이전에는 이렇게 독창적인 발상을 한 소설가가 없었다. 클레브 공작부인이 얇은 빵 조각을 삶은 달걀에 찍어 먹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라클로는 메르테유 부인의 저녁 식사 메뉴를 자세히 묘사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제인 오스틴처럼 세밀한 묘사에 능했던 작가도 접시 위에 놓은 음식보다 접시의 문양을 묘사하는 데 더 공을 들였다.

반면, 발자크는 달랐다. 『사촌 베트(La Cousine Bette)』에 등장하는 요부 마르네프 부인이 얼마나 집안 살림에 서툴렀는지 설명하기 위해 하녀가 만든 멀겋고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콩 수프를 보여 주었다. 『시골 의사(La M´edicin de campagne)』에서는 자코트가 끓인 맑은 육수의 향으로 완벽한 가정을 그렸다. 육수는 그 자체로도 검소함의 상징이지만 그랑데 영감은 까마귀 뼈로 육수를 내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얼마나 지독한 구두쇠인지를 증명한다.
발자크의 음식 이야기는 집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발자크가 살았던 시대는 레스토랑이 처음으로 출현한 시기였고 발자크는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쏟아 내는 레스토랑을 찾아 기꺼이 거리를 누볐다. 발자크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은 그들의 목소리나 행동, 옷차림만큼이나 어떤 카페를 선택하는가, 어떤 레스토랑의 단골인가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미각의 세계가 이야기 안으로 들어왔을 때 생기는 장점을 처음으로 이해한 작가가 발자크라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발자크는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들과 달랐다. 빅토르 위고나 찰스 디킨스에게 음식, 정확히 말해 음식의 결핍은 가난의 비참함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될 뿐이었다. 앤서니 트롤럽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레스토랑에 가는 법이 없었다. 트롤롭의 소설 속에서 남자들은 로스트 비프를 최고의 요리로 취급하는 클럽에 다녔고 여자들은 집 안에 머물렀다. 조르주 상드는 기본적으로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상적인 시골의 식탁을 묘사했다.

하지만 플로베르를 시작으로 모파상으로 이어지는 발자크 다음 세대의 작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졸라는 웅접실만큼이나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대가 직면한 묵직한 주제에 전념했던 졸라가 『루공-마카르 총서』 중 하나를 모두 파리의 배꼽이라고 불리던 레알 시장의 이야기에 할애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래야 마땅한 일이었다.
19세기 파리는 유럽의 미식 수도였다. 계층을 막론하고 음식은 집착의 대상이었고 발자크는 이런 현상을 한발 앞서 주목했다. 항상 돈에 집착했던 부르주아 작가인 발자크에게 음식은 중요한 주제였다. 음식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했고 음식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은 유통기한이 무척이나 짧았으며, 먹는 사람의 내면에서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탐욕과 한없이 관대한 마음이 모두 출몰했으니 말이다.

발자크가 음식에 집착했던 것은 당대의 사회상을 짚기 위해서였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몇 시간이고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나 소설 속에서 요리사의 습관이 상세하게 묘사되는 것, 가장 좋은 음식 재료를 파는 상점의 주소까지 소설에 등장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발자크는 맛 자체를 묘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혀 위에서 녹아내리는 굴의 맛을 감상하고 싶다면 모파상을 읽어야 한다. 노란 크림으로 가득 찬 항아리를 꿈꾼다면 플로베르를, 소고기 아스픽을 생각만 해도 온몸이 간지럽다면 프루스트를 읽어야 한다. 하지만 굴의 맛보다는 굴을 주문하는 젊은이의 취향에 흥미를 느끼고, 차갑고 달콤한 크림의 맛보다는 그 크림의 가격에 관심이 간다면, 입안에서 녹는 아스픽보다 아스픽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가계 형편에 관심이 간다면 발자크를 읽어야 한다.

■ 책의 저자 앙카 멀스타인은 1935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빅토리아 여왕, 제임스 로스차일드, 탐험가 로베르 드 라살 등의 인물전기, 카트린 드 메디치, 마리 드 메디치, 안느 도트리시에 대한 연구 및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스튜어트를 함께 다룬 전기를 출간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와 공쿠르 상의 전기 부문을 각각 수상했다. 놀라움과 통찰이 가득한 이 책은, 프랑스 문학과 요리 문화 모두를 새로운 시각으로 맛보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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