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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 역시 자라난다
그러나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 역시 자라난다
  • 교수신문
  • 승인 2016.08.3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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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죽음의 스펙터클: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범죄, 자살, 광기』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지음, 송섬별 옮김, 반비, 300쪽, 18,000원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사회적 상상력이 꽁꽁 얼어붙은 채로
기업의 재조합적 허상에 종속돼 있는 이 황무지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1977년 인간의 역사는 전환점을 맞았다. 영웅들은 죽었다. 아니, 사라졌다는 말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영웅들은 영웅주의의 적에게 살해된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 영웅들은 해체됐다. 유령으로 변했다. 그래서 인류는 기만적인 전자기적 물질로 만든 가짜 영웅들에게 속아 삶의 실체와 그 기쁨에 대한 믿음을 잃고 오로지 이미지의 무한한 확산만을 믿게 됐다. 1977년은 영웅들이 퇴색하고 물질적 생명과 역사적 정념으로부터 시각과 신경 자극의 세계로 이주해버린 해다. 1977년은 세계가 인류 진화의 시대로부터 탈진화와 탈문명의 시대로 진로를 바꾸기 시작한 분수령이다.

모더니티의 세기에 등장한 노동과 사회연대의 산물은 이제 금융이라는 탐욕스러운 탈현실(de-realization) 절차의 지배하로 굴러 떨어졌다. 공공교육 체계, 의료 서비스, 교통, 복지를 그대의 물적 유산으로 남겨놓은 근면한 부르주아지와 산업노동자들의 갈등적 동맹관계는 시장으로서의 신(Market-God)이라는 종교적 도그마에 희생됐다.
2010년 이후 포스트부르주아지의 붕괴는 금융의 블랙홀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 새로운 체계는 지난 200년간 근면과 집단지성이 이뤄낸 산물을 집어삼키기 시작했으며, 사회적 문명의 구체적 실체를 추상, 즉 도형과 알고리즘, 수학적 잔인성, 그리고 화폐라는 형태를 띤 無의 축적으로 바꿔놓았다. 물적 형태를 사라지는 이미지로 바꾸는 시뮬라시옹의 유혹적인 위력은 시각예술을 스팸의 확산에 굴복시키고, 언어를 광고의 거짓된 체제 안에 종속시켰다. 이러한 과정의 끝에서 실제 삶은 금융 축적의 블랙홀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인간의 주체성과 감수성, 그리고 창조와 발명을 가능케 하는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만큼 남았는가 하는 것이다.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형태의 연대와 상호 협조에 에너지를 투자할 힘이 아직까지 인간에게 남아 있는가? 부모보다 기계로부터 더 많은 말을 배운 아이들의 세대가 지닌 감수성은 연대와 공감, 자율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 역사는 끊임없이 흐르는 파편화된 이미지의 재조합으로 대체됐다. 광란적이고 불안정한(precarious) 활동들의 무작위 재조합이 정치적 의식과 전략을 대신했다. 이 블랙홀 너머에 희망이 있을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임박한 미래 너머에도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 역시 자라난다. 미래에 찾아올 미래의 파괴를 예견한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가장 사랑한 시인 횔덜린의 말이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사회적 상상력이 꽁꽁 얼어붙은 채로 기업의 재조합적 허상에 종속돼 있는 이 황무지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이 지도 그리기가 이뤄져야만 예술, 정치, 그리고 치유를 감수성의 재활성화 과정으로 바꿔 인류가 다시 스스로를 자각하도록 도울 새로운 형태의 활동을 찾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미디어 활동가다. 이론가로서 그는 후기자본주의에서 미디어와 정보기술의 역할, 자살·우울·불안의 정치적 중요성, 금융자본주의와 노동의 불안정화의 관계 등에 깊은 관심을 두고 짚어왔다. 펠릭스 가타리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지적 동반자로 알려진 그는 현재 브레라국립예술대에서 미디어와 사회사를 가르치고 있다. 『노동하는 영혼: 소외에서 자율로』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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