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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쟁점]70년대 한국현대미술전, 논쟁의 불씨 타오를 것인가
[문화쟁점]70년대 한국현대미술전, 논쟁의 불씨 타오를 것인가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2.1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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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7 12:08:42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 한국 미술계는 일체의 형상과 이미지를 제거하는 작업을 통해 화면의 평면적 특성을 강하게 부각시켰던 ‘모노크롬(단색화) 회화’를 향한 열병으로 뜨거웠다.

2002년의 끝자락. 뜨거웠던 한국 70년대 미술에 관한 전시회가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어 미술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감성과 사유의 시대’전과 한원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노톤에 가려진 70년대 평면의 미학들’전이 바로 그 것. 전시 시기 뿐 아니라 다루는 소재도 같기 때문에 참가 작가의 대부분이 겹친다. 따라서 모양새만 보자면 별다른 차별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시회 안에 녹아있는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뭇 다르다. 그 다름의 각도는 생각보다 크게 벌어져 있어 70년대 모노크롬 회화를 화두로 한 한국현대미술사 논쟁이 예상된다.

약 45명의 작가들의 1백40여점의 작품이 대거 선을 보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사유와 감성의 시대’전은 “미니멀 경향의 국제적 조형성과 더불어 한국의 독자적 미의식 창조라는 모노크롬 회화의 성과를 짚어보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당시 70년대 비평계를 이끌었던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의 ‘평면’이라는 구조적 형식과 ‘동양적 정신성’ 추구의 관점이 묻어나는 듯 하다.

반면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의 일환으로 올해 세 번째 기획으로 꾸려진 한원미술관의 ‘모노톤에 가려진 70년대 평면의 미학들’전은 좀 더 야심차다. 26명의 작가들이 참여하고 총 3부로 구성된 이 전시회에는 ‘단색화’ 흐름과 그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붐을 일으킨 기존 비평체계를 해체하고, 비판을 통해 재조명을 하겠다는 도전적인 의미가 내포돼있기 때문이다.

‘백색’미감 놓고 중진-소장 견해차

70년대 단색조 회화의 출발점은 이동엽, 서승원, 박서보, 허황, 권영우 등이 참가한 1975년에 일본 동경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다섯 가지의 흰색’전. 그러나 전시회에 참가했던 작가들은 각자 작품의 세계가 달랐고, 소수의 흐름이 일본의 비평계에서 주목받으면서 집단적 성향을 띠었다는 설정에서부터 70년대 단색조 회화 논쟁은 출발한다.

가장 두드러지게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부분은 단색조 회화의 핵심이라할 만한 ‘百色’. 김복영 홍익대 교수(예술학과)는 “모노크롬 회화에서 백색은 물질적 성격의 것이 아닌 탈물질화 하려는 정신적인 백색을 뜻한다. 우리 민족의 미감인 백색이 70년대 미술을 통해 현대에서 재발현된 것”이라고 밝힌다. 이는 한국 70년대 미술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비교적 젊은 비평가들의 시선은 다르다. 오상길 한원미술관장은 “왜 식민지 미학의 표상이라 여겨지는 흰색이 갑자기 한국적 정체성을 대표하게 됐는지, 다섯가지 흰색 전 이전 주목받지 못하고 소수 작가들로부터만 보였던 백색의 회화가 순식간에 주류 흐름으로 바뀌어 한국 화단을 잠식했는지, 그 시대의 진정한 자생적 비평 접근이 가능했는지 재검토해야할 시기”라고 강조한다. ‘다섯 가지 흰색 전’을 연구한 김미경 강남대 교수(미술학부) 역시 “동경화랑의 전시회가 한국 단색조 회화의 시발점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미술사적 고증은 전무하다. 당시 다섯 작가는 각기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달랐으며 ‘흰색’을 공통점으로 지향하겠다는 적극적 의지는 나타나지 않았다”며 “흰색의 본격적인 계기가 될만한 미학적 담론을 형성시킨 것은 정작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일본 비평가 야네기 무네요시로부터 내려오는 ‘일본인의 흰색에 대한 애호’가 여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국미학담론으로 발전된 것은 아니냐는 자성적 물음인 것이다.

용어에 관한 문제도 만만치 않다. 모노크롬 회화, 단색조 회화, 모노톤 등 70년대 한국미술계를 바라보는 여러 용어가 혼용·오용되면서 담론화의 커다란 장애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적 용어로 素藝를 제시하고 있는 김 교수는 “용어의 개념정리부터 다시 시작해야 담론은 물론 한국미술을 서구미술의 아류처럼 바라보는 시선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70년대 미술의 사상적 토대

색조 회화 미술가들이 사상적으로 주목했다는 ‘노장사상’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시공간적으로 동떨어진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을 70년대 우리 미술의 사상적 토대로 뒷받침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겪어온 현대화의 역사적 과정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비평적 검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러한 문제제기는 곧 우리의 주류 화단과 미술비평계와 직결되는 것이라 더욱 첨예한 부분일 수 밖에 없다.

“당시의 시공간을 체험한 시각과 그 시대를 현재에서 바라보는 시각간의 대화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현대미술사가 재평가되는 시간이 필요한 때”라는 한 교수의 말처럼 대부분의 미술관련자들은 이와 관련한 논의가 공존화돼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예술작품이 어느 한 시대의 소유물로 고여있을 수는 없다. 끊임없이 유동하고 충돌하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예술 아니던가. 70년대 모노크롬 회화에 대한 논의는 이제 잠에서 깨어난 듯 하다.

이은정 기자 iris79@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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