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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가 국가사인 이유
책읽기가 국가사인 이유
  •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서양고전문
  • 승인 2016.07.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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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서양고전문헌학
▲ 안재원 서울대 HK연구교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소리는 누구나 한다. 문제는 ‘어떻게’다. 이 문제를 국가가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도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수능 시험이 얼마나 쉬운지는 국가적 관심사다. 그러나 학생들이 몇 권의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아무리 ‘창조’, ‘창조’를 외쳐도 창조 국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실은 이것일 것이다. 지면이 허락된다면,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이른바 교육 선진국들은 독서 교육과 고전 교육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다루겠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의 독서 교육과 고전 교육의 실제를 먼저 소개하겠다. 미국의 경우, 뉴욕 대, 위스콘신대, 노트르담대, 보스턴대, 시카고대, 콜로라도대 등 약 160개 대학에서 ‘인문 고전 100권 독서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아예 대놓고 엘리트 교육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물론 서구에서 고전(classics)은 그리스 라틴 고전들이지만, 미국의 고전 교육에서 말하는 고전은 좀 더 넓은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뿐만 아니라 최소 100년 이상 세월의 검증을 거친 훌륭한 책들을 통틀어 말한다. 우리의 중등교육과 미국의 중등 교육 사이에 있는 차이가 다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겠다.

미국의 경우,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고전들을 선별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읽어야 하고 읽을 수 있는 리스트와 교육 지침을 만들고, 고전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 일선 학교에 배치해 학생들의 책읽기와 글쓰기를 교육하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미국으로부터 진짜 수입해야 할 것이 바로 고전 교육이 아닌가 싶다.

국가가 책읽기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는 지금부터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점은, 미국의 독서 교육 문제는 개인의 취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핵심 관심사라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독서 교육이 학교와 가정, 국가(주정부)가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해 진행하는 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먼저, 가정에서는 유아기 때부터 ‘잠자리 이야기(bed-time stories)’를 읽어주는 것이 정상적인 부모의 의무다. 나부터 반성해야하지만, 그러는 아빠가 한국은 몇이나 될까. 아무튼,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레 책과 친해진다. 동네마다 자리 잡은 지역 도서관에는 유아부터 초등·중등·고등학생, 그리고 어른들을 위한 책과 시청각 자료들을 마련해 놓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사회의 교육 문화 발전에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도서관마다 어린이 독서교육 전문가를 두는 것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자리 잡은 전통이다. 1900년에는 전미도서관협회에 어린이 전문가 분과가 따로 만들어졌으며, 미국 최초로 어린이 독서 전문가 양성학교가 설립됐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듯, 미국의 독서 교육은 말 그대로 백 년의 계획을 실현하는 셈이다. 이런 전통은 미국 대부분의 학교가 사서교사를 두고 있는 현실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에도 독서지도교사가 있지만 전문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미국은 14개 주에서 사서교사의 자격요건으로 도서관학에 관련된 석사학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미국 역시 인터넷이 보편화하고 전자오락이 유행하면서 아이들의 관심이 책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국예술진흥재단’이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17세 청소년의 경우 ‘교과서와 관련 없는 책은 전혀 읽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이 1984년 9%에서 2004년 19%로 늘어났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년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은 성인의 비율은 61%에서 57%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독서 습관이 빈부 격차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다독하는 경향을 보인 것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백인이 소수 인종보다 열심히 읽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독서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단체는 저소득층 자녀의 독서 교육에 힘쓰고 있다. ‘누군가를 도와 차의 시동을 걸게 하다’는 뜻의 NGO(비정부기구) ‘점프스타트’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정의 미취학 아동에게 독서 교육을 제공한다. 1993년 15명의 대학생으로 시작한 이 단체에는 현재 4천명 가까운 자원봉사자가 소속돼 있다. ‘독서 교육은 되도록 빨리 개입하는 것이 좋다’는 미국의 교육 철학은 독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경제적 가난이 정서적 빈곤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는 미국 사회의 노력은 정말 눈여겨 볼 대목이다.

다음으로 학교에서의 독서 교육에 대해서 말하겠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독립적인 독자, 능숙한 독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다양한 활동과 행사가 동시에 이뤄진다. 수업 시간의 독후 활동으로는 책을 읽고 난 느낌을 그림으로 그린다거나 등장인물에게 편지쓰기, 작가에게 편지쓰기, 또는 독서활동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쓰고, 그것을 연극으로 연출하는 등의 활동이 포함된다. 독후 활동을 통합해 ‘독서 워크샵’이라는 이름으로 심화시켜 진행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학급 친구들과 함께하는 ‘독서 캠프’, ‘독서의 밤’, ‘독서 토론 대회’ 등과 같은 행사나, 가족을 초대해 함께하는 ‘독서의 날’, ‘독서 여행’ 등과 같은 행사도 학생들의 독서 경험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성적순에 따라 좋은 학교를 졸업해서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는다고 인생 성공이 아니라는 점을, 그 자리에 올라가서 알게 됐을 때는 늦는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자는 데 미국 독서 교육의 전략이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독서 교육을 포함한 인문 교육을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시선은 우리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성적이 아니라, 스펙이 아니라, 사회에서 성취하고 얻은 것은 수많은 사회 구성원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속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미국 독서 교육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인문 교육을 인문대학에서 활동하는 몇몇 전문가들의 활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 사회의 공통 관심사로 본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여기에 고전 교육을 세계 지배의 기본 원동력으로 놓는다는 점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류 문명이 축적한 지혜와의 만남을 통해서 세계를 이끄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 미국 독서 교육의 기본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음 중 아닌 것은?”의 시험 문제 풀이 방식에서는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인재상일 것이다. 또한 중등 교육을 사교육 시장에 방치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와는 대조된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서양고전문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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