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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 ‘이용약관’ 도입하자
대학도 ‘이용약관’ 도입하자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6.08.16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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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_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고등교육시장, 교육수요자 ‘황당’ 경험 속출

이화여대 재학생들이 교육부 평생교육단과대학지원사업의 일방적인 결정에 반발해 본관을 점거하자, 이 대학의 한 교수는 학생들에게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신임총장 선출 문제로 총장실 점거농성을 벌인 학생들도 학교 측 교수로부터 똑같은 말을 들었다. 대학의 ‘주인 논쟁’은 대학과 학생들이 의견 대립으로 충돌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다. 

▲ 최성욱 기자

대학본부의 일방적인 행정에 반대해 학생들이 외치는 한마디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라는 말의 진의는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말 그대로 ‘주인 행세’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주요 의사결정 권한을 학생들에게도 달라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학생들의 학습권, 교육권을 침해하는 수준의 대학정책을 벌일 때, 학생들의 목소리를 배제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그럼 학원의 주인은 수강생이냐?”라는 식으로 반문하는 교수들이 의외로 많다. 이 쟁점은 대학운영을 단순화 시켜보면 실마리를 얻기 쉽다. 학생은 등록금을 지불하고 그에 상응하는 교육서비스를 받는다. 그렇다면 광의의 개념에서, 이 서비스에는 대학본부의 주요 교육정책에 관해 심의·의결할 권리도 일부분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교수의 강의 권한이나 행정 전반의 모든 의사결정에 속속들이 학생들의 권한이 포함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부 교수들의 말마따나, 막상 학생이 학교의 주인역할을 하기엔 사실 애매한 측면이 있다. 학생들이 그 많은 대학정책을 어떻게 그때그때 인지할 것이며, 지극히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행정과 정책을 두루 살필 여력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대신할 조직(대학본부)이 있고, 이 업무를 대신 처리해 줄 보직교수와 교직원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학생은 대학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학생들의 재정기여도가 미미해야한다. 하지만 공개된 자료들에 따르면 한국 사립대의 평균 등록금 의존률은 60~70%에 달한다. 만일 모든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지 않으면 대학은 단 한 달도 운영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교수·직원의 월급을 못주게 되니 그렇다.

앞서 언급한 ‘학원’을 대입한 논리는 또 어떤가. 학원은 수강생이 만족하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된다. 학원은 월 단위 계약이니 그때그때 가능하다. 이를 테면, 월셋집과 전셋집이 계약서부터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월세도 다년계약의 경우엔 입주자가 방에 곰팡이가 생겼다거나, 천장에서 물이 새는 문제부터 도어록(전자식 잠금장치)을 달아달라, 방충망을 교체해 달라, 보일러를 새 것으로 바꿔달라 등등 세세한 개선사항을 요구한다. 세입자의 요구에 시간을 끌며 계약이 끝나길 기다리는 고약한 집주인은 있어도, 요구를 아예 무시하거나 “집주인은 나니까 내 마음내키는 대로 하겠다”라는 식으로 엄포를 놓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그런데 대학은 유독,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대로 배우고, 학위나 받아가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고등교육서비스 제공’이라는 대학의 기본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학과 학원은 계약기간부터 다르다. 학원은 월 단위 계약이지만, 대학은 최소 2~4년의 다년계약이다. 

입시자료에 학과 변동가능성 기재 … 불필요한 오해 줄여야

대학과 학생 서로 간에 불필요한 오해와 분쟁을 최소화하려면 대학에도 ‘이용약관’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이용약관은 입시자료에 명확하게 기재해둬야 할 것이다. 예컨대 “본 학과에 재학(혹은 졸업)하는 동안 내외부 요인(정부 교육정책 포함) 등의 영향으로 인해 학과가 통폐합 되거나, 커리큘럼이 바뀌거나, 교수·강사진에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국내 대다수 대학은 이처럼 중대한 변동가능 상황에 대해 수험생·학부모에게 주지시키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학과의 존폐 혹은 커리큘럼, 강사진 변경 등이 사회변화나 정부정책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해도,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학 중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대학과 정부는 최소한 해당학과 혹은 대학 구성원들에게 알린 후 의견을 수렴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게 아닐까?

평생교육단과대학지원사업에 따라 촉발된 ‘이화여대 사태’ 역시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학생을 학원수강생 정도로 여겨온 대학과 교육부가 자초한 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구성원 의견수렴은커녕 사업지원 공지조차 하지 않은 대학본부의 의사결정과정과 대학에 사업내용을 검토하고 의견을 수렴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은 교육부에 있다. 애초에 대학의 주인이 누군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게 없는 싸움이었다.

이 같은 의사결정 절차와 대학정책 수립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현재 ‘대학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명확해진다. 대학본부도, 학생도 아닌 바로 교육부다. 이화여대의 ‘주인 논란’에서 진짜 주인은 캠퍼스 바깥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의 주인이 누구냐라는 ‘주인론’보다 중요한 건 ‘어떤 정책판단이 가치있는 것인지를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변화가 빠르면 결정도 빨라야 한다. 하지만 최근 교육부의 고등교육정책은 변화의 동인을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대학에 ‘빠른 결정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업기획과 준비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추세가 이를 말해준다. 그 어느 때보다 대학 구성원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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