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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사태’ 불씨, 교육부 대학정책 전체로 번질까?
‘이대사태’ 불씨, 교육부 대학정책 전체로 번질까?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6.08.22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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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학재정지원사업, 이대로 괜찮나

사업따라 특성화·인재상 방향도 바꾸기도… 재정 배분방식 기로에 섰다

최근 ‘이화여대 사태’를 촉발시킨 교육부 평생교육단과대학지원사업(평단사업)의 불씨가 정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 전체로 번지고 있다. 그간 △사업 준비기간 부족 △학과통폐합 △정원 조정 △교수·강사진 채용 어려움 등 개별 지원사업마다 터져나왔던 문제가 정부의 ‘행정공문 하달식(Top-Down)’ 정책과정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이사장 박순준)는 지난 18일 인제대에서 전국사립대학교수회 임원단 대회 ‘20대 국회에 제안하는 희망의 대학정책’을 개최하면서 정부의 대학구조정정책과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날 이수연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한 ‘대학재정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 재정지원의 전향적 검토’에 따르면 현행 대학 재정지원은 사업계획이 공고되고 대학들이 신청해 선정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빠듯해 졸속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올해만 해도 한 해 예산 2천억원에 달하는 프라임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지원사업)의 경우 기본계획 확정(2015년 12월) 후 사업계획서 접수 마감이 3개월에 불과했고, 코어사업(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은 단 1개월 여에 그쳤다. 최근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화여대 사태’의 쟁점인 평단사업 추가공고도 접수마감 기간이 2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평단사업이 구성원 의견수렴 절차 없이 한 달 여 만에 졸속으로 추진됐다며 지난달 28일부터 23일째(19일 현재) 본관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화여대 측은 사업참여를 전면 철회했지만 학생들은 농성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수연 연구원은 “졸속적인 사업 추진 과정에서 대학의 학문 자율성과 민주주의는 퇴행했다”며 “대학의 ‘자율성’은 정부의 가이드라인 속의 학사개편·정원조정을 추진할 집행권에 불과했다”고 진단했다.

최근 정부의 대학재정지원의 문제는 짧은 사업 준비기간에 국한하지 않는다. 대학평가를 통한 선별지원방식이 서울·수도권의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집중적으로 배분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분석은 이미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대학교육연구소의 ‘2014년 사립대학 국고보조금 지역별 현황’에 따르면, 전체 국고보조금의 절반에 달하는 43.2%(약 2조229억원)를 서울지역 대학이 가져갔다. 타 지역에 비해 1.6배~3.0배나 많은 금액이다. 이 가운데 서울·수도권 상위 11개 대학에 지원된 국고보조금만 약 1조6천340억원에 달했다.

교육부, 대학재정 배분하며 정책 유도 ‘과잉’ 지적 잇따라

정부를 제외한 대학 안팎에서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대학재정지원의 문제는 정책 유도의 과잉이다. 교육부는 교육역량강화사업 지원대학을 선정하면서 총장직선제를 고수한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등에 감점을 주어 사업에서 탈락시켰고, 최근에는 국립대학 총장임용후보자 선정 시 교육부에서 제시한 ‘대학구성원 참여제’로 총장후보자를 추천할 경우 대학평가에서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학특성화사업(CK) 재선정 심사기준에는 ‘자유학기제’ 운영실적과 계획이 포함돼 있다. 2014년부터는 모든 정부 재정지원사업 평가에 정원감축 계획(실적)을 반영하고 있다.

이수연 연구원이 정부 재정지원방식 문제의 핵심으로 꼽은 것도 바로 ‘특수목적지원사업 중심의 재정지원’이다. 이 연구원은 “이 같은 방식을 전면 재편하지 않고서는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할 수 없을뿐더러 사업 간 유사·중복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 일반지원사업 중심으로 재정지원방식을 재편해 대학의 전반적인 교육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야만 특정분야를 중점 육성하기 위한 차등지원 사업이 결합되더라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대학구조개혁평가의 ‘합격생’에 한해 재정지원 규모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도 “재정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더욱 황폐화 시키는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학평가와 연계한 정책유도성 재정 배분이 정부정책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개별 대학의 오랜 학문·교육 전통과 인재상까지 뒤흔들고 있다는 목소리는 최근 대학총장들의 입에서도 터져나온 바 있다. 

지난 6월 제주도에서 열린 대교협 하계 대학총장세미나에서 김성익 삼육대 총장은 “평가에 의한 차등적 재정지원방식은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간접적인 통제라는 인식이 강하고, 이에 대한 대학 내 정책저항도 존재한다”며 “그 동안의 사업지원들은 대부분 대학 전체의 질 제고보다는 분야별 특성화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에 따라 일부 대학의 경우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따라 특성화의 방향을 달리 하는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대학들은 사업선정 여부가 불투명하고, 선정된다 하더라도 ‘중간평가 후 탈락’이라는 장벽 탓에 정부 재정지원의 규모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특수목적성 사업에 선정되는 대학조차 재정 운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해당 사업단 안에서만 지원금을 쓸 수 있어서 연말에 무리한 집행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결국 교육·연구 성과를 측정(평가)해 선별적으로 차등지원하는 정부의 재정지원 배분방식도 전환기를 맞았다는 게 대학 안팎의 분석이다. 이수연 연구원은 “평가를 통한 재정지원이 ‘부가적 유인’이라기 보다는 ‘제재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상대평가를 통한 대학기관의 등급화는 재정지원을 제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과 결합해 대학 간 경쟁구도를 보다 사활을 건 방식으로 변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성익 총장도 “재정지원을 전제로 사립대학에 대한 재정적 통제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개별대학의 특성화와 교육·연구의 질 개선을 중점평가해 집중지원 하고, 대학의 자구적 노력을 유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교육부는 학부교육, 연구, 산학협력 역량 강화 및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등에서 총 1조5천억원(2016년 기준) 규모의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 이념과 특성화 저해, 평가지표 획일화 등 재정지원사업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지난달 ‘대학재정지원사업 개편 방향(시안)’을 발표했다.

이번 시안을 통해 교육부는 “대학이 중장기 발전계획 및 특성화 계획에 따라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사업계획서의 적정성, 실현가능성, 대학이 자체 설정한 성과지표의 적절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지원할 것”이라며 “사업 계획과 예산집행 등의 규제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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