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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18종 · 무기염류 17종 '영양보고'
비타민 18종 · 무기염류 17종 '영양보고'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6.09.05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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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62. 수박
▲ 수박.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joeungabal'

올여름은 참으로 가물고 더웠다. 마른장마에다 칠팔월에 태풍 한 번이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물 사정이 좋은 논밭곡식이나 과수원과일은 일조량까지 좋아 풍년에 과실 맛도 좋았다. 말해서 사람이나 가축은 떠 죽을 판이지만 곡식과수들은 춤을 추었다. 하여 금년에 수박농사도 큰 재미를 봤을 터이고, 덕분에 달고 시원한 꿀수박을 생전에 제일 많이 먹었다. 그런데 머리통보다 큰 그놈의 수박이 왜 그리도 무겁든지….

수박은 속살이 더 달다. ‘수박 겉핥기’란 사물의 속은 잘 모르고 겉만 건드림을, ‘수박은 속을 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란 사람은 오래 함께 지내보아야 속마음이 어떠한지 알 수 있음을, ‘되는 집에는 가지나무에 수박이 열린다’란 잘 되어 가는 집안은 하는 일마다 좋은 결과를 맺음을 비겨하는 말이다.

수박(Citrullus lanatus var. lanatus)은 박科의 덩굴식물로 열대남아프리카가 원산이고, 암수한그루(雌雄同珠)며, 암꽃수꽃이 따로 피는 單性花(雌雄異花)이며, 줄기단면은 마름모꼴이고, 거친 털이 많이 나며, 길게 7m까지 기면서 여러 가쟁이(가지)를 친다.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여러 갈래의 덩굴손(tendril)은 물체를 휘감는다. 잎은 심장 꼴이고, 꽃은 연황색이며, 꽃은 갈래꽃잎이 5개고, 똥그란 꼬마 씨방(子房, ovary)이 앙증맞게 그 꽃받침 아래에 자리한다. 종자는 흑갈색으로 납작한 긴 타원형이며, 수박 한 통에 많게는 500개가 넘는 씨가 들었다. 원래는 수박을 씨 먹기 위해 심었다고 하지만 요새는 살(果肉)먹는 수박으로 개량했고, 씨 없는 수박도 만든다.

우리나라 초대 육종학자 禹長春 박사가 ‘씨 없는 수박(seedless watermelon)’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1943년경에 이미 일본서 만들어졌고, 단지 그가 광복 후 귀국해 이를 재배했을 뿐이다. 실은 홑꽃피튜니아(single flower petunia)를 겹꽃(double flower)을 만들어 한때 ‘우장춘 꽃’으로 불렸다.

알다시피 씨 없는 불임수박은 정상인 2배체(diploid, 2n=22)의 씨앗이 싹틀 무렵 떡잎에 0.1∼0.8%의 콜히친(colchicine)액을 묻혀주어 4배체(tetraploid, 4n=44) 씨앗을 얻고, 이것을 심어 나온 암꽃에 이배체인 보통수박의 꽃가루를 묻혀줘 3배체(triploid,3n=33)를 얻은 다음 그 씨를 심으면 종자가 생기지 않는다.

콜히친은 백합과식물인 콜키쿰(Colchicum autumnale)의 씨앗이나 球根에 든 알칼로이드성분으로 세포분열 때 염색체분열을 억제한다. 그런데 최근엔 수꽃에 X-선을 쬐어 不姙인 돌연변이꽃가루를 만든 후 암꽃에 수분시켜서 불임수박을 만든다고 한다. 옛날엔 씨 없는 수박이 동이나 덧두리주고 샀다지만 요새는 성장기간 오래 걸리고, 열매모양이 비뚜름해지기 쉬워서 거의 재배하지 않는다한다.

그런데 과일나무를 접붙이듯이 수박씨를 뿌려 그 어린모를 박이나 호박모종에 접붙이니 수박보다 박이나 호박뿌리가 튼튼해 물과 양분을 더 잘 빨아드릴 수 있고, 또 병에도 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호박이나 박을 대목으로 수박을 접붙여 재배하기도 하나 수박의 맛이 떨어지고, ?木과 臺木간의 불친화 등 여러 문제가 있어 점점 그 이용이 줄어들고 있다한다.

그리고 수박의 진녹색겉껍질에는 검은 녹색의 호랑무늬(tiger's stripes)가 얼룩덜룩 난다. 물론 요샌 색이 노란 수박도 나왔다고 하고, 보통은 속살(flesh)이 빨갛지만 품종에 따라서 귤색·황색·흰색도 있다한다. 그런데 잔머리 잘 굴리는 얍삽한 일본사람들이 어린열매를 투명한 정육면체의 유리 상자에 넣어두어 메주 꼴의 수박을 만들어 판다고 한다. 굴러가다 쩍쩍 갈라지는 둥그런 수박보다 저장과 운반이 쉽다는 장점이 있고, 또 특이하다 하여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

수박은 91% 물과 6%의 당이 주를 이루지만 무려 18종의 비타민과 17종의 무기염류가 든 영양보고다. 그리고 심혈관이나 뼈에 좋다는 라이코펜(lycopene)이 잘 익은 토마토나 감처럼 많이 들었는데 일종의 카로티노이드색소이다. 아무튼 수박은 목마름을 그치게(止渴)하는 것 말고도 오줌을 잘 나오게(利尿)한다. 그래서 수박은 신장병이나 고혈압으로 인해 생기는 浮氣(edema)를 씻은듯 부신듯 낫게 한단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운 줄 알지만 새빨간 속살보다는 껍질에 가까운 희뿌예한 부위가 건강에 더 좋다하니 참고하시라. 그래서 고집불통인 집사람은 오직 속살을, 필자는 일부러 겉살을 챙겨먹는 편이다.

수박은 모래 섞인 沙土에 잘 자란다. 또래들과 함께 했던 수박서리도 빼놓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이야깃거리다. 오후 내내 원두막의 동정을 망보면서 벼르고 있다가 그림자가 길어지는 해거름 때가 되면 이때다 하고 총중의 한 둘이가 홀딱 벗는다. 벌거숭이 맨몸을 부쩍 웅숭그리고, 레이저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며, 숨소리도 죽이고는 살금살금 수박밭으로 기어든다. 그맘때면 사람살색이 눈에 잘 띄지 않기에 원두한이를 깜빡 속일 수 있다.

요행히 들키지 않았다. 끙끙 수박 통을 물가로 안고가 함박웃음 지으며 질펀하게 먹던 그 맛과 장면을 잊을 수 없구나! 그 때 그 知音들이 하나둘 저승으로 떠났으니 이래저래 옛 생각에 젖어든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는 개구쟁이장난꾸러기다. 짓궂게 저지레하지 않는 아이는 결코 어린애가 아니다. “아이와 장독은 얼지 않는다”고 했던가.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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