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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읽는 데 ‘관념사 연구’는 왜 필요할까?
중국을 읽는 데 ‘관념사 연구’는 왜 필요할까?
  • 교수신문
  • 승인 2016.07.1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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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관념의 변천사: 중국의 정치사상』 장현근 지음|한길사|624쪽|25,000원

 

 장자의 정치사상은 외부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를 상정하므로 관념사적
연구와 잘 맞는다. 반면 순자의 정치사상은 심의 자주성을 강조하지만 외부
요인의 영향을 더 강조하므로 사상사적 연구를 진행해야 더 분명히 드러난다.
두 경향은 다르지만 관념사 연구는 사상사 연구와의 절충 및 보완이 필요하다.

중국 정부로부터는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홍콩과 대만에서 그 뛰어난 성과를 인정받은 진관타오(金觀濤) 부부는 관념사 연구가 왜 필요한 것인지 오랫동안 천착해왔다. 역사와 세상과 사상을 보다 정확히 읽기 위함이란다. 주로 시스템, 구조 등을 연구하며 현대 중국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고민한 그들의 연구는 한국에도 『관념사란 무엇인가』란 책으로 번역돼 있다. 그들의 관심은 권리, 개인, 혁명 등 근현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근대 관념의 키워드들이었다.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를 동원한 이들의 학문적 노력 덕분에 『관념의 변천사: 중국의 정치사상』(이하 이 책)의 주제인 ‘관념사’가 새로운 용어가 아니게 됐다.

하지만 중국이 민주와 자본을 배워야 한다는 이들의 의도가 인기를 누리기는 했으나 원래 관념사 연구는 그보다 훨씬 앞서 미국의 학자들에 의해 사상 연구를 보다 심화시키려는 학문방법의 하나로 출발했다. 개념(concept)이 딱딱하게 특정된 것이라면 관념(idea)은 덜 고정되고 일정한 가치지향과 융통성을 지니고 있다. 모두 그보다 넓은 포괄적 생각 또는 사상(thought)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독일계 미국철학자 러브조이(Arthur O. Lovejoy)와 그의 추종자들은 1940년에 <관념사연구학보(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를 창간했다. 그 영향으로 일본과 대만에서도 정치에 대해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관념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누차 강조되기는 했으나 사상계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관념사 연구가 사상의 주류가 되지는 못했지만 관념사 연구를 통해 특정 사상이나 사상가의 기본 가설 및 그 변증법적 동기를 통찰할 수 있고, 사상의 대원칙과 그것이 형성하는 사회적 상관관념과 정치사상의 역사적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관념사 연구는 사상의 내재적 구조와 논리의 변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사회관계의 실상과 시대적 조건 등이 배제됐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나 파생개념이 그렇듯이 어떤 관념이라도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조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배경과 조건 위에서 형성됐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며, 사상사 변천의 내부논리를 중시한다는 것은 곧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관념의 변천에 대해 그 자체로서 자주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관념사가 함께 탐구되지 않으면 사상에 대한 이해는 겉핥기에 그칠 수 있다.

중국정치사상 관련 관념에 대한 연구
이 책은 오롯이 중국정치사상에 대해서만 수 십 년간 연구해온 저자의 오랜 천착의 결과다. 정치사상을 마르크스주의로만 읽는 중국대륙에서 전통정치에 대한 각종 관념의 연구는 무시되거나 억압을 받기도 했다. 자유-민주 등 서구적 가치만을 추구해온 동양의 다른 유교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중국 전통정치사상은 그다지 대접을 받는 분야가 아니었다. 따라서 중국의 고전을 뒤져 정치사상 관념의 변천을 다루려는 학문적 탐색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과 많은 문서와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다. 같은 땅에서 같은 문법의 언어를 3천년 이상 구사해온 나라다. 그 방대한 문헌들을 종합해서 관념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은나라 갑골에서 시작해 청나라 말에 이르는 문헌들을 종람하고 그 속에서 관념의 변천을 읽어내는 것은 애초에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 내부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이런 연구를 한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건 한 사람의 작업으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단위 관념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들이 있었으나 그 단위 관념들을 정치사상이란 하나의 주제 아래 사상사 전체를 관통해 종횡을 넘나든 연구는 이 책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고전에 대해 빠른 독해능력을 지닌 중국인도 못하는 작업을 한국인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리우저화(劉澤華) 선생 덕분이다. 그와 제자그룹이 같이 쓴 방대한 3천 년 사상사인 『중국정치사상사』(3권본)를 필자는 17년에 걸쳐 홀로 한국어로 번역했다. 원저 매 쪽의 절반 이상이 고문으로 채워진 책을 번역해 2백자 원고지 2만매에 육박하는 작업을 하면서 오랜 숙원인 중국정치를 종관하는 관념의 변천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시도는 방대한 고전원문에 대한 오랜 독해의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 주목한 사항들
관념의 변천을 탐색하면 ‘차이와 구별’에 기초한 인식은 ‘동질성과 통합’에 기초한 인식으로 바뀔 수 있다. 예컨대 장자의 정치사상은 心의 자주성을 강조하고 외부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를 상정하므로 관념사적 연구와 잘 맞는다. 반면 순자의 정치사상은 심의 자주성을 강조하지만 외부요인의 영향을 더 강조하므로 사상사적 연구를 진행해야 더 분명히 드러난다. 두 경향은 다르지만 마음의 자주성을 중심에 놓고 정치를 생각했다는 점에서 관념사 연구는 사상사 연구와의 절충 및 보완이 필요하다. 장자의 심과 순자의 심을 융합적 관점에서 동시에 고찰하면 심이 갖는 중국정치사상의 특질과 보편성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등 각 학파의 차이에 기초했던 중국사상에 대한 연구패러다임을 융합에 기초한 연구패러다임으로 바꾸어가게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관념 ‘변천’의 고리로 중시한 것은 공자와 제국이다. 중국사상 초기의 관념들이 공자와 그의 추종자들의 학문적 노력을 거치면서 기존 관념에 대한 추상적 의미부여가 이뤄졌으며 관념의 변천은 큰 파고를 넘게 된다. 또 진한 제국을 거치면서 천하가 하나가 되면서 다양한 관념들이 통합을 향해 치닫게 된다.
이 책이 어원과 자의를 하나의 절로 하고 공자 이전과 이후를 나누고, 진한에서 명청까지의 제국을 하나의 절로 나눠 서술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시대적 범위가 매우 넓다는 점에서 몇 십 년 단위의 세밀함은 갖추지 못했으나 관념 변천의 큰 고리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관념은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도 있다. 政治, 天命, 心性, 國家, 君王, 臣民, 道德, 仁義, 禮法, 忠孝, 公私, 華夷는 모두 본래 각자의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정치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각각 융합되고 변화했다. ‘공사’처럼 끝까지 대립어로 남는 경우도 있고 ‘천명’처럼 전혀 새로운 개념어로 변화하기도 했다. 동양사상에서 ‘정치’ 관념은 제 몸을 바르게 다스리고,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구현하며, 공동체의 선한 질서와 관련된 人間事의 총체였다. 경제나 경영이나 법률이나 교육 등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의 하위개념이 된다.
이렇게 전통적 정치의 본질적 의미가 교육되고, 그 진정한 의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저 권력다툼으로만 취급하거나 때로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현대인들의 ‘정치’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장현근 용인대·중국학과  
대만 중국문화대에서 박사를 했다. 중국 길림대 겸임교수로 있다. 『맹자: 바른 정치가 인간을 바로 세운다』 등의 책을 썼고, 『논어』 , 『중국정치사상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유가사상의 현대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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